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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핏자국 그대로…"새 제품 둔갑해 수출된 이것, 지구상 가장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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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박가영 기자] 중고 일회용 의료장갑이 태국에서 새것처럼 둔갑해 미국으로 팔려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코로나19(COVID-19) 사태로 개인보호장비 수요가 급증한 틈을 타 수익을 노린 업체들이 불량 제품을 유통한 것이다. 이미 수천만개 이상의 중고 의료장갑이 미국에 수입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로도 수출된 것으로 보이며, 의료기관에서 실제로 사용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고 니트릴 장갑,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상품"

머니투데이

의료용 장갑/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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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은 24일(현지시간) 태국산 중고 및 위조 니트릴 장갑 수천만개가 미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태국 당국은 이에 대한 범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니트릴 장갑은 합성 고무 소재인 니트릴부타디엔라텍스(NBL)를 사용해 만든 일회용 장갑이다. 의료기관에서 널리 사용되며 음식점이나 호텔, 미용실 등에서도 쓰인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개인위생을 위해 니트릴 장갑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급증하면서 수요가 늘었지만,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니트릴 장갑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남아시아와 동아시아에서 생산되는 천연 고무, 고도로 전문화된 공장, 제조 전문 지식이 필요해 공급을 쉽게 늘릴 수 없는 구조라고 CNN은 설명했다.

미 당국은 장갑을 비롯해 가운, 마스크 등 개인보호장비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나자 일시적으로 수입 규제를 완화했다. 이 틈을 타 중고 니트릴 장갑이 대거 미국으로 수입됐다.

마이애미의 사업가 타렉 키르센은 태국 회사 '패디룸'에서 약 200만달러(약 23억4000만원)어치의 나트릴 장갑을 구매해 미국 내 유통업체들에 넘겼다가 제품 상태로 인해 거센 항의를 받았다. 격분한 고객들은 전화로 "당신 때문에 망하게 생겼다"며 소리 질렀다. 이에 키르센은 두 번째 컨테이너가 마이애미에 도착했을 때 직접 제품을 확인하러 갔고, 그곳에서 믿지 못할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키르센은 "컨테이너에 있던 장갑들은 재사용 장갑이었다. 더러운 것도 있었고, 핏자국이 있는 것도 있었다. 일부 장갑에는 2년 전 날짜 표시가 있었다"며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결국 올해 2월 유통업체들에 돈을 환불해 줬다. 중고 장갑들은 모두 매립했으며, 미 식품의약국(FDA)에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또 다른 사업가 루이스 지스킨도 '패디룸'에서 270만달러(약 37억6000만원)를 주고 니트릴 장갑을 구매했다가 '더러운 중고품'을 받았다. 니트릴 장갑이 아닌 저급 라텍스 장갑과 비닐장갑도 섞여 있었다. 지스킨은 "양심상 그 장갑들을 도저히 병원에 보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건 총체적인 안전문제다. 이 회사들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적 없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라고 덧붙였다.

수입된 중고 니트릴 장갑 일부는 미 곳곳으로 팔려나간 것으로 보인다. 한 사업자는 "의료기관이 수입한 니트릴 장갑을 공급하기로 했는데 (제품 상태로 인해) 판매할 수가 없었다"면서 대신 미국 식품 가공 공장, 호텔 및 레스토랑 등에 더 저렴한 가격으로 팔았다고 밝혔다.

사업가들은 수입한 장갑을 의료기관에 판매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거래 규모를 감안할 때 의료 현장에서 중고 장갑이 사용됐을 가능성도 있다. 업계 전문가인 더글러스 스타인은 "불량 니트릴 장갑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새것으로 둔갑해 유통되는 중고 니트릴 장갑은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상품"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중고 장갑들은 미국 외의 나라로도 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인니서 들어온 중고 장갑, 태국에서 새것으로 둔갑

머니투데이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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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당국은 관련 신고를 접수하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지난 8월에야 각 항만에 패디룸 제품 통관을 보류하라고 지시했다. 관세국경보호청(CBP)은 CNN에 약 4000만 개의 가짜 마스크와 수십만 개의 다른 개인보호장비들을 압류했지만 의료장갑의 양을 따로 추적해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태국 당국도 문제를 인지하고 조사 및 단속을 진행하고 있다. 태국 FDA가 10회 이상 패디룸을 급습해 조사한 결과 중고 장갑이 담긴 쓰레기봉투 더미와 재포장된 위조 장갑을 발견했다. 중고 장갑들은 대부분 중국이나 인도네시아에서 수거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현장에서는 직원들이 이미 사용된 장갑을 세면대에서 식용 색소로 염색하는 장면도 목격됐다.

중고 제품을 새것으로 둔갑하는 현장까지 포착했지만 태국 FDA는 이 업체를 폐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창고를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수파트라 분샘 태국 FDA 사무차장은 "니트릴 장갑에 대한 수요가 여전하고 고객들이 기다리고 있어 불법행위가 계속되는 상황"이라며 "코로나19 상황에서 병원과 일반 대중의 수요가 모두 높은 상황이며 우리가 발견한 불법 장갑의 양은 어마어마하다"고 말했다.

CNN은 전문가를 인용해 중고 니트릴 장갑 관련 사기 규모가 이미 수십억달러(수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을 전했다.

박가영 기자 park080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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