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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단독] 정부, ‘인공지능 식별사업’ 업체 명단도 2년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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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자동 출입국 심사대. 공동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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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식별추적시스템’ 구축을 명목으로 내·외국인 얼굴 사진이 대거 민간 업체에 이전됐다는 사실이 최근 <한겨레> 보도로 알려지자, 정부가 참여 업체 명단을 법무부 누리집에 뒤늦게 공개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상 개인정보 처리 업무를 제3자에 위탁할 경우 수탁자가 누구인지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법무부는 사업을 시작한지 2년여 동안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가 업체들에 개인정보를 이전하며 맺은 계약이 단순 위탁이 아닌, 위법한 ‘개인정보 제공’에 해당한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정부, 개인정보 민간 위탁 사실 ‘뒤늦게 공개’


25일 <한겨레>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지난 21일 법무부는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누리집의 ‘업무 공지’ 게시판에 게시물을 올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법무부는 개인정보 처리 업무 위탁계약의 위탁하는 업무 내용과 수탁자를 공개한다”고 밝혔다. 이 글에서 법무부는 ‘인공지능 식별추적 시스템 기술 개발 및 검증·실증’을 위해 얼굴 사진 등 개인정보 처리위탁 계약을 맺은 업체 24곳을 공개했다. 이 가운데 16곳은 지난해 6월, 8곳은 올해 4월에 계약을 맺었다.

정부가 참여 업체를 공개하고 나선 건 개인정보 처리 업무 위탁자의 의무를 규정한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이다. 이 법 제26조 등은 개인정보 처리 업무를 제3자에 위탁하려면 위탁업무 내용과 개인정보 처리 업무 수탁자 등을 “정보주체가 언제든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이 사업의 참여 업체 명단을 공개한 것은 2019년 4월 법무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양해각서(MOU)를 맺고 사업을 시작한지 2년 6개월 만에 처음이다.

정보인권 단체들은 수탁자 공개의 ‘시기와 방법’이 모두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는 “적어도 개인정보가 수집되는 시점에는 그 처리 방침과 수탁자 등이 정보주체에게 안내됐어야 한다. 법무부는 2년 넘도록 통지도 없이 개인정보를 민간 업체가 이용하게 해왔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과기부와 양해각서를 맺은 건 2019년이지만 실제로 개인정보를 실증 서버에 올린 것은 지난해 8월 정도”라고 설명했다. 참여업체 명단을 최근에야 공개한 데 대해서는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규정상 공개하는 것이 맞다고 확인했다”고 전했다.

“얼굴 사진 ‘위탁’ 아닌 ‘제공’으로 봐야”


정부는 개인정보를 민간 업체에 ‘제공’하는 것이 아닌 단순 ‘처리 위탁’ 할 때는 정보주체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개인정보보호법 상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거나 법령상 의무를 준수하기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에는 본인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데, ‘출입국 심사 고도화’가 목적인 이 사업은 이런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법무부와 과기부는 최근 낸 설명자료에서 “법무부는 출입국 심사를 위해 국민·외국인에 대한 생체정보를 수집·활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다”며 “자동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하는 사람의 신원을 신속·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식별 시스템을 개발하려는 목적으로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법무부 계약 내용이 ‘위탁’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조계 안팎의 반론이 만만치 않다. 대법원은 지난 2017년 4월 개인정보 보호법 관련 사건(2016도13263)에서 “개인정보 처리 위탁에서 수탁자는 위탁사무 처리 대가 외에는 개인정보 처리에 관하여 독자적인 이익을 갖지 않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반면 이 사업의 민간 업체들은 최소 1억7000만여건의 내·외국인 안면 데이터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학습해 특허를 취득하는 등 ‘독자적인 이득’을 누렸다고 볼 만한 정황들이 확인된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법무부·과기부에서 받은 ‘인공지능 식별추적시스템 관련 저작권 특허 등 지적재산권’ 자료를 보면, 지난해에만 민간 업체 두 곳이 ‘카메라 입력 영상 딥러닝’, ‘비대면 계좌 개설 시스템’ 분야에서 각각 특허를 등록하거나 특허 결정 등록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부는 사업 초기부터 ‘글로벌 경쟁력 확보’, ‘신시장 진출’ 등을 참여 업체를 위한 당근으로 내걸기도 했다. 이 역시 수탁자에게 ‘이익’을 주겠다는 목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과기부는 2019년 4월 법무부와 업무협약을 맺은 뒤 낸 보도자료에서 “과기부·법무부 공동프로젝트는 출입국 시스템의 선진화와 국내 인공지능 기술력 향상을 함께 도모한다”며 “인공지능 기업들은 출입국시스템 개발‧고도화 과정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조기에 확보하여 신시장에 진출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디지털정보위원회 소속 서채완 변호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민간 업체들이 접근할 수 없는 개인정보에 접근해 얻은 무형의 이익과 특허 등은 이 사업을 통한 ‘독자적 이익’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 식별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 출입국심사 목적의 개인정보 이용도 아니어서 위탁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개인정보를 민간에 ‘위탁’ 아닌 ‘제공’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변협·민변 등 법조단체 잇단 ‘비판 성명’


대한변호사협회(변협)와 민변 등 법조단체들은 이런 방식의 개인정보 민간 이전에 대해 잇달아 우려를 표하고 있다. 변협은 지난 22일 성명서를 내어 “안면인식 데이터를 민간업체에 무더기로 제공한 정부의 개인정보 경시 행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출입국 심사과정에서 확보한 안면 이미지 등 영상은 다른 정보(여권 정보)와 쉽게 결합해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에 해당한다. 제공·이용 등 처리에 신중을 기해야 하고, 원칙적으로 (이용에 대한)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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