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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서 냄새가..." 손님의 말이 '400살 어른'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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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 23m 상수리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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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옥천군 안내면 장계리 '뿌리깊은나무'에 있는 상수리나무.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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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한 그루 보물같은 나무를 지킨 사례를 소개한다.

충북 옥천 안내면 장계리 레스토랑 겸 카페 '뿌리깊은나무(대표 백운배)'에는 400살 '잡수신' 상수리나무가 한 그루 있다. 줄기 둘레는 3.7m로 성인 두 사람이 양팔을 뻗어도 다 안지 못할 정도이고 수고는 아파트 10층에 맞먹는 23m다.

곧게 뻗은 줄기에는 가지가 아름답고 풍성하게 자라 건강한 듯 보이지만, 1년 전까지만 해도 상수리나무는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위험에 처해 있었다.

나무에서 냄새가 난다고?

뿌리깊은나무 백운배 대표가 나무가 아프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은 5-6년 전, 캐나다에서 온 지인을 통해서였다.

"손님이 나무 옆을 지나며 하시는 말씀이 '나무에서 냄새가 난다'는 거예요. '나무가 썩는 냄새인 것 같다. 캐나다에 있을 때도 이런 냄새를 맡은 적 있는데 그런 나무들이 보통 수년 안에 넘어가더라'는 거였죠."

뜻밖의 소식에 불안해진 그는 당장 전문가에게 나무 상태를 진단해 보기로 했다. 수소문해 충북대학교 식물의학과 교수이자 전 식물종합병원 원장인 차병진 교수를 찾았다.

초음파 진단을 한 차 교수는 "기둥 중심 부분이 점차 썩어들어가는 동공화 현상이 있지만, 지금껏 살아온 세월만큼 더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운배 대표는 안심했다. 다만 나무가 꾸준히 관리를 받으려면 보호수로 지정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장계리 이장과 협의해 군에 보호수 지정 신청서를 냈다. 나무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본래 마을 둥구나무였던 상수리나무다. 1980년 대청댐 건설로 인한 수몰 전까지 이곳에는 마을이 있었다. 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각별한 관심을 받으며 수세를 유지해왔다.

안내면 장계리 이국무 이장은 "농사를 짓다가 땀을 식힐 수 있는 쉼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가지에는 그네가 매여 있었고 때로는 그 앞에서 소원을 비는 이들도 있었다. 어떤 이유인지 가지를 자르려 했던 사람이 다쳤다는 소문이 퍼진 이후로, 더욱 신성한 나무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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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둥 한 쪽에 썩은 부분을 치료한 흔적이 보인다. ⓒ 월간 옥이네



백운배 대표에게도 상수리나무는 특별하다. 그가 처음 나무를 마주한 것은 1988년, 노후에 전원생활을 할 목적으로 땅을 찾던 때였다. 금강이 펼쳐진 풍경도 훌륭했지만, 그보다 400년 된 상수리나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워낙 우람하고 수려한 데다, 어쩐지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나무였어요. 경외심이 생긴다고나 할까요."

환경 좋고 경치 좋은 곳은 많았지만, 이런 나무는 어느 곳에도 없다는 생각에 3천 평 땅을 매입했다. 넓은 땅을 가꾼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기에 고민 끝에 레스토랑 겸 카페를 열어 활용하기로 했다. '뿌리깊은나무'라는 상호가 생긴 것도 상수리나무 덕이다.

"1997년 이곳 문을 열 때 상호를 고민했어요. 푸른 언덕, 꿈의 궁전... 여러 후보가 있었는데 아내가 '이곳 주인은 400년 된 나무이니 상호도 그렇게 하자'고 말했죠."

상수리나무는 그렇게 백운배 대표 또 이곳을 찾는 손님들과 함께 세월을 보냈다. 그가 또 한 번의 운명적인 인연을 만난 것은 지난해 7월의 일이다.

나무가 정말 나를 부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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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옥천군 안내면 장계리 '뿌리깊은나무'에서 내려다보이는 대청호 풍경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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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조연환 전 산림청장은 우연히 뿌리깊은나무를 찾았다. 대청호 인근 한 카페에서 지인들과 다과를 할 계획이었다. 미리 봐두었던 카페로 향했지만 길을 헤맸다. 일행 한 사람이 뿌리깊은나무에 가볼 것을 제안했고 상수리나무를 만났다.

"와서 보니까 나무가 얼마나 잘 생겼어요. '아, 이건 보통나무가 아니구나' 싶더라고. 상수리나무로서 이렇게 크고 오래된 나무는 내가 아직 본 일이 없어요. 감탄하면서 둘러보는데 자세히 보니 나무 안쪽이 썩어들어갔고 오른쪽 가지가 갈라져서 태풍이라도 불면 금방 넘어갈 것 같은 거야. 야, 이거 큰일 났다. 어떻게든 살려야겠다 싶었지요."

곧장 옥천군 산림녹지과장에게 연락해 상수리나무 치료를 부탁했다. '당장은 예산이 부족해서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체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본 조연환 전 청장은 SNS에 '이 나무를 살려 주세요'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고, 400명 가까운 사람이 이에 공감했다.

"돌아가는 길에 일행이 그러는 거야. '길을 잘못 든 게 아니고 저 나무가 나를 부른 것 같다'고. 그 말을 듣고 나니 나무를 살려야겠다는 책임감이 더 강하게 들었죠."

