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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반세기 가구 장인' 조창걸 창업주, 한샘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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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지영호 기자] [막좌막우]'막상막하'의 순위 다툼을 하고 있는 소비기업들의 '막전막후'를 좌우 살펴가며 들여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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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한샘부엌살림직매장/사진제공=한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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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동안 국내 가구산업을 이끌어온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이 회사 지분을 모두 매각했습니다. 51년 역사를 가진 한샘은 이제 창업주의 손을 떠나 사모펀드 운용사 IMM프라이빗에쿼티가 소유하게 됩니다. 조 명예회장과 특수관계인 7인이 보유한 주식과 경영권을 넘기는 대가는 1조4500억원으로 책정됐습니다. 개인에겐 엄청난 돈이지만 평생을 가구만 보고 달려온 조 명예회장 입장에선 돈으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남아있을 듯 합니다.

서울대 건축학과 출신인 조 명예회장은 대학 졸업후 건축설계사로 일하면서 가장 낙후된 곳이 부엌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아궁이 방식의 부엌을 현대식으로 개조해보자는 마음으로 31살의 나이에 누나에게 200만원을 빌려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7평짜리 부엌직매장을 내게 됩니다. 1970년, 한샘은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아파트 건설이 시작되면서 사업은 호황을 맞습니다. 당시 아파트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전부인 집을 팔았는데, 현대식 부엌을 내세운 한샘의 상품들이 내부 공간을 채우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소공동 미도파백화점에 전시된 입식 부엌을 보려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고 아파트 건설 붐이 시작되면서 한샘은 고급 주방가구의 명성을 쌓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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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한샘산업사 모습/사진제공=한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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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샘산업사'라는 이름으로 막사 공장에서 사업을 키워나가던 한샘은 1980년대 '시스템 키친', 1990년대 '인텔리전트 키친'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인기를 끕니다. 이어 욕실, 창호, 마루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토탈 인테리어 기업으로 변신합니다.

조 명예회장은 1994년을 끝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최양하 전 회장에 바통을 넘겨줍니다. 최 회장은 서울대 금속공학과 출신으로 대우중공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1979년 경력직으로 한샘에 합류했습니다. 조 명예회장은 서울대 동문 후배들을 잘 챙겼다고 하는데요. 때문에 당시 규모가 크지 않은 한샘으로 이직하는 걸 두고 '왜 구멍가게로 가느냐'고 주변에서 만류했다고 합니다.

전문경영인으로의 전환은 또 다른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창업 15년만에 가구 1위, 30년만에 가구·인테리어 1위에 오른 한샘은 2013년 가구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매출 1조원을 넘어섭니다. 주택 리모델링 시장에서 인테리어 시공의 일관생산을 적용하고 패키지 상품을 개발하는 등 끊임없는 변신을 이어간 결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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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샘의 1970년대 부엌 제품 로얄/사진제공=한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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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샘 1980년대 부엌 제품 '팬시'/사진제공=한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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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샘 1990년대 부엌제품 '화이트'/사진제공=한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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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도 있었습니다. 글로벌 가구기업인 이케아가 국내에 상륙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당시 국내 가구기업의 고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한샘은 위기를 기회로 삼았습니다. 이케아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면서 이케아가 간과하는 한국 소비자만의 감성을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이케아가 상륙한 이듬해 한샘의 매출은 1조7105억원 기록하며 최고치를 경신합니다.

실적이 늘어난 것은 비단 한샘 뿐만은 아니었습니다. 2014년 4조6770억원인 국내 소매가구 시장은 2015년 6조8332억원으로 껑충 뛰었습니다. 이케아 상륙이 실제로는 '메기효과'로 이어져 산업 전체를 성장시킨 꼴입니다. 그럼에도 업계 1위였던 한샘의 대응이 철저하고 기민하지 않았다면 우려하는 국내 가구기업의 고사가 현실화됐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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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샘 3공장 전경/사진제공=한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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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위기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한샘 경영진의 논의는 새벽 5시부터 시작됐습니다. 조 명예회장은 재계에서 손꼽히는 새벽형 인간입니다. 저녁 8시에 잠들어 새벽 2시에 일어난다고 합니다. 조 명예회장은 일선에서 물러나서도 이 시간에 경영진들과 회의하면서 경영상황을 전달받았다고 합니다. 조 명예회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리더가 늦게 나와서 일하면 어떻게 구성원을 이끌겠느냐"며 "어떻게 일을 분배할 지 명확하게 계획을 수립해 놔야 현장에서 우왕좌왕 하지 않고 일을 마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회사 지분을 모두 매각한 조 명예회장은 이제 후학양성에 나선다고 합니다. 2015년 한샘 보유지분 절반인 260만여주(당시 종가 기준 4400억원)를 태재연구재단에 기부하기로 밝힌 후 지금까지 166만주를 출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분매각이 완료되면 당초 약속한 출연 지분을 채울 것으로 보입니다.

대학은 재학중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온라인 수업을 하는 미국의 미네르바 대학처럼 운영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젊은이들이 글로벌에서의 경험을 통해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키우겠다는 취지입니다. 평상시 독서와 사색, 국제정세 등에 관심이 많은 그는 미래 한국을 위한 씨앗을 뿌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조 명예회장의 제2의 사업도 좋은 소식이 들리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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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걸 한샘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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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샘 사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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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호 기자 tell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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