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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美 반도체 기밀 요구 ‘카운트다운’… 고심 커지는 삼성·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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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12인치 웨이퍼. /TSM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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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요구한 반도체 정보 제출 마감 시한이 약 보름 앞으로 다가오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을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업체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미 정부가 기업이 극비로 취급해 온 고객사 주문량 등의 정보를 요구하는 것도 모자라 이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강제수단을 동원하겠다는 방침을 재차 밝히고 있어서다.

26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최근 여러 통로를 통해 반도체 제조사로부터 정보를 받아 반도체 공급망을 투명하게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수차례 강조하고 있다. 앞서 지난 9월 미 백악관과 상무부는 반도체 부족 대응을 위해 삼성전자 등 업계 관계자들을 소집해 회의를 열었고, 이 자리에서 반도체 업체들에 ‘주요 고객 3사와 주문량’, ‘주력제품 재고’, ‘증설 계획’ 등 기업의 핵심 영업기밀에 대한 설문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당시 미 정부는 ‘자발적’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업계는 사실상 ‘강제조치’로 인식하고 있다. 지나 러만도 미 상무부 장관은 지난 9월 23일(현지시각) 한 외신과 인터뷰에서 “기업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수단이 있다”라며 “거기까지 가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래야 한다면 그럴 것이다”라고 했다.

미 상무부는 최근 SK하이닉스, 인텔, 제네럴모터스(GM), 인피니언 등이 조만간 반도체 관련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라면서 또다시 ‘강제조치’에 대해 언급했다. 상무부 대변인은 “그들의 노력에 매우 감사하며, 다른 기업도 동참하기를 권한다”라며 “(정보제공은) 자발적이지만, 이 정보는 공급망 투명성 우려를 해소하는 데 중요하고, 강제조치 사용 여부는 동참하는 회사의 숫자와 정보의 품질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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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이 위치한 경기 평택캠퍼스. /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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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GM은 “기간 내 자료를 제출할 예정이다”라고 했고, 인텔과 인피니언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는 게 외신의 보도 내용이다. SK하이닉스 역시 “해당 발언과 관련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일단 미 정부 요구를 외면할 수 없다는 인식 아래, 정부와 협조하며 계약상 비밀유지 조항이나 국내법 저촉 여부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 정부가 이번 반도체 정보 요구에 근거로 삼은 건 ‘국방물자생산법(DPA)’이다. 해당 법은 6·25 전쟁이 있었던 1950년 9월 제정된 미국 연방법으로, 미국이 냉전 당시 실시한 전쟁 동원령 관련 정책 중 하나다. 국가비상사태 시 정부가 산업을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골자다. 미 정부가 반도체 부족 문제를 ‘국가비상사태’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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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반도체 클린룸. /SK하이닉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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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미 정부가 글로벌 반도체 공급 부족을 틈타, 냉전시대 법을 가져와 반도체 패권 전쟁의 우위에 서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의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엔 중국 견제의 목적도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앞서 지난 4월에도 미 백악관은 반도체 업계 대표들과 공급망과 관련한 화상회의를 열었고, 이 회의 직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대만 TSMC는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오는 2023년까지 100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당시 TSMC의 이런 계획은 중국 기업과의 거래를 사실상 끊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인텔은 미국 내에서 자동차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과 더불어 파운드리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현재 인텔은 미 하원에 계류 중인 60조원 규모의 반도체 생산 촉진법(CHIPS) 통과를 요구하며 전방위 로비를 펼치고 있기도 하다. 인텔은 미 정부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의 중심에 있는 회사 중 하나로, 각 반도체 기업이 제출한 정보가 인텔 측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대만 언론사 중시신문망(中時新聞網)은 전날 TSMC가 미 상무부에 반도체 재고와 주문, 판매 등의 정보를 제출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애플과 AMD 등 글로벌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를 주요 고객사로 두고 있는 TSMC의 결정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받게 될 자료 제출에 대한 압박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런 방식의 정보 제출 요구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라며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민감한 정보가 미 정부로 넘어가 유출될 경우 고객사 가격 협상 등에 불리하게 작용할 우려가 있고, 법적 분쟁이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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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남부과학산업단지(난커·南科)에 위치한 TSMC의 팹 16. /TSM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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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미국의 반도체 정보 제출 요구와 관련해 대미 접촉 활동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김정일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전날부터 오는 27일까지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해 미 행정부와 의회 인사 등을 대상으로 아웃리치(접촉·설득) 활동을 벌인다. 김 실장은 제레미 펠터 미 상무부 차관보와 만나 미 정부의 반도체 정보제공 요구와 관련해 영업비밀 유출 등에 따른 국내 기업의 우려를 전달할 예정이다.

박진우 기자(nicholas@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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