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지난 글에서 플랫폼 노동자의 기본권 보장에 대한 글로벌 논의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유럽, 미국, 호주 등 주요 대륙에서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이들을 최대한 '노동자'로 인정하는 판결, 행정처리 및 법률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바로가기 : 미국·영국·EU도 플랫폼 노동기본권 보장 흐름, 한국만 역주행?)
글로벌 대세는 입증책임 전환
미국의 AB5 법안, 그리고 유럽연합 의회가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시킨 결의안에서 분명히 확인되는 글로벌 추세가 있다. 플랫폼노동의 기본값을 '노동자'로 추정하고, 만일 여기에 이의가 있다면 사용자가 이를 입증하도록 한 '입증책임 전환'이다. 즉, 노동자가 노동자임을 입증하는 게 아니라, 사용자가 노동자 아님을 입증하라는 것이다.
▲ '노동자가 노동자임을 입증하는 것'에서 '사용자가 노동자 아님을 입증하게 하는 것'으로 노동자성 입증 책임을 전환하면, 노동자 개념을 적극적으로 넓힐 수 있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렇게 하면 전통적인 노동자(근로자)와 프리랜서 사이의 모호한 경계가 사라지고, 노동자(근로자) 개념을 적극적으로 넓힐 수 있게 된다. 특히 유럽연합 결의안의 경우 사용자의 입증으로 프리랜서로 확정되어도 전통적인 노동자 권리보다 낮은 권리를 강요해선 안된다고 함으로써 플랫폼노동 전체로 노동자 개념을 확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동안 노동법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알고리즘'에 대한 내용이 노동법의 규제 영역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특히 노동조건과 관련된 알고리즘 내용은 노동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는 것, 노동조합이 그러한 알고리즘의 수정·개정을 놓고 단체교섭을 벌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선 어떤 대안이 가능한가
<인사이드경제>가 이 연재의 초반에 정부가 사용하는 구분법에 따라 2가지의 플랫폼을 별도로 정의하고 설명한 바 있다. 알바 구직 플랫폼처럼 일자리·노무제공을 실제로 중개만 하는 플랫폼이 있는가 하면, 배달·택배·대리운전·모빌리티 등 일감 배정과 가격 결정에 개입하는 플랫폼도 있다.(바로가기 : 노동과 가격의 지배자 플랫폼, 불리할 땐 "우린 그저 중개만 합니다")
노무제공 중개만 하는 플랫폼에 사용자책임까지 물을 수는 없다. 알바몬이나 알바천국을 통해 일자리를 구한 이들의 노동법상 사용자는 중개 플랫폼이 아니라 새로 구한 직장의 사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개인정보가 넘어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호책임, 과도한 중개수수료를 책정하지 않도록 하는 규제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일감 배정과 가격 결정에 개입하는 플랫폼의 경우 노동법상 사용자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옳다. 사실상 임금과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일감 배정, 가격 결정의 원리를 담은 알고리즘은 사실상 취업규칙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더더욱 이들 플랫폼에게 사용자책임을, 그리고 이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함이 마땅하다.
▲ 플랫폼 기업에 사용자책임을 지우고 플랫폼 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
위 표에 정리된 것처럼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에서 노동자와 사용자 개념을 확장하고, 앞서 소개한 방식처럼 플랫폼노동의 기본값을 '노동자'로 추정하되 사용자가 입증해야만 프리랜서로 인정할 수 있도록 '입증책임 전환' 법리를 적용하면 된다. 실제로 중개만 하는 플랫폼의 경우 직업안정법을 통해 과도한 수수료 규재나 개인정보 보호의 내용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두 플랫폼 모두 알고리즘에 대해서는 투명하게 공개하고 노조의 교섭대상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거꾸로 가는 문재인 정부
그런데 노동정책에서 문재인 정부는 완전 청개구리다. 글로벌 추세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려 한다. 사실상 정부 입법안이라 할 수 있는 '플랫폼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후 '플랫폼종사자법')을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 대표발의로 내놓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이 법은 노동자(근로자)와 프리랜서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하지 않는다. 해외에서는 기본값으로 노동자를 추정하고 입증책임을 사용자에게 전환하는 추세인데 말이다. 이에 대해 정부와 장철민 의원은 "유리의 원칙을 명시해 노동법 적용이 되는 이들에 대해서는 노동법을 우선 적용토록 하고 있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질문 하나만 던져도 논리가 무너진다.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