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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팩트체크] "아일랜드는 사회적 대타협으로 노동개혁에 성공해 선진국에 진입했다"…얼마나 사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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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들어와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나라는 일본과 아일랜드 밖에 없다"

"…유럽의 병자였던 아일랜드는 사회적 대타협으로 노동개혁에 성공해 천문학적인 외자유치로 선진국에 진입했다"

홍준표 국민의힘 대통령 예비후보는 자신의 공약집에서 우리나라 노동개혁의 모델로 아일랜드를 들었습니다. 아일랜드는 경제위기가 심각했던 1987년 △임금인상률 한시적 상한 설정 △법인·소득세 감면확대 등을 골자로 한 정부의 '국가재건 프로그램'에 노동계와 재계가 동참했습니다. '아일랜드 노사정 대타협'이라고 불리는 이 정책은 1990년대 아일랜드의 고도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홍 예비후보도 "선진국인 우리나라도 이에 걸맞은 노동개혁이 필요하다"며 아일랜드 사례를 꺼내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일랜드의 대타협이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는 명제는 얼만큼 진실에 가까울까요. 경제성장의 이면에 또 다른 면이 없는지 살펴봤습니다.

[체크 1] 아일랜드는 '노사정 대타협' 이후 고도 성장을 달렸다.


1987년 당시 아일랜드는 정부부채가 GNP의 140% 수준이고, 실업률은 16.8%,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총체적 경제위기 상황에 처했습니다. 1970년대 후반 일어난 석유파동과 세계경제 불황에 타격을 받은 와중에 아일랜드 정부는 공공부문의 지출을 늘리는 등 조치를 취했지만, 국민들의 세금부담이 늘어나고 국가부채는 계속해서 쌓였습니다. 1982-1986년 GNP 실질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1981년부터 10년간 20만 8000명이 이민으로 순유출 되는 상황까지 치달았습니다.

이가운데 정부는 '국가재건 프로그램'이라는 협정을 노사와 체결했습니다. 핵심은 연간 임금인상률 2.5% 제한하되 정부재정 건전화와 세금 감축으로 낮은 임금을 보전하는 것입니다. 또 정부의 개발지원정책에 노동자와 사용자가 신뢰감을 주는 것도 포함됐습니다.

또한 홍 예비후보 발언대로 '대타협'을 기반으로 적극적인 외자유치에 나섭니다 .1990-2000년 기간중 EU 회원국 중 아일랜드는 670억달러의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했습니다. 1인당 투자유치로 환산하면 1만 7621달러로 유럽연합 회원국중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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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2020년 아일랜드 및 유럽 GDP 성장률 [사진 출처 = world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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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정책이 효과를 보인 것은 자명합니다. 아일랜드가 1987년 대타협 이후 고도 경제 성장을 달렸습니다. 1986년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성장률은 꾸준히 높아졌습니다. 1995년부터 2002년까지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8.8%로 같은 기간 유럽연합(2.5%)과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실업률을 보더라도, 아일랜드가 최저실업률을 기록했던 2001년(3.68%)에 유럽연합은 9.2% 수준이었습니다. 월드뱅크에 따르면, 지난해 아일랜드 실업률은 5.62%로 OECD 평균(7.2%)보다 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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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한국.아일랜드 실질 GDP 추이 [사진 출처 = Lyons, R., From Emigration to Innovation : Ireland`s National Vision and Strategy in the 21st, Century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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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는 특히 복잡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이웃 영국과 비교해봐도 뚜렷한 성장세를 보입니다. 2003년 아일랜드는 구매력(PPP)기준 1인당 PGDP 수치에서 800년간 지배를 받았던 영국을 역전에 성공합니다. 영국 매체 더 이코노미스트는 아일랜드를 '켈트의 호랑이'이라고 부르면서 고도 성장세를 주목하기도 했습니다.

[체크 2] '노사정 대타협'의 과실은 모두에게 돌아갔나.


짚고 넘어갈 점은 아일랜드 경제의 활황세가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갔냐는 것입니다. 한국을 비롯한 현대 고도성장국가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축적된 부가 일부 계층에게만 몰리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 '소득불평등'에 대해선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유력 대권 주자가 발언한 '아일랜드 모델'이 실제 '소득불평등'를 불러일으켰는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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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2019 아일랜드 상위 10% 소득집중도 [사진 출처 = W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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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WID)는 아일랜드에서 소득 상위 10% 계층의 소득집중도가 점점 높아진다고 말합니다. WID 데이터에 따르면, 아일랜드는 1987년 기준 상위 10%가 전체의 30.93%의 소득(세전)을 얻었지만 이후 점차 증가해 2006년엔 37.44%으로 늘어납니다. 이후 일부 조정기간을 거치기도 합니다만, 2019년에도 35.16%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준입니다. 경제성장이 완숙기에 접어든 2002년 기준으로도 상위 20%와 하위 20%간 소득 격차는 6.4배로 같은 시기 한국보다 큰 편이었습니다.

물론 아일랜드도 두고만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현재 아일랜드는 누진세 등 세금을 통한 부의 재분배를 강력히 적용하고 있습니다. 아일랜드 언론 <아이리시 타임스>에 따르면, 2019년 아일랜드 국민 36%는 연소득 1만 5000유로 미만이었고, 10%는 6만 유로 이상을 한해 벌어들였습니다. 그러나 세제 혜택과 누진세를 적용한 뒤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연소득 1만 5000만유로 미만 인구는 전체의 12%로 감소했습니다. 6만 유로 이상 가처분소득을 가진 아일랜드인은 3%로 바뀌었습니다.

즉 '아일랜드 경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고도성장의 후유증인 소득 격차의 증가를 완화하는 재분배 정책도 언급하는 것이 더욱 적절해 보입니다.

[체크 3] 아일랜드 경제 모델의 위험성은?


"아일랜드는 노사정 대타협으로 적극적 외자유치를 통해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는 홍 예비후보의 발언은 대부분 사실로 보입니다. 하지만 저 문장은 '아일랜드 모델'의 지속 가능성 여부를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특히 외자유치를 통한 성장모델은 글로벌 경제위기때 그 부작용을 보여줬습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이듬해 세계 경제가 침체국면에 빠질때 아일랜드는 더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009년 유럽연합은 -4.2%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는데, 아일랜드는 같은해 -7.0%의 성장률을 보였습니다. 심지어 이전 해인 2008년에도 -3.0%를 기록했습니다. 이때 대규모 금융기관의 파산을 막기 위한 아일랜드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으로 재정건전성을 악화되고 맙니다.

이는 아일랜드 경제구조를 감안할 때 당연했습니다. 해외자금은 빠른 속도로 유출되고 이에 따른 플랜B가 준비되지 않았던 것이죠. 결국 아일랜드는 2010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신세가 되기도 했습니다. 재정건전성 악화로 떨어진 국가신용도도 반등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아일랜드 모델은 명과 암이 있습니다. 유럽의 빈국에서 '켈트의 호랑이'로 만든 정책의 밝은 점은 취하되 아일랜드가 먼저 겪었던 부작용과 어려움은 피할 수 있는 지혜가 우리에게 필요한 시점입니다.

[류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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