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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서 3억 명이 사용하는데… 페이스북, 종교 갈등·폭력 방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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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20년 현지 사용 실태 보고서
무슬림 겨냥한 가짜 뉴스, 혐오 횡행
선동 뒤엔 '모디 총리 지지' 우익단체
"페북 유해 콘텐츠 알고도 방치" 비판
한국일보

나렌드라 모디(왼쪽) 인도 총리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가 2015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 페이스북 본사에서 열린 행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멘로파크=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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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서 증오와 범죄를 부추기는 콘텐츠가 판을 치는 건 더 이상 일부 국가에 한정된 현상이 아니다. 이번에는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페이스북 플랫폼을 사용하는 인도가 논란의 무대가 됐다. 인종 간 혐오, 종교 갈등을 조장하는 극단적 선동이 횡행하고 있는데도, 페이스북이 부적절한 게시물을 걸러내지 못할 뿐 아니라 “정치적 이유로 사실상 방치했다”는 폭로가 나온 것이다. 내년 대선을 앞둔 한국도 SNS 유해 콘텐츠 확산 부작용 우려가 끊이지 않는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스(NYT)는 “인도에서 페이스북과 자회사인 메신저 플랫폼 왓츠앱이 증오를 퍼뜨리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출처는 페이스북 연구진이 2019, 2020년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내부 실태조사 보고서였다. 문건은 페이스북 전 직원이자 내부고발자인 프랜시스 하우겐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2019년 2월 인도 서부 자이푸르에 거주하는 21세 여성 명의의 가(假)계정을 만들어 ‘실험’을 실시했다. 인도는 페이스북 최대 사용 국가 중 하나다. 인구 13억 명 가운데 3억4,000만 명이 페이스북을, 4억 명이 왓츠앱을 각각 쓴다. 그만큼 회사의 관심도 크다. 이번 연구도 현지 콘텐츠 확산 경로 파악을 위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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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인도 뭄바이에서 한 무슬림 소년이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 탄신일 축제인 '마울리드'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뭄바이=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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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충격, 그 자체였다. 실험 3주 동안 연구진이 접한 콘텐츠는 ‘증오와 가짜 뉴스의 홍수’였다. 특정 인종과 종교를 혐오하는 발언이 넘쳤고, 유혈사태를 정당화하거나 부추기는 내용도 쉽게 발견됐다.

대상은 주로 무슬림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은 무슬림 때문”이라는 가짜 뉴스뿐 아니라, 무슬림을 돼지나 개로 비하하는 글도 줄을 이었다. “코란 속에 남성의 여성 성학대를 용인한다는 내용이 담겼다”는 주장까지 만연했다. 국가 간 반목도 SNS상에서 이어졌다. 특히 분쟁지역 카슈미르에서의 자살폭탄 테러 이후, 갈등은 극에 달했다. 파키스탄인 참수 장면이 담긴 영상이 퍼지는 등 반(反)파키스탄 콘텐츠가 도를 넘을 정도였다. 한 연구원은 “3주간 내 인생 전체에서 본 것보다 더 많은 시신 사진을 봤다”고 토로했다.

실험 종료 후에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해 5월 인도 총선 전후로 정치 이슈까지 맞물리며 증오와 갈등은 불붙었다. 특히 페이스북은 “무슬림을 겨냥한 가짜 뉴스 상당수가 인도 힌두민족주의 단체 ‘민족봉사단(RSS)’을 중심으로 퍼졌다”고 봤다. RSS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속한 인도국민당(BJP)의 ‘뿌리’로 여겨지는 우익성향 단체다. 이들은 인도 내 무슬림을 관리ㆍ축출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의 글을 게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WSJ는 보고서를 인용해 “종교 시위가 인도를 휩쓸던 2019년 12월 이후 수개월간 페이스북 내 증오ㆍ갈등 조장 게시물이 이전보다 300%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재집권에 성공한 모디 총리는 노골적 반이슬람 정책을 펼치며 무슬림을 배척하는 시민권법 개정에 나섰다. 이후 곳곳의 반정부 시위로 수십 명이 숨졌는데, 인도 페이스북이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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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인도 뉴델리에서 한 시민이 우익성향 힌두 민족주의 단체인 RSS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읽고 있다. 뉴델리=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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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페이스북이 문제를 인지하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차적 이유는 ‘언어 문제’다. 인도에선 공용어가 22개 언어인 데다, 현지어를 구사하면서 콘텐츠를 관리할 수 있는 인력도 충분치 않다는 게 회사 측 항변이다. 그러나 정치적 이유도 있다. NYT는 “회사 측도 유해 게시물 확산을 알았지만 인도 내 플랫폼 운영에 영향을 미칠까 봐 RSS 등을 ‘위험 조직’으로 지정하는 데 주저했다”고 꼬집었다. 정부 눈치 보기 탓에 2년 넘도록 방치했던 셈이다.

본사 자정 노력이 영미권에 쏠려 있다는 비판도 있다. 현재 페이스북의 글로벌 예산 중 87%는 미국에, 13%는 나머지 다른 국가에 책정돼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페이스북이 회사 성장을 견인하는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신흥국에서는 유해 콘텐츠를 감독할 언어 능력을 갖춘 인력을 고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설명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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