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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12·12 쿠데타 주역, 6·29 선언으로 대권···영욕의 정치역정 [노태우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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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이 걸어온 길

육사 11기 '하나회' 통해 60년 애증관계 전두환 만나

5공화국 2인자 거쳐···1988년 13대 대통령으로 당선

범죄와의 전쟁 등 성과냈지만 군사반란 가담으로 옥고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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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쿠데타의 주인공, 부드러우면서도 결단력을 갖췄던 지도자. 역사 속에서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는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13대 대통령이다. ‘보통 사람’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그의 슬로건이었지만 보통 사람처럼 생긴 외모와 달리 그의 삶은 격변의 연속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1932년 8월 17일에 대구(달성군) 공산면 신용동에서 공산면사무소 면서기를 지낸 부친 노병수와 모친 김태향 사이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해서 팔공산에 백일기도를 드리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고 결국 결혼 후 9년 만에 노 전 대통령을 낳았다고 한다.

신식 교육을 받아 ‘개명신사’로 통했던 부친은 4~5세부터 그를 무릎에 앉히고 마을 유일의 유성기를 종종 들었다. 노래를 잘 부르기로 유명했던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도 유성기를 틀어주던 부친의 모습을 회고하고는 했다.

평이했던 그의 삶을 바꾼 건 육군사관학교 입학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육사 11기 모임인 ‘하나회’를 통해 군인에서 정치인이 되기 시작한다. 군인에서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60년의 애증 관계였던 전두환도 육사에 만난다. 그의 육사 동기이며 같은 대구 출신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1956년 봄 육군 제5보병사단 소대장으로 발령을 받았고 그곳에서 5사단장이던 박정희라는 인물을 알게 된다. 5사단 소대장 시절 사단장이었던 박정희는 노 전 대통령을 각별히 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어 5·16 군사 쿠데타를 통해 대통령 자리까지 오른다.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피살당하자 노 전 대통령은 전두환과 함께 군부를 장악한다.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이었던 노 전 대통령은 신군부 세력의 정권 획득을 위한 계획과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2인자의 반열까지 오른다. 이후 1980년 8월 6일에 전두환이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자 8월 23일 전두환의 후임으로 국군보안사령부 사령관 직을 역임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 체제에서 2인자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친구였던 전두환이 그를 하대하고 눈에 띄게 경계하며 둘 사이의 관계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은 2인자로서의 위치를 지키며 숨 죽인 채 전두환 정권 체제를 버텨냈다. 그는 1981년 육군 대장으로 예편한 뒤 민주정의당에 입당, 정계에 발을 들였다. 당시 대통령이던 전두환에 의해 민정당 당무위원에 임명되면서 사실상 민정당의 당권을 장악했다. 이어 1982년 3월 20일 체육부 장관에 발탁됐고 그해 4월 28일 제41대 내무부 장관, 대한체육회 회장 등을 맡았다.

1985년에는 전두환 당시 총재로부터 민정당 최고위원으로 내정돼 당권 전부를 위임받았다. 1987년부터는 민주정의당의 총재가 됐다.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근소한 표차로 대한민국의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1988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정치인 및 정치에 대한 풍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며 서슬 퍼런 군사정권의 그늘을 벗기기 시작했다. 이어 중국·동구권·소련 등 공산권 국가들과의 외교정책을 추진했고, 1991년에는 야당과 시민 단체의 요구를 수용해 지방자치제도를 부활시켰다.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결정이 내려지자 보수 세력의 반발에도 이를 강행하기도 했다. 범죄와의 전쟁, 작전통제권 환수 추진과 비핵화 선언, 언론 자유화 등이 그의 재임 시절 성과들이다. 재임 기간 서울에서 열린 88 올림픽은 냉전의 상처를 치유하는 상징이 되기도 했다.

다만 그의 말로는 편치 않았다. 1993년 퇴임 이후 1995년 비자금 사건 등에 연루됐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강제 진압과 12·12 군사 반란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도 됐다. 재판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97년 12월 22일에 특별사면을 받고 복권됐다. 2002년부터 투병 생활을 시작해 2021년 10월 26일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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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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