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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손준성 구속영장’부터 청구한 공수처…승부수냐, 도박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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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 권호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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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검찰총장 재직 시절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에 대해 한 차례의 소환 조사도 없이 곧바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이 사건 실체 규명에서 손 검사의 중요성과 혐의 소명 정도, 수사에 대한 손 검사의 비협조적 태도, 대선을 앞두고 조속히 수사를 마무리해야 할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로 보인다.

손 검사는 고발 사주 과정에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지휘하던 대검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을 연결하는 고리로 일찌감치 지목됐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당시 미래통합당 예비후보)는 지난해 총선을 앞둔 4월3일과 4월8일 범여권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에 대한 고발장 및 첨부 문서를 텔레그램으로 조성은씨(당시 미래통합당 선대위 부위원장)에게 전달했는데, 이 텔레그램의 최초 발송자는 ‘손준성’으로 표시돼 있다. 고발장이 ‘손준성→김웅 의원→조성은씨’ 흐름으로 전달된 것이다.

고발 사주 사건을 수사해 공수처에 이첩한 검찰은 이 ‘손준성’을 손준성 검사로 특정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은 사건을 이첩하며 “현직 검사의 관여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했다. 검찰이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현직 검사’는 손 검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공수처는 고발 사주 의혹의 실체를 밝히려면 손 검사의 신병을 확보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고발장이 작성된 경위와 검찰 내부 가담자, 국민의힘 측에 고발장을 전달한 경위, 윤 전 총장의 지시·묵인 여부라는 수사 핵심의 교차점에 손 검사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3일 고발장 전달 당일 김웅 의원과 조성은씨가 2차례 나눈 휴대전화 녹음파일에 김 의원의 배후가 있음을 시사하는 듯한 발언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 점, 다음달 5일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결정되기 전에 가급적 수사의 큰 줄기를 잡아야 한다는 판단도 영장 청구의 배경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한 차례의 소환조사도 없이 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공수처는 “소환 대상자들은 납득하기 어려운 사유를 내세워 출석을 계속 미루는 등 비협조적 태도를 보였다”고 영장 청구 사유를 밝혔다. 손 검사가 계속 출석 요청에 불응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것이다. 공수처 조사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고 있는 김웅 의원 등 다른 피의자를 압박하는 효과도 노린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는 지난 20일 손 검사의 체포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당하자 23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공수처는 “영장실질심사 절차를 통해 법관 앞에서 양측이 투명하게 소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공정한 처리 방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체포영장 기각을 구속영장 청구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구속영장 발부 요건이 체포영장 발부 요건보다 엄격하다는 점에서 통상적이지 않은 선택이다.

손 검사 측은 “10월21일에야 변호인이 선임됐고 변호인이 사건 파악이 이뤄지는 대로 11월2일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공수처에 명시했다”며 “이미 출석 의사를 명확히 한 피의자에 대해 아무런 조사 없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사례는 없다”고 반발했다. 피의자의 방어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할 경우 공수처는 손 검사를 상대로 공범 유무나 윗선 개입 여부를 집중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김웅 의원은 지난해 4월3일 조성은씨와 통화하며 “고발장 초안을 저희가 일단 만들어서 보내드리겠다” “이 정도 보내고 나면 검찰에서 알아서 수사해준다”라고 말했다. 검찰과 국민의힘의 조직적인 범행을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궁극적으로는 윤석열 전 총장이 고발 사주에 관여했는지 밝히는 것이 수사의 종착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 손 검사가 맡은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은 ‘검찰총장의 눈과 귀’로 불리는 핵심 보직이다.

법원이 영장을 기각할 경우 공수처는 물증도 없이 부실하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검찰의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수사가 휘청댄 것과 비슷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손 검사 외에 다른 피의자들의 적극적인 방어권 행사로 수사는 더욱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손 검사에 대한 영장 청구를 두고 공수처의 승부수이자 도박이라는 말이 나온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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