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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고작 37분 통신 먹통에 “국민 절반 ‘디지털 손발’ 묶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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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5일 오전 11시30분쯤 KT 유·무선 인터넷망에서는 장애가 발생해 데이터 전송이 이뤄지지 않는 '먹통' 사태가 발생했다. 이번 '먹통' 사태는 약 30분간 지속된 뒤 일부 정상화돼 KT 아현 사태 때보다 시간은 짧았지만, 범위가 전국이었다. KT에서는 오전에는 디도스 공격이 원인이라고 했으나 오후 들어 라우팅 오류를 원인으로 정정했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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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그릇 비울 시간쯤 될까. 초등학교 1교시 수업시간(40분)도 안 된다. 하지만 ‘일상’이 멈춰버렸다. 택시요금이나 식사대금 결제는 물론 코로나19 방역, 분초를 다투는 119상황실도 ‘먹통’이 됐다. 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이 일상화해 있어 피해는 더 컸다.



‘초연결 사회’ 취약점 그대로 노출



25일 오전 11시20분쯤부터 37분여간 KT의 네트워크 장애로 유·무선 인터넷이 끊어지면서다. 원격수업을 하던 전국 초·중·고교의 수업이 중단됐고, 점심 장사를 앞둔 음식점에선 신용카드가 결제되지 않았다. 증권 거래 등 일부 금융 업무에도 차질이 생겼다. 이 짧은 시간에 ‘초연결 사회’(hyper-connected society)의 취약점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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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인터넷망 장애로 25일 오전 경남 창원시 한 무인 카페에 '네트워크 연결 상태 확인 요망'이라는 알림 메시지가 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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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KT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20분쯤부터 발생한 KT의 유무선 통신망 장애는 11시57분부터 차츰 복구돼 1시간25분 뒤인 오후 12시45분께 100% 복구됐다. 통신 장애는 서울·수도권을 포함해 강원, 제주 등 전국 모든 지역에서 일어났다.

KT는 유선통신 시장에서 41%(가입자 940만 명), 무선에서 24%(1700만 명)의 시장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다. 가입자를 산술적으로 더하면 2600만 명이 넘는다. 최소 37분에서 최장 85분가량 전 국민 절반의 ‘디지털 손발’이 묶인 셈이다.



학교·증권·식당·택시 모두 ‘먹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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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 QR체크인 기기가 작동되지 않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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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KT 인터넷망이 전국적으로 한 시간 넘게 장애를 일으키면서 카드결제 등이 먹통이 돼 이날 낮 전남 구례군 마산면 한 카페를 찾은 손님이 현금으로 계산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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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통신 단절로 인터넷 검색·메신저·결제 등이 작동하지 않아 불편 사례가 속출했다.

직장인 황모(38)씨는 “전화와 인터넷 모두 되지 않으니 곧바로 고립되는 느낌이 들면서 불안해졌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30)씨는 “아무런 안내도 없어 휴대폰이 고장 난 줄 알고 다섯 번이나 껐다가 켰다”며 “오늘 대출이자를 송금하는 날이라 진땀을 흘렸다”고 말했다. 코로나 방역을 위해 필수적인 QR코드 인증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식당가에서는 수기로 전화번호를 기록하는 등 혼잡이 빚어졌다. KT는 이날 장애와 관련해 오후 3시쯤 회사 웹사이트와 앱에 사과문을 띄웠다. 안내 문자는 따로 보내지 않았다.

경기도에서 학교 등에 식자재 공급을 하는 윤모(36)씨는 이날 전산망 오류로 3000만원 상당의 계약을 놓쳤다. 이날까지인 입찰 기한을 놓치면서다. 윤씨는 “전혀 예상치 못한 전산 문제로 입찰에 실패했는데 이 손실 보상을 어디에 따져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119종합상황실도 속을 태웠다. 충북소방본부 관계자는 “KT기지국 회선을 사용하는 일반전화나 휴대전화 119 신고가 11시28분부터 20분 정도 연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대면 일상화로 피해 더 클 듯



비대면이 보편화하면서 피해 규모는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게 온라인 교육 수업을 진행 중인 일선 학교였다. 경기도의 한 대학교에서 근무하는 정모(42) 교수는 이날 오전 11시부터 온라인으로 시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험을 한창 치르던 11시20분쯤부터 전산에 조금씩 문제가 생기는 것 같더니 상당수 학생의 접속이 끊어졌고 문제를 호소하는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 교수는 시험을 중단해야 했다.

이 밖에도 증권사 지점이나 식당, 택시 등에서 서비스 이용에 불편을 겪었다. 여신협회에 따르면 이날 정오부터 오후 1시까지 신용카드 승인 건수가 평소 대비 30~40%가량 줄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전화 통화도 되지 않았다.



