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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손준성 영장 쳐놓고 이틀간 본인에게 쉬쉬… 법조계 “이건 사기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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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2021년 10월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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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고발사주 의혹’ 관련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공수처)의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두고 법조인들 사이에 ‘전례없는 방식’이란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소환 조사 없이 체포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됐고, 체포영장 기각 사흘 만에 구속영장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특히 ‘공수처가 체포영장 청구 사실을 숨기고 피의자를 속인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손 검사 측은 25일 구속영장 청구 사실을 통보받은 후 공수처 모 검사로부터 받은 문자를 공개했다. 손 검사가 여러 번 소환약속을 어겼다며 ‘최후통첩성’으로 출석을 압박하는 내용의 이 문자는 해석상 21일 발신한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다. “대선후보 경선일정 등을 고려해 조속한 출석조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면서 “(손 검사가)저희와 10월 22일 출석하겠다고 말씀하셨음에도 하루 전인 오늘에서야 변호인을 통해 일정상 어렵다고 연락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향후 정당한 이유 없이 예정된 출석에 불응할 경우 강제수사에 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공수처는 문자를 보낸 21일 당시 이미 손 차장검사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한 상태였다. 공수처가 25일 기자단에 알린 내용에 따르면 “마지막으로 약속한 10월 22일에 출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해 10월 20일 체포영장을 청구했다”고 했다. 이미 체포영장을 청구한 상태에서 이를 속이고 ‘또다시 소환에 불응하면 강제수사하겠다’고 한 것이다. 한 부장검사는 “출석일을 협의하면서 뒤로는 체포영장을 넣고 피의자를 속였다”며 “만일 손 검사가 22일 소환에 응했으면 발부받은 체포영장으로 체포할 계획이었나. 피의자를 기망한 것은 위법수사에 해당한다”고 했다.

또한 법조계에선 공수처가 지난 23일 손 검사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고도 이를 이틀이나 숨긴 것도 심각한 방어권 침해라는 지적이 나왔다. 공수처는 영장실질심사를 하루 앞둔 25일에야 변호인에게 영장 청구 사실을 통보했다. 통상 검찰 등 수사기관은 피의자 영장을 청구한 경우 당일 거의 바로 당사자와 변호인에게 알린다. 한 검찰 관계자는 “사적 보복이나 마찬가지다. 피의자의 방어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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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2021년 10월 26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출근하며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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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손 검사의 변호인도 전날 “공수처에 이미 수차례 알린 대로 변호인의 주거지 이사가 오늘(25일)이어서 대전에서 이사하던 중 오후 2시쯤 영장청구 사실을 처음 접하고, 바로 서울로 출발하며 공수처에 하루 연기요청을 했으나 공수처는 내일(26일) 출석하라는 입장에 변함이 없었다”면서 “영장청구서 부본을 18시쯤에야 법원을 통해 확인하고, 조력을 위한 시간이 부족함을 재차 설명하며, 27일 출석협의 요청을 했으나, 이 역시 거절됐다”고 밝혔다.

손 검사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이날 오전 10시 30분 이세창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열리는데, 변호인이 영장청구서를 받아본 시각(전날 오후 6시)을 고려하면 준비시간이 약 16시간 30분밖에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한 현직 검사는 “이건 사기다”고 했다. 그는 “사전 영장 청구를 하면 통상 이틀의 말미를 주고 심문기일을 잡는 게 확립된 실무 관행이고, 당사자가 변론을 준비할 시간을 주기 위해 영장 청구 즉시 알려 준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엔 지난 주말에 영장을 청구한 상태에서 본인에게 알리지 않고 있다 심문 기일 20시간도 남기지 않고 언론에 공개하면서 변호인에게 알렸다는 것이다. 그는 “공수처가 손 검사 측의 영장 심문기일 연기 요청을 막은 것은 국가기관으로서는 해서는 안 되고 전례도 없는 비겁한 사기행위에 가깝다”고 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사실상 자료 검토할 시간도 제대로 주지 않은 것”이라며 “공수처가 왜 영장청구 사실을 늦게 알렸는지 이유를 제대로 밝히지 않으면 의도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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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체포영장이 기각당했다고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 자체가 제도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현직 법원장은 “소환통보에 불응할 경우 청구하는 게 체포영장인데 체포영장이 기각당했다고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 자체가 제도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불구속 수사가 원칙인데 일단 구속시켜 놓고 조사하겠다는 것은 굉장히 옛날 방식”이라고 했다.

앞서 공수처는 구속영장을 청구한 배경에 대해 손 검사의 출석 불응을 이유로 들었다. 공수처는 전날 “이달 4일 처음 소환을 통보한 이후 계속된 조율 과정에서 손 검사 측이 보여준 일관된 불응 태도 등을 감안할 때 더 이상 체포영장 재청구를 통한 출석 담보 시도는 무의미하다고 봤다”며 “대신 사전 구속영장 청구를 통해 법관 앞에서 양측이 투명하게 소명해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는 것이 더 객관적이고 공정한 처리 방향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손 검사 측은 이에 대해 “이달 21일 선임된 변호인이 사건 파악이 이뤄지는 대로 11월 2일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공수처에 명시했다”며 “하지만 공수처 모 검사는 22일 대선 경선 일정이라는 정치적 고려와 강제 수사 운운하는 사실상의 겁박 문자를 피의자와 변호인에게 보내왔다”며 문자를 공개하고 반박했다.

[이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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