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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가난·병마와 싸우다…안중근 조카며느리 박태정 여사 별세(종합2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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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군 안진생씨 "후손 연금 받으려 독립운동한 것 아냐"

4인 가족 임대아파트 생활…올 3월에는 딸이 먼저 세상 떠나

연합뉴스

안중근 조카며느리 박태정 여사 별세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앞서가신 여사님과 우리 순국선열들을 모두 마음속에 모시면서 잠시 묵상의 기도를 올립니다."

25일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영결식장에서는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의 조카며느리 박태정 여사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박 여사는 고령으로 인한 뇌경색으로 지난달부터 중환자실에서 연명치료를 받다가 지난 23일 향년 9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의 미사 아래 진행된 발인식에는 고인의 친인척 일부와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들, 이종수 연세대 교수 등 10여명이 참석했다.

함 이사장은 "나라와 공동체, 유가족과 자녀들, 저희 모두를 위해 하느님께 은총과 자비를 청한다"며 묵념했고 차녀 안기려(63)씨를 비롯한 남은 가족들은 고인의 마지막 길을 눈물로 배웅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안중근의사숭모회 등에 따르면 고인은 안중근 의사의 친동생이자 독립운동가인 안정근(1885∼1949) 지사의 며느리로, 국내에 거주하는 안중근·정근·공근 형제의 유족 중 안 의사와 가장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안정근 지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차장과 대한적십자회 최고 책임자로 활동하는 한편 임시정부 북간도 파견위원으로 선임돼 독립군 통합운동에 힘썼다. 청산리전투에 참전하기도 했으며, 광복 이후인 1949년 상하이에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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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안진생 씨 가족 사진. 왼쪽부터 안진생 씨, 둘째 딸 안기려 씨, 주 교황청대사, 첫째 딸 안기수 씨, 박태정 여사. [안중근의사숭모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박 여사를 비롯한 안정근 지사의 후손들은 넉넉지 못한 살림을 이어왔다. 가난에 병치레까지 더해져 고된 삶을 살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박 여사의 부군인 안진생 씨는 안 지사의 차남으로, 일제강점기 이탈리아에서 유학하고 해외에서 지내다 해방 이후 이승만 전 대통령 제의로 귀국해 정착했다.

이후 해군에 입대해 장교로 복무하다가 1960년대엔 외교관 생활을 시작하고 여러 나라 대사를 지냈다. 안씨는 1980년 외교안보연구원(현 국립외교원) 본부 대사로 재직하던 중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강제 해임된 뒤 그 충격으로 뇌경색을 얻어 1988년 사망했다.

8년 동안 이어져 온 가장의 투병 생활로 박 여사의 가세는 급속히 기울었다. 가족들은 여의도 아파트를 팔고 월세를 전전하다 양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 자리를 잡고 거주해왔다.

박 여사 가족들에게 집 한 채를 기부하겠다는 제안도 있었지만, 이들은 "더 필요한 사람에게 갔으면 한다"고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편 안씨 또한 생전에 아버지의 유공을 외부에 적극 알리는 걸 원치 않았다고 한다.

안씨는 "아버지는 후손들 연금 받으라고 독립운동을 한 게 아니다"라며 서훈 신청을 미뤘고, 이에 안정근 지사는 1987년이 돼서야 건국훈장 독립장 서훈을 받았다.

박 여사의 두 딸과 손녀 등 4인 가족은 수권자인 장녀 안기수(66) 씨가 보훈처에서 매달 받았던 수당 50여만원과 박 여사의 기초연금, 지인들의 도움 외에는 뚜렷한 수입원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여사는 지난해 낙상 후 건강이 안 좋아져 요양원 생활을 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안기수 씨는 박 여사를 간호하다가 편찮았던 몸이 더 안 좋아져 지난 3월 별세했다.

가족들은 박 여사의 장례를 치를 여유도 없이 이날 발인을 하고 고인을 경기 용인공원묘지에 안장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박 여사의 남은 딸과 그 손녀도 몸이 아픈데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며 "보훈정책의 사각지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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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송은경]



nor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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