“디도스→라우팅 오류” 혼선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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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웹페이지에 올라온 사과문(왼쪽)과 KT 무선서비스 사용자가 인터넷 접송 장애를 겪은 화면(오른쪽). [사진 웹페이지, 스마트폰 화면 캡처]



국가기간통신망 사업자인 KT는 이날 장애 발생 원인을 두고도 말을 바꿔 혼란을 키웠다. 사고 발생 직후 KT는 원인을 디도스(DDoS·악성코드를 이용한 서비스 거부) 공격으로 추정했다가 3시간 뒤 “네트워크 경로 설정 오류(라우팅 오류)가 원인”이라고 정정했다.

KT 관계자는 “초기엔 트래픽 과부하가 발생한 현상을 보고 디도스 공격을 받았다고 판단했는데, 장애 패턴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라우팅 오류로 밝혀졌다”며 “이렇게 대대적으로 라우팅 장애가 발생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라우팅이란 데이터가 네트워크의 중앙부에서 사용자한테 도달할 때까지 가장 효율적인 통로를 찾아주는 작업이다. 트래픽이 다니는 길목의 ‘신호등’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해 이번 KT의 네트워크 장애는 신호등이 고장 나 특정 차선이 계속 막히면서 과부하가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과부하가 발행하거나 주회선에 문제가 생겼을 때 보조수단으로 백업망이 가동한다. 경우에 따라서 제3의 비상망까지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날 통신 장애 때는 백업망이 작동하지 않았다. KT 측은 이에 대해 “기술적인 문제는 확인 중”이라고 답했다.

익명을 원한 정보기술(IT) 서비스 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장애가 날 수는 있지만 백업망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은 의아하다”며 “KT 망을 이용하는 서비스 업체들의 망 이중화가 갖춰지지 않아 피해가 더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아현지사 화재 사고 이후 KT에서 3년 만에 대규모 네트워크 장애가 발생한 데 대해서도 비판이 나온다. 2018년 11월 24일 발생한 KT 아현지사 화재로 서울 중구·용산구·서대문구·마포구 등지에서 경찰·병원·금융 같은 사회 인프라 작동이 마비됐다. 112 신고 시스템과 병원 전산망도 멈췄다. 장애를 복구하는데 길게는 일주일 이상 걸렸다. 당시 KT가 추산한 물적 피해 규모는 470억원이었다.



“37분 중단은 상당히 심각한 수준”



일부 전문가는 이번 장애와 관련해 KT의 내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관리 실패에 따른 기술적 오류라면 큰 문제인 데다 내부 원인을 찾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 역시 심각한 수준”이라며 “기간통신사업자의 취약점이 불순세력에 노출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인호 고려대 컴퓨터학과 교수 역시 “37분은 화재가 났다거나 범죄와 연관됐다면 사람이 숨질 수도 있는 상당히 긴 시간”이라며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질타했다.

이번 사건이 초연결 사회의 파괴력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메일과 휴대전화, 전자상거래, 사물인터넷 등 네트워크로 촘촘하게 엮인 기술 의존적인 사회일수록 재난에 취약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복잡성 과학자 존 L 캐스티는 현대 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미지의 사건을 ‘X사건’이라고 칭하며, 그 중 하나로 ‘디지털 암흑’을 꼽았다.

실제로 2018년 12월 통신장비업체 에릭슨의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일본·영국 등 11개국의 통신 시스템이 마비돼 8000만여 명이 4시간가량 ‘먹통’ 현상을 겪었다.

박병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사태가 초연결 사회의 어두운 면이 단적으로 드러난 일종의 X사건인지,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딸꾹질(hiccup) 사건’인지 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X사건으로 판단된다면 통신망뿐만 아니라 전기·수도·에너지 등 이번 사건처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기간망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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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장애 주요 사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과기부·KT “위기관리위 통해 조사 중”



한편 KT는 위기관리위원회를 가동해 자체 조사를 진행 중이다. 과기정통부등 등 유관기관도 사고 원인 조사에 들어갔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KT에 통신망 장애에 따른 피해 규모 조사를 지시했다”며 “조사 결과에 따라 보상을 어떻게 할지는 물론 재발 방지 대책 등 후속 조치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 보상안에 대해 KT는 “현재로썬 구체적으로 나온 것이 없다”고 밝혔다. 아현 화재 사태 때는 피해 정도에 따라 1~6개월 요금을 감면하고, 소상공인 1만2000여 명에게 각 40만~120만원씩 보상금을 지급한 바 있다.

최은경·문희철·권유진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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