컨텐츠 바로가기

03.28 (목)

[노태우 별세] 북방외교로 韓기업 중국·동유럽 진출… 올림픽 땐 정주영과 손발 88올림픽·북방외교 이뤄낸 ‘노태우 시대’… 경제계 “깊은 애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별세 소식을 접한 재계는 “애증이 교차한다”고 술회했다. 노 전 대통령은 여러 그룹과 혼맥, 학연 등을 맺고 있고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와 북방외교 등을 성공적으로 이뤄내며 기업들의 성장을 함께 일궈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기업들에게서 거액을 받아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수십명의 총수들이 고초를 치러야 했다. 기업가 자제들과 결혼한 자녀들이 결국 파경을 맞이했다는 점도 재계와 불편한 관계로 돌아서게 된 이유다.

◇ 서울올림픽 유치하며 정주영과 손발… 대우 김우중엔 북방외교 맡겨

노태우 정부 때는 한국 경제가 연평균 8.5%씩 고속 성장하던 시기였다. 그만큼 기업과 손발을 맞출 일이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8년 서울 올림픽이다. 한국은 1980년 전두환 정부 때부터 올림픽 유치 작업에 착수했는데,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정권의 2인자인 정무장관 자격으로 직접 올림픽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이때 전경련 회장이었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1981년 올림픽 유치위원장에 취임했고, 다음 해인 1982년엔 대한체육회장까지 연달아 맡았다.

정 회장은 각국 재계 인사를 설득하고, 국내 기업에는 후원을 요청하는 등 올림픽 유치에 큰 힘을 보탰다. 이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과 매우 가까운 관계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회장이 대한체육회장에서 물러난 뒤 후임은 노 전 대통령이 맡았다.

조선비즈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88년 6월 청와대에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장을 접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88년 선언한 북방외교 원칙 역시 기업들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됐다. 북방외교는 중국, 소련,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추진됐다. 이때 노 전 대통령을 전폭 지원한 것이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다. 김 전 회장은 대북특사 자격으로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해 당시 김일성, 김정일과 함께 3명이서 20여차례에 걸쳐 단독 회담을 진행했고, 그 결과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도출했다. 노태우-김일성 정상회담을 거의 합의 직전까지 끌고간 데도 김 전 회장의 공이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북방외교로 진출할 수 있는 시장이 확대됐다”며 “특히 대우그룹은 당시 대우자동차가 동유럽에 자동차 공장을 건설하는 등 큰 수혜를 받았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경제계와 소통에 주력하며 좋은 관계를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계는 그 사례로 1989년 12월 산업부 주도로 출범한 경제단체협의회를 꼽는다. 경단협은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은행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기협중앙회 등 경제6단체와 업종별 지역단체가 모두 참여하는 협의체로, 정부와 경제계의 소통과 정책 협의 등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재계 관계자는 “당시 경단협에 참여하는 단체가 100개에 달할 정도로 활성화됐고, 이를 통해 원활한 소통이 가능했다”며 “이후 다른 정부를 거치면서 조직이 크게 위축됐다”고 말했다.

◇ SK·두산·신동방과 혼맥… 삼성家 이맹희와는 중학교 동창

노 전 대통령은 여러 그룹과 혼맥을 형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SK그룹이다. 노 전 대통령 취임 직후인 1988년 7월 장녀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결혼을 발표했다. 이들은 같은 해 9월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이현재 당시 국무총리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이 결혼으로 SK그룹은 숱한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1980~1990년대 석유·이동통신 사업으로 그룹 외연을 확장할 당시 대통령 사돈 기업이라는 이유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에 시달리기도 했다. 최 회장의 부친인 고(故) 최종현 회장은 노 전 대통령 시절부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추대됐지만 대통령의 사돈인만큼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이를 고사하기도 했다. 그는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1993년이 돼서야 전경련 회장을 맡았다.

조선비즈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장남이자 노 관장의 동생인 재헌씨는 1990년 신명수 당시 동방유량 회장의 맏딸 정화씨와 결혼했다. 동방유량은 해표 식용유를 만든 곳으로, 이후 신동방으로 사명을 바꿨다가 2011년 CJ제일제당(097950)에 합병됐다. 이 결혼 역시 순탄치 않았다. 2011년부터 이혼 절차를 밟기 시작했는데, 사이가 악화된 이후 두 집안 사이의 ‘거래’가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12년 노 전 대통령은 사돈인 신 전 회장을 상대로 ‘비자금으로 맡긴 돈을 임의로 사용했다’며 검찰에 진정서를 냈다. 이들은 2013년에 이혼 도장을 찍었다.

두산그룹과도 멀게나마 혼맥으로 얽혀있다. 박용만 두산경영연구원 회장의 아내 강신애씨의 오빠는 강흥구 전 금강여행사 대표인데, 강 대표의 아내 김미희씨는 故 김복동 전 국회의원의 장녀다. 김 전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아내인 김옥숙 여사의 오빠다. 김 전 의원을 중심으로 두산그룹과 줄사돈 관계가 되는 셈이다.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과는 경북중학교 동창이다.

◇ 한보그룹 ‘수서비리’에 비자금 조성까지… 민낯 드러낸 정경유착

재계는 노 전 대통령과 사적·공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1995년 비자금 사건으로 모두 어그러지고 만다. 14대 국회가 끝나기 6개월 전인 1995년 10월 19일, 당시 민주당 박계동 의원이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총 4000억원에 달한다고 폭로했고, 8일 뒤인 27일 노 전 대통령은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비자금 조성이 사실임을 시인하며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대통령 재직 시 기업인들의 성금으로 약 5000억원의 통치 자금을 조성했고, 1700억원가량이 남았다”고 고백했다.

이 사건으로 대기업 총수들이 대거 소환돼 조사를 받아야 했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00억원대 뇌물을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도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한보그룹의 ‘수서비리’ 역시 노 전 대통령 시절 최대의 권력형 비리로 꼽힌다. 1990년 한보그룹은 강남의 노른자 땅 강남구 수서·대치 지구에 아파트 건설을 추진하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정관계 인사들에게 수백억원의 뇌물을 주고 수서택지개발지구 중 일부를 수의계약 형식으로 특별 분양받을 수 있도록 청탁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150억원의 비자금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경제계는 이날 노 전 대통령의 별세 소식에 깊은 애도를 표하고 유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했다. 전경련은 “노 전 대통령은 6.29 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확립하며 자유 민주주의 가치를 되살렸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해 국가의 위상을 드높였다”며 “북방외교를 통해 한국 외교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자유와 개방에 바탕을 둔 경제정책으로 고속 성장을 이끄는 등 국가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경총 역시 “고인의 재임기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상반된 평가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외교적 지위 향상과 국가 경제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대한상의는 “인천국제공항, 경부고속철도 등 국책사업에 적극 나서며 국가경제발전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이윤정 기자(fact@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