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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美, 中에 전함수 추월당했다… 100년 전 대영제국 ‘실수’ 되풀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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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 불충분한 첨단무기에 과신(過信)하며 올인했다가 신형 전함 건조 차질 빚어… 전함 ‘퇴역’ 속도가 ‘건조’ 속도보다 빨라

미 해군정보국(ONI)는 지난 3월, 작년말까지 중국의 전함 수는 360척으로 미국(297척)을 추월한 것으로 추정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중국 전함이 갈수록 첨단 무기로 장착해, 갈수록 두 나라간 ‘질적 차이’를 좁히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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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차 대전을 무려 6000척이라는 사상 최대의 전함과 상선을 이끌고 승리했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 600척의 전함을 보유해 소련을 압도했던 미 해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미 안보‧외교 전문지인 포린폴리시 최신 가을호에서 미‧중 전함 수의 역전(逆轉)은 “부분적으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는 혁신에 대한 미국의 오만(hubris)에서 비롯했다”며 “그러나 첨단 무기들이 기대 이하 성능을 보이면서, 이들 무기가 핵심으로 융합되는 첨단 전함들도 건조‧취역 시기가 미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잡지는 또 “미 해군은 예산 압박 속에서 노후 전함을 업데이트‧관리하는 대신 퇴역시켜 그 비용을 치솟는 첨단 전함 건조로 돌리지만, 이는 100년 전 대영제국이 저지른 ‘전략적 실수’”라고 지적했다.

◇미 해군, 1991년 걸프전 이후 첨단 군사기술 맹신

1989년 12월 미‧소의 냉전 종식 선언 이후, 미국은 대대적으로 국방예산을 줄여나갔다. 이른바 ‘평화의 배당(peace dividend)’였다. 전함 수의 감소는 1980년~1990년대부터 시작했다.

이후 1991년 걸프전쟁에서 드러난 첨단 군사기술의 위력은 전통적인 해군 전함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미 해군 정책결정자들은 첨단 기술을 잘 융합하면, ‘더 적은 전함과 적은 병력으로 더 효율적인 전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01년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이 기술의 맹신자였다. 그는 니미츠 항모(航母)의 후속 항모인 제럴드 포드함을 ‘혁명적’으로 바꾸라고 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사상 최대의 항모인 포드함은 아직도 정식 배치가 되지 않았다.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첨단 무기들을 융합했지만, 성능이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판명나면서 전체 계획이 지연되는 것이다.

이전 전함인 타이콘데로가급(級) 순양함이나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의 핵심인 수직발사 미사일과 이지스 전투시스템 레이더인 AN/SPY-1은 그 이전에 오랜 기간 검증을 한 뒤에 장착됐다.

◇미(未)검증 첨단 군사기술이 미 해군력 업데이트 막아

적의 연안에서 전투하는 미 해군의 신형 연안전투선(LCS)는 기뢰와 잠수함 대처 능력이 기대 이하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건조 비용은 배로 늘어, 전체 건조 목표는 52척에서 35척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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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7일 처음으로 대서양에서 항해 테스트를 하고 있는 미국의 미래형 줌왈트 스텔스 구축함. /미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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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왈트 스텔스 구축함은 척당 비용이 70억 달러에 달해, 애초 32척 건조하려던 것을 3척으로 줄였다. 줌왈트 구축함은 이 구축함이 호위할 니미츠급 항모보다도 비싸다. 그러나 줌왈트에 장착하기로 한 첨단 전자기 레일건(raingun)은 결국 기대 이하의 성능으로 올해 중반에 취소됐다. 줌왈트 구축함의 주포(主砲)가 사라진 것이다. 미 회계감사원(GAO)에서 두 전함의 결함을 검토했던 셸비 오클리는 포린폴리시에 “새 군사기술이 작동할지 알지도 못하면서, 이 기술의 도입을 전제로 전체 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라고 말했다

포린 폴리시는 “미 해군은 혁명적 디자인과 기술로 21세기에 무장하겠다고 했지만, 해군의 새로운 등뼈가 되리라던 첨단 전함은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기존 전함은 수리에 수년이 걸리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매일 전 세계 바다에 항시 떠 있어야 할 미 전함 수는

미 해군작전부장인 마이클 길데이 제독은 노후 전함을 퇴역시켜서, 업데이트‧수리 비용으로 미래형 전함과 무기를 구입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 국방부는 내년에 7척의 순양함을 퇴역시키고, 전함은 4척만 새로 건조한다. 내년 미 전함 수는 294척으로 줄어든다. 미 전함의 건조 속도보다, 퇴역 속도가 빠른 것이다.

