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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6공의 황태자'로 불린 박철언…노태우 정부서 외교정책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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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태우 前대통령 타계 ◆

매일경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사람은 단연 처고종사촌인 박철언 전 의원이다.

박 전 의원은 이날 빈소가 차려질 예정인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산업화 시대가 민주화 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중간 가교 역할을 훌륭히 하신 현대사의 거인"이라며 노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은 1987년 6·29 선언으로 민주화의 장정을 시작해 직선 대통령으로서 기본권 신장을 위해 많이 노력하셨다"며 "노 전 대통령을 모시던 참모의 한 사람으로서 영면해서 평안히 잠드시길 기도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박 전 의원은 '6공의 황태자'로 불렸을 정도로 노태우 정권의 실세였다. 박 전 의원은 '월계수회'를 조직해 노 전 대통령 당선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평가받았으며, 노 전 대통령 취임 이후엔 대통령비서실 소속 정책보좌관에 임명되기도 했다. 이후 북방정책을 추진하며 북한을 포함한 공산권 국가들을 비밀리에 방문하는 '책사'로 노태우 정권 비밀외교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책사외교' '비밀외교'라는 점에서 비판도 받지만, 노 전 대통령 임기 중 개선된 남북관계에는 그의 역할이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노 전 대통령을 이을 후계자로 꼽혔지만,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민자당)이 출범한 뒤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표와 갈등을 겪었고, 김영삼 대통령 당선 후엔 외사촌 형이자 노 전 대통령 처남인 김복동과 함께 민자당을 탈당해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통일국민당으로 옮기기도 했다. 2000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노재봉 전 국무총리는 아직까지 활동 중인 보수 원로로 노 전 대통령 때 총리를 지냈다. 1988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정치특보를 지내기 전까지는 학자의 길만 걸어왔던 그는 노 전 대통령에게 각별한 신임을 받으며 청와대 비서실장, 국무총리로 직행했다. 박 전 의원과 함께 노 전 대통령 후계자로 지목받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강경 진압하는 과정에서 한 학생이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하고, 여기에 수서지구 특혜 분양 사건 등이 터졌는데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총리에서 물러났다. 이 밖에 지금까지 이름이 알려져 있는 경제 관료들도 노태우정부에서 발굴됐다.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대표적이다. 김 전 위원장은 11·12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노태우 정권 때인 1989년 보건사회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노태우 정권 말까지 경제수석을 지내기도 했다.

[박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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