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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화해] 아버지 친구와 외도 의심되는 엄마... 물어보기 겁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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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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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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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대학생입니다. 몇 년 전부터 어머니의 외도를 의심해 왔는데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어머니의 외도가 의심되는 상대는 아버지의 오랜 친구예요. 저도 몇 번 얼굴을 봐서 알고 있는 분입니다. 그분도 가정이 있지만 부모님과 아저씨 세 분만 같이 놀러 다니시고, 밥도 자주 드세요. 저희 집에 와서 밥을 먹은 적도 있는데, 어머니의 외모를 평가하거나 미성년자인 동생이 있는데도 성적인 농담을 하기에 불쾌했던 기억이 납니다.

외도를 의심하게 된 건 우연히 어머니 휴대폰을 보다 통화 녹음을 듣게 되면서였습니다. 아저씨와 다정하게 대화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중간쯤 듣고는 휴대폰을 꺼버렸어요. 어머니 목소리가 그렇게 괴롭게 들렸던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직접 물어보려다 도저히 대답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방에서 혼자 울기만 했습니다. 그저 저의 착각이기를 바랐습니다.

어머니는 이후 부쩍 숨어서 문자를 하거나 전화 통화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친구를 만난다며 밤중에 돌연 집을 나설 때도 있어요. 어쩌다 누가 근처를 지나가면 부자연스럽게 휴대폰 화면을 가리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는 어머니 휴대폰에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문자가 왔습니다. '지금 뭐하냐'는 메시지였는데, 번호를 기억해 뒀다가 확인해 보니 그 아저씨 번호더군요.

저희 아버지는 상당히 가부장적인 분이세요. 본인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쉽게 고함을 지르거나 폭언을 일삼아요. 기억 속 아버지는 늘 회사 일로 바쁘고, 어쩐지 매일 분노에 잠겨 있고, 술을 먹고 잠자는 모습뿐입니다. 지금까지 아버지를 아버지 같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어머니는 이런 아버지의 애정까지 대신 채워 주고자 저희에게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특히 장녀인 저와 각별한 유대를 갖게 됐고, 어머니에게는 마음속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었어요. 진정한 가족은 어머니뿐이라는 생각을 늘 해왔습니다. 어머니는 그만큼 저의 전부이자 우주였습니다. 어머니의 행복을 누구보다 바랐고, 그 행복 속에 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몇 차례 아저씨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어머니에게 털어놓았습니다. 며칠 전에도 '아저씨 이상한 사람 같던데, 왜 같이 어울리냐'는 식으로 말했어요. 하지만 도리어 '왜 그렇게 그 사람을 싫어하냐'는 어머니의 짜증 섞인 물음에 저는 끝내 '그걸 정말 몰라서 이러는 거냐'고 울며 소리치고 방으로 들어와 버렸습니다.

어머니에게 외도 사실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기 망설이는 건 겁이 나서입니다. 어머니 입으로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과 가정의 안온, 그동안 함께했던 시간, 모든 것이 박살 날 것 같습니다. 대인 관계의 기반이었던 어머니와의 관계가 흔들리니, 갑자기 다른 인간 관계도 겁이 나고 스스로 위축되는 기분도 듭니다. 돌아갈 곳을 잃은 것 같아요. 저는 어머니와 이 문제를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까요.

유승연(가명·23·대학생)
한국일보

승연씨, 당신에게 너무 중요한 인물인 엄마의 외도를 의심하게 됐을 때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서운함, 배신감이 드는데 그렇다고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답답한 마음에 공감합니다. 외도가 부정행위이고 배우자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외도는 옳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니 여기서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승연씨가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같이 고민해 봅시다.

엄마는 결혼 생활 내내 아버지와 마음을 나누지 못한 것 같아요. 우리가 결혼 생활을 할 때는 공간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고, 돈도 나누고, 아이가 있으면 육아도 나누고, 특히 마음을 나눠야 합니다. 기쁨과 행복도 나누고, 고통과 고민도 나누고, 말도 섞어야 해요. 인생을 나누는 거죠. 그런데 아버지는 엄마와 살면서 서로 감정적으로 나눈 게 없었고, 엄마는 그런 결혼 생활이 불행했을 거예요.