이후 나무를 살리려는 사람 28명이 모여 '상수리나무를 사랑하는 모임'이 만들어졌다. 권선복 도서출판행복에너지 대표는 사람을 모으고 이 상황을 언론에 알렸다. 옥천 기업인 교동식품 김병국 사장은 외과수술 비용을 부담하겠다며 나섰다. 옥천신문 오한흥 전 대표는 상수리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될 수 있도록 힘쓸 것을 이야기했다.

'상수리나무를 사랑하는 모임' 구성원은 8월 1일, 실제로 '뿌리깊은나무'에 모여 '보호수 지정이 되지 않는다면 기금을 모아 나무를 살리겠다'는 뜻을 모으기도 했다.

그 무렵, 차병진 교수가 나무 상태를 다시 한번 진단했다. 그는 당시 상태에 대해 "이전보다 급격히 나빠져 쓰러질 위험이 무척 컸다"고 회상했다.

2020년 10월 19일. 마침내 장계리 상수리나무는 옥천군 보호수 41호로 지정됐다. 옥천에서는 2012년 청산면 의지리 느티나무 이후 8년 만의 보호수 지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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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옥천군 안내면 장계리 '뿌리깊은나무'에 있는 상수리나무. 옥천군 보호수로 지정됐다.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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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수 지정 이후

썩어들어가던 줄기 안쪽을 깨끗이 닦아내고 상처를 싸맸다. 부러질 위험이 있던 가지 아래에는 지지대가 설치됐다. 상수리나무는 많은 이의 관심 속에 건강을 회복해가고 있다. 이번 달이면 어느덧 보호수 지정 1주년을 맞이한다.

"보호수가 되기까지, 한 그루 나무가 그냥 서 있는 게 아님을 깨달았죠. 여러 사람의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걸 느꼈어요. 나무는 그 나무를 '사랑하는 만큼' 그 사람의 것이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동안은 상수리나무를 뿌리깊은나무의 상징처럼 생각했지만, 나무의 주인이 내가 될 수는 없다는 거예요." (백운배 대표)

조연환 전 청장은 "이렇게 나무 한 그루에 애정을 갖고 살려내려 앞장선 것은 이 나무가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굴참나무'에 비유하며 이곳 상수리나무를 '할아버지 나무'라 부른다. 그는 상수리나무의 보호수 지정 이후로도 나무를 보러 종종 이곳을 찾는다. 백운배 대표와도 좋은 친구 사이가 됐다.

처음 나무를 살리고자 만들어진 '상수리나무를 사랑하는 모임'은, 상수리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면서 그 목적을 이뤘다. 당장은 쉬어가지만, 언젠가 또다시 나무 아래에 모일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상수리나무가 또 한번 이들을 부르는 날 말이다. 그때까지 상수리나무는 부지런히 가지를 뻗고 자라날 것이다. 더운 여름날에는 그늘을, 추운 겨울날에는 피난처가 되어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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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옥천군 안내면 장계리 '뿌리깊은나무' 백운배 대표와 조연환 전 산림청장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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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있는 사람은 나무를 가꾼다" - 조연환 전 산림청장과 나무 이야기

"나는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는 못돼요. 낙엽수 중에 형제가 제일 많은 나무가 참나무인데 내가 형제가 9남매거든. 참나무 중에서는 상수리나무가 목재 질도 좋고 열매도 맛이 있고 하니 제일 맏이죠. 하지만 내 생각에 나는 그렇게 좋은 나무는 아닌 것 같아. 굴참나무는 겉보기는 아주 우람하고 단단해서 좀 좋아 보이지만 속은 상수리나무만 못해요."

조 전 청장이 스스로를 굴참나무에 비유하는 이유다.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는 형제 사이이니, 그가 이곳 상수리나무를 두고 '할아버지 나무'라 부르는 게 틀린 말은 아니다.

"농고를 졸업하고 19살에 산림청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해 산림청장이 되기까지 38년 4개월을 나무와 보냈어요. 산과 나무는 내 어머니이자 은인같은 존재인 거죠. 평생 나무를 보면서 든 생각이 '한 그루 나무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예요.

나무는 처음 뿌리내린 자리에 평생 떠나지 않고 자라죠. 기름진 땅이든, 황폐한 땅이든 불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자라잖아요. 그러면서 인간과 자연에 온갖 이로운 것을 다 주고 가요. 산소는 내뿜고 환경에 나쁜 이산화탄소는 들이마시고, 그늘을 내어주고 홍수를 막고. 나무만큼 하느님의 창조 목적에 따라 사는 피조물이 없는 것 같아."

그는 나무를 '삶의 은인'이자 '닮고 싶은 대상'이라 칭하며 인간은 나무와 함께 살아야 편안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성경에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 살 때, 나무가 있고 숲이 있고 온갖 식물이 있었잖아. 인간은 그 속에 살아야 행복하도록 지어진 거예요.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는 국가도 대부분 나무와 숲을 잘 가꾸는 나라죠.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당장 결과가 나오는 일은 아니지만,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것은 분명해요. 꿈이 있는 민족만이 나무를 가꿔요."

[관련기사] 보호수는 아니지만 보호해야 할 나무 http://omn.kr/1vpkh

월간옥이네 통권 52호(2021년 10월호)
글·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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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옥이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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