미 해군은 항시 전 세계 바다 위에 130척 가량이 떠 있어야 한다. 이는 미국이 보유한 전함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다. 보수‧관리 등의 이유로, 실제로는 90척 미만이 떠 있다. 미 해군은 “더 적은 수로 더 많은 일을 한다”는 식이지만, 즉각적인 물리력 대응에서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포린폴리시는 “공해에선, 전함의 양(量)이 나름대로 질(質)적 요소를 갖는다”고 보도했다.

◇미 전함 건조능력의 축소

포린폴리시는 “중국이 맹렬히 추격하는 동안, 미국은 구축에 한 세대가 걸리는 조선(造船) 능력이 사라져, 주요 전함을 만들 수 있는 미 조선소는 7곳에 불과하다”며 “중국은 수십 곳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중국과 달리, 의지할만한 상선 건조 능력도 이제는 없다. 현재 미 해군이 기존 전함을 계획대로 업데이트하는데만 앞으로 20년이 걸린다고 한다.

◇ “100년 전 대영제국의 전략적 실수 되풀이”

영국은 1904년,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남아프리카의 보어 전쟁 전비(戰費)와 국내 불안정 요인, 독일의 부상(浮上) 속에서 해군 예산을 써야 했다. 결국 영국은 당시로선 최신 군함인 거포를 장착한 드레드노트(Dreadnought)로 해군 현대화에 나섰고, 600척의 전함 중 154척을 유지하느라 돈을 쓰느니 퇴역시키는 선택을 했다. 또 독일을 상대하기 위해 전세계에 퍼진 전함들을 본국 주변인 발틱해‧북해‧북대서양으로 불러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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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는 뜻을 지닌, 1906년 영국 해군이 처음 취역한 드레드노트 전함. 증기터빈으로 추진되며, 이전 전함들과 달리 많은 거포가 장착된 것이 특징이었다./위키피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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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는 희생이 따랐다. 당장 전 세계의 경쟁국 도전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었다. 영국의 선택은 세계 질서에 불안정성을 강화했고, 유럽과 독일, 일본의 드레드노트 건조 경쟁을 촉발했다. 영국은 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도 없었고, 결국 글로벌파워에서 유럽의 해상 강국으로 축소됐다. 포린폴리시는 “아프간 패퇴, 중국의 부상, 국내 불안정 등으로 인해 미국은 100년 전 영국 해군과 같은 전략적 도전을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 전함 건조 목표 456척으로 올려야”

포린 폴리시는 “2018년 초당적 국방전략위원회의 권고처럼, 미 해군은 매년 3~5%씩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며 “중국과 러시아에 맞서서 해군력을 감소할 여유가 없고, 오바마 행정부 때 설정한 355척 목표로도 공해상에서 억지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노후 전함을 퇴역시키지 말고 수명을 연장해야, 보수‧업데이트 숙련공이 쌓이고 관련 조선업 생태계가 살아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시어도르 루스벨트 대통령 때 16척의 신형 전함으로 구성된 ‘대백색함대(Great White Fleet)가 14개월 간(1907년 12월~1909년 2월) 지구를 돌면서 ‘미국의 세기’를 알렸다. 그리고 1930년대 말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칼 빈슨 하원의원의 주도로 해군력을 대폭 증강해 2차 대전 이후 가공할 해군력을 갖췄다. 포린 폴리시는 “그런데 100년이 지나, 중국이 해군력을 추월하려는 마당에 ‘첨단 기술’에 투자해 미국을 확보할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며 “미 해군은 수십 년 앞선 전함을 약속받았지만, 현재는 수십 년 처진 전함으로 적진에 나아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철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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