반면 엄마는 지금 외도하는 상대하고는 마음을 나누는 것 같아요. 아버지는 아내는 물론 자식하고도 마음을 나누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늘 하루 애썼다며 상냥한 말 한마디를 건네거나 격려하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 아니죠. 평생 배우자와 마음을 나누고 살지 못했던 엄마의 외로움을 지금은 아버지 친구가 채워 주는 것 같아요. 외도를 옹호하고 미화하는 게 아니라, 정신과 의사로서 엄마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그 내면을 이해해 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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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인 승연씨는 엄마의 외도를 알고 난 후 두 가지가 가장 고통스러웠을 것 같아요. 먼저 승연씨도 말했듯이 엄마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세상에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감정이 들었겠죠. 엄마가 가족 몰래 큰돈을 날렸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세상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지 않았을 거예요. 이런 반응은 자식이 부모의 외도를 알았을 때 갖게 되는 일반적인 감정입니다. 부모가 아무리 사이가 나쁘다 하더라도 외도를 용인하거나 기뻐할 수 있는 자식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승연씨가 사연을 보낼 정도로 이토록 괴로워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은, 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아버지가 버젓이 있는데, 엄마가 외도를 하니 엄마한테 실망하고 충격 받았겠지'라고 끝내는 건, 승연씨 사례를 지나치게 피상적으로 접근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승연씨는 엄마에게 승연씨 이외에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아요. 승연씨는 아버지와는 달리 엄마와는 모든 걸 나누고 살았죠. 경험, 기쁨, 고민, 시간, 추억을 엄마와 나누며 살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성인이 돼서도 엄마가 승연씨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어요. 그런데 이런 엄마가 어디서 갑자기 등장한 외간 남자를 만나는 거죠. 어쩌면 나보다 더 마음을 쏟는 대상이 생긴 거예요. 예전에는 그게 오롯이 나였는데, 이제는 아니라는 사실에 배신감이 들었던 것 같아요. 승연씨는 아직 엄마를 누군가와 나눌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는 것 같습니다. 만일, 엄마가 아버지와 이혼을 하고 여러모로 당당하게 이 아저씨를 사귄다고 한들 승연씨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심지어 그 대상이 비윤리적이기까지 합니다. 승연씨의 우주이자, 믿고 사랑하는 엄마가 승연씨가 허용하고 인정하는 범위 밖의 사람과 마음과 육체를 나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거예요. 엄마가 동생하고 더 가깝게 지낸다거나, 혹은 미운 아버지와 살갑게 지낸다고 해서 승연씨가 이렇게까지 괴롭진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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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성인이 됐을 때 엄마의 외도 사실을 안다면, 엄마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아버지를 걱정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상처를 받을까, 아버지에게 알리면 상처받고 안 알리면 기만당한 상태로 살아야 되는데 알려야 되나 말아야 되나, 이게 알려져서 가정이 와해되면 어쩌나, 보통 이런 걱정을 하겠죠. 하지만 승연씨의 걱정은 이로 인해 바뀔 엄마와 자신과의 관계 혹은 자신의 상처에 몰두돼 있는 경향이 있어요. 승연씨와 아버지 사이가 안 좋은 것을 감안하더라도요. 아마 아버지한테 알리더라도 그 의도는 엄마에게서 이 아저씨를 떼어 내고 싶은 마음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승연씨는 엄마를 독점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단순히 엄마를 독차지하고 싶어 한다기보다 외간 남자와의 관계로 엄마와 나의 순수한 관계에 얼룩이 묻은 느낌, 오염된 느낌이 들어 견딜 수 없고 상처가 더 큰 것 같아요. 그러나 세상에 독점적인 관계는 연인이나 배우자와의 사랑과 성관계뿐입니다. 나머지 관계는 독점적이지 않아요. 엄마 입장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면, 엄마는 딸과 마음을 나누며 살기는 했지만 자식과의 관계는 이성 간의 관계와는 종류가 다릅니다. 엄마는 이런 관계에 결핍이 있었던 것 같아요.

승연씨는 이번 기회를 통해서, 엄마와 자신의 인생을 분리해 놓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명심해야 할 건, 이 일로 어머니와 승연씨의 근본적인 관계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승연씨가 가장 잘 알 듯이 지난 20여 년의 인생 동안 엄마는 승연씨에게 애정과 사랑을 쏟았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수많은 시간과 감정이 승연씨 내면에 퇴적층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어요. 제3자로 인해 엄마와 자신의 관계가 훼손되게 내버려두면 안 돼요. 승연씨의 상처와 스트레스가 굉장히 크다는 건 알지만 '엄마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엄마 다시는 안 봐', '끝이야' 이렇게 대응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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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는 아저씨와의 관계를 물어보고 확인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내가 이런 걸 듣고 봤는데 이게 맞는지, 이 일로 내가 세상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흔들렸는지, 동생이 아직 미성년자이니 조심해야지 않겠냐는 마음과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으세요. 다만 '내가 힘드니 그 관계를 그만둬 달라'고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어떻게 하든 결정은 엄마의 몫이에요.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고 의견과 느낌, 감정을 말할 수는 있으나 자식이 부모 인생에 지나치게 개입할 권리는 없습니다. 부모가 성인이 된 자식의 인생에 지나치게 개입하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승연씨도 이제 성인이니까 엄마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어렵겠지만, 엄마를 한 인간으로 마주하고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부모의 인생은 부모의 것, 승연씨의 인생은 승연씨의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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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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