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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단독]스토킹하던 여성 계정에 ‘성폭행 암시·음란 메시지’···성폭력처벌법 위반 아니란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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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0개월간 수차례나 ‘성적 모욕’한 스토커
검, 성폭력 처벌 아닌 ‘통신법 위반’ 기소

경향신문

김상민 기자


검찰이 평소 스토킹하던 여성 A씨의 국가기술자격 포털 계정에 수차례 접속해 ‘비밀번호 찾기 답변란’에 성적 모욕감을 주는 메시지를 남긴 30대 남성 B씨에 대해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상 통신매체이용음란죄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B씨에게 A씨의 계정을 해킹한 혐의만 있다고 보고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만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24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B씨는 2016년 2월부터 2018년 1월까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운영하는 국가자격증·시험정보 포털 사이트 큐넷(Q-net)에 A씨의 계정으로 접속해 A씨의 비밀번호 찾기 답변을 6차례 바꾼 것으로 조사됐다. B씨는 비밀번호 찾기 답변란에 A씨 신체부위와 성기 등을 언급하며 “임신시키고 싶다” “먹고 싶다” “빨고 싶다”는 등 성적 모욕감을 주는 글을 작성했다. A씨의 장애 구분란에 ‘뇌병변장애인’이라고 허위사실을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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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한국산업인력공단 자격증 시험 사이트 큐넷에 접속해 개인정보를 변경하려다 본 화면. A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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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경찰서는 B씨에게 성폭력처벌법 위반과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보고 서울남부지검에 송치했으나 검사는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만 적용했다. 검찰은 B씨가 A씨의 계정에 접속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글을 작성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글을 피해자에게 직접 도달하게 하였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성폭력처벌법은 통신매체를 통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 음향, 글, 그림, 영상 또는 물건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할 때 구성되는데, A씨 행위는 그렇게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A씨는 B씨가 명백히 자신에게 전달할 목적으로 메시지를 작성했다고 주장한다. A씨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접속해 비밀번호를 찾기 위한 답변과 장애여부를 수정하면서도 A씨가 접속할 수 있게 비밀번호를 수정하지 않은 점, 비밀번호를 찾기 위한 답변을 수차례 수정하며 더욱 자극적인 메시지를 남긴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큐넷은 국가가 운영하는 다양한 자격시험 원서 접수 및 시험 일정·합격자 확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트로, A씨와 같은 전공을 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용한다는 점을 학과 선배인 B씨도 잘 알고 있다는 게 A씨 주장이다. A씨는 지난 5월 사진을 수정하기 위해 개인정보 수정 페이지에 들어갔다가 B씨가 남긴 메시지를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A씨 변호인은 “피해자가 접속하여 확인할 것이 충분히 예상되는 통신매체에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글을 작성해 놓았으며 실제 피해자가 접속해 확인할 수 있는 상태에 두었다”고 했다.

A씨는 B씨가 2011년 처음 만난 뒤부터 자신을 스토킹했다고 주장한다. 원치 않는 연락을 지속하다가 개인 블로그에 찾아와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A씨가 ‘더이상 연락하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상자를 집 앞에 두고 간 뒤 “내 선물은 잘 받았냐”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B씨는 2014년 8월5일 A씨가 사는 집까지 찾아와 문 앞을 서성였다. 수상하게 여긴 A씨의 어머니가 “누구냐”고 소리치자 건물 옥상으로 도망가 다른 사람이 살고 있던 옥탑방 창문으로 들어갔다. A씨는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됐지만 법원은 피고인이 자백하고 반성하는 점, 초범인 점 등을 고려해 2015년 5월6일 선고를 유예했다. 그로부터 약 1년 뒤 B씨가 A씨 계정을 해킹해 성적 모욕감을 주는 메시지를 남긴 것이다.

A씨는 2014년 사건 이후 이사를 해야 했고, 상담치료를 받았다. 그러다 올해 B씨가 자신의 계정에 접근할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및 공황장애 진단을 받아 약물치료까지 받고 있다고 했다. A씨는 “노원구 스토킹 살해 사건이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탄원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또 B씨에게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도 적용해 달라고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한 상태다. B씨의 첫 공판은 다음달 3일 열린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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