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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현대 말의 조상은 4200년 전 러시아 남부 초원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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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말 273마리 게놈 분석 결과

등 탄탄하고 온순해 가축화 유리

수세기만에 유라시아 전역 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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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초원을 달리는 말. @Ludovic Orla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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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무게 500kg에 이르는 큰 덩치의 말이 흙바람을 일으키며 시속 40km대의 속도로 질주하는 모습은 보는 이의 심장마저 뛰게 한다.

오래 전 말의 이런 특성을 간파한 인간은 말을 사냥감으로만 쓰지 않고 이동의 도구로 삼았다. 말을 타게 된 인간은 뛰어난 기동력으로 자신의 영역을 급속도로 넓히며 새로운 세상과 교류하고 정복해갔다. 말이 없었다면 징기스칸의 몽골제국은 없었을 것이고,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이나 중세 유럽의 십자군 원정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 분포하는 말들은 모두 4200년 전 러시아 남서부 볼가강과 돈강 일대의 광활한 초원을 달리던 야생마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대규모 고대 DNA 분석을 통해 드러났다. 이곳에서 처음 길들여진 말들이 유라시아 전역에 급속히 보급되면서 불과 몇세기만에 이전의 거의 모든 야생마를 대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프랑스 툴루즈인류생물및게놈학센터는 이런 내용의 디엔에이 종합 분석 결과를 전 세계 114개 연구기관, 162명의 국제 공동연구진 이름으로 과학저널 ‘네이처’에 최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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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초원의 말과 목동. @Ludovic Orla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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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화한 현대 말의 기원에 대해서는 이베리아반도에서 카자흐스탄에 이르기까지 많은 가설이 있으나 결정적인 것은 없었다. 이는 오늘날의 말이나 고대 야생마나 몸집이 거의 같아 외형만으로는 기원을 추적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말의 기원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여러 대륙에서 수집한 273마리의 고대 말 뼈 표본에서 DNA를 추출해 분석했다.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이 말들의 생존 시기는 5만년 전에서부터 2200년 전에 두루 걸쳐 있었다. 연구진은 비교를 위해 현대 말 10마리의 게놈도 추출했다.

분석 결과, 고대 말들은 4개의 혈통으로 나눌 수 있었다. 현대 말의 게놈은 이 가운데 러시아 남부 볼가강과 돈강을 아우르는 ‘폰틱-카스피해 대초원’에 살았던 야생마 혈통의 게놈과 가장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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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덴마크의 한 유적지에서 발굴된 말의 턱뼈. © Lutz Klassen, East Jutland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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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력·순응성 관련한 유전자 2개가 핵심


연구진에 따르면 현대 말의 조상 그룹은 기원전 3천년께 다른 말들과 분리됐다. 이후 기원전 2200년 무렵 볼가강 돈강 인근 초원지대 말들의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동일한 게놈 구성을 가진 말들이 초원지대 외곽의 보헤미아(체코 서부)와 다뉴브(독일 남부), 아나톨리아반도 중부에서도 발견됐다. 연구진은 이는 기원전 2200년 이전 수세기 동안 볼가-돈강 지역에서 말들이 길들여졌다는 걸 뜻한다고 밝혔다. 이 말들은 기원전 1500~1000년에는 서쪽 끝 스페인에서부터 몽골에 이르는 유라시아 전역에서 다른 말들을 완전히 대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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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말의 기원지인 유라시아 남서쪽 초원지대. 사이언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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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말의 조상에는 당시 다른 야생마와 뚜렷이 다른 유전자가 2개(GSDMC, ZFPM1) 있었다.

이 두 가지 유전자는 기존의 인간과 생쥐 연구를 통해 지구력과 체중부하 능력(ZFPM1), 순응성(GSDMC)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된 것들이다. 연구진은 이런 특성이 이 말이 급속히 퍼지는 데 큰 역할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전의 말에는 없었던 이 두 가지 유전적 특성이 인의 선택 사육을 통해 결합하면서 말을 다루기가 한층 더 쉬워졌으며, 이때부터 인간과 말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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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인류에게 말의 용도는 세 가지였다. @ Ludovic Orla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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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화한 말의 가장 중요한 용도는?


당시 인간에게 말은 세 가지 용도로 쓰였다. 첫째는 사람을 태우는 것이고, 둘째는 마차를 끄는 것이며, 셋째는 우유와 고기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어떤 것이 주된 용도였을까?

독일 막스플랑크인류사연구소 연구진은 지난 9월 과학저널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고대 인류가 길들인 말의 첫 용도는 우유 공급원이었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고대인의 치아 치석에 보존돼 있는 단백질을 분석한 결과 기원전 3000~2000년 사이의 중앙 유라시아 지역 사람들은 말젖을 많이 마신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이번 연구를 이끈 루도빅 올란도 박사는 “말을 보급시킨 주된 요인은 운송이었을 것”이며 “처음엔 승마용으로만 쓰다 기원전 2000~1800년 사이에 바퀴 달린 전차가 등장했다”고 말했다.

과학 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는 처음엔 말 우유를 얻기 위해 말을 기르기 시작했다가 마차와 승마용으로 쓰면서 가축화된 말이 급속히 확산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진화론의 개척자 찰스 다윈은 전 세계의 말이 단일 혈통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DNA를 알지 못했던 19세기 중반의 그가 이를 추론해낸 근거는 영국에서부터 중국에 이르는 다양한 지역의 말 어깨나 다리에 나타나는 줄무늬였다. 그는 짙은 갈색 말과 쥐색 말에 줄무늬가 더 자주 나타나는 걸 보고, 오늘날의 가축화된 말은 쥐색에 약간의 줄무늬가 있는 원시 혈통의 자손이며 조상의 이런 유전적 특징이 세대를 뛰어넘어 발현된 것이라고 말했다(모토무라 료지의 ‘말이 바꾼 세계사’).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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