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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웃는 얼굴 2500명 그려주니 ‘희망 바이러스’ 퍼져나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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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충북 청주중학교 지선호 교장

한겨레

지선호 청주중 교장이 지난 20일 집무실에서 자신이 그린 캐리커쳐로 만든 ‘희망 얼굴’ 액자의 주인공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사진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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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방울이 모여 바다를 이루듯, 작은 희망 방울이 모여 눈부시게 아름다운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희망’이라는 별 수천개를 세상에 띄운 이가 있다. ‘그림 그리는 선생’ 지선호(60) 충북 청주중학교 교장이다. 그는 별이 사라진 새벽, 붓으로 지은 희망의 별을 하늘에 채운다. 그의 그림은 인물의 특징을 형상화한 캐리커쳐다. 지난 2015년 청주 가경중 교감 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2500여명의 얼굴을 그렸다.

지난 20일 지 교장을 만나 인물을 그려주는 이유를 들어봤다.

“학생들의 꿈과 끼를 찾아주려고 2015년 자유학기제를 시범 운영했는데 모두 쭈뼛쭈뼛하기에 캐리커처를 그려 보여줬더니 다들 좋아하더라고요. 학창 시절 사생대회에서 입상했던 솜씨를 수십 년 만에 꺼냈는데 저도 재밌더라고요.”

그는 그해 가경중 졸업생·교직원 250여명의 얼굴 그림을 액자에 넣어 선물하면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1987년부터 내내 국어·한문 담당 교사

2015년 학생들 캐리커쳐 인기 대폭발

졸업생·교직원·선행자·유명인 등등

“정갈한 마음 모아 새벽에 주로 그려”


그림 주인공들 모임 ‘희망 얼굴’ 꾸려

‘힘내라 대한민국 천개의 별’ 전시중


한겨레

지선호 교장이 그린 ‘희망 얼굴’ 1천여 점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회가 10월31일까지 청주 더블루체어 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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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찾아간 그의 교장실에도 교직원 66명과 학생회장단 3명의 얼굴 그림이 걸려 있었다. 한범덕 청주시장, 강태재 충북시민재단이사장, 서정진 셀트리온 명예회장 등 청주중 동문이 한 쪽을 지킨다. 출입구 쪽엔 윤여정 배우, 김연경 배구선수, 홍범도 장군, 방탄소년단도 있다.

“교직원·학생·동문 등은 저와 학교를 지켜주는 수호신이고, 애국지사·유명인 등은 나라를 지켜주고 세계에 알린 수호신이니 든든하잖아요. 이들이 우리의 희망이지요. 희망을 줄 수 있는 이라면 앞으로 힘닿는 대로 계속 그리고 알려나갈 생각입니다.”

애초 그는 그림과 인연이 없는 길을 걸었다. 1987년 3월 충남 홍성 결성고(지금은 홍성공업고)에서 처음 교편을 잡고 국어를 가르쳤다. 1990년 충북으로 넘어와서도 국어와 한문을 주로 가르쳤으며, 충북교육청 한문과 장학사를 지내기도 했다. “평생 국어와 한문을 가르쳤는데 그림으로 이름이 알려질 줄은 몰랐죠. 제대로 배우지 않고 그저 정성 들여 그리는 그림이니 화가가 아니라 칭찬가 정도에 불과하죠.”

그의 그림은 주로 1~2시간 정도 작업 끝에 탄생하지만 준비는 종일, 혹은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희망을 줄 인물을 선정한 뒤 그에 대한 기사, 책 등을 살펴 정보를 구하거나, 전화·대화를 통해 인물의 특징을 끄집어낸다. 그림에 맞는 문구를 찾느라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인물 공부를 끝낸 뒤 생각이 정갈해지는 새벽에 주로 그림을 그리지요. 그 사람의 얼굴과 함께 마음과 인생 등을 담아야 하니까 제 마음이 깨끗해질 때 작업하려 해요. 그림보다 문구 쓰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네요.”

그의 붓을 통해 희망의 별이 된 이는 학생에서 출발해 주변 교직원을 지나 사회 각계각층으로 번졌다. 착한 학생, 봉사왕, 전통시장 상인, 꿈나무, 기업인, 공무원, 운동선수, 연예인, 교육자, 역사인물, 시민단체 활동가, 예술인 등을 망라하고 있다.

그의 희망 얼굴엔 네 편, 내 편이 없다. 진보와 보수가 혼재하고, 유명한 이와 숨은 일꾼이 공존한다. 충북 지역 사람이 많지만, 지역을 넘기도 한다. 최근은 영화 <오징어 게임>의 이정재 배우와 꿀벌 연구로 토종벌을 지킨 김대립씨, ‘청학동 훈장’ 김봉곤·소리꾼 김다현 부녀, 호국 영웅 연제근 상사 등을 그렸다.

“누군가 부탁하기도 하지만 그때그때 문득 생각나면 그리는데 주로 ‘울컥’에서 출발하지요. 아카데미 시상식(윤여정), 유엔 연설(방탄소년단), 올림픽 배구(김연경) 등 울컥한 마음이 희망 얼굴이 됐어요.”

얼굴 그림은 희망으로 번지곤 한다. 지난 6월 희소병을 앓고 있는 증평 형석중 정도운 학생에게 힘을 주려고 그림을 그렸는데 주변 학부모 등이 정군을 돕는 성금 모금에 나서기도 했다. 그의 그림을 계기로 시민단체도 생겼다. 2017년 4월 그의 희망 얼굴에 등장한 주인공들이 꾸린 ‘희망 얼굴’이다. 회원 190여명은 해마다 성금을 내고, 이웃을 돕는다. 폐지 줍는 어르신에게 희망 손수레를 전하고 있으며, 탈북민에게 장학금도 건넨다. 지난 5월과 8월엔 사랑의 헌혈을 진행하기도 했다. 김동진 희망 얼굴 대표는 “지 교장의 그림을 통해 희망 바이러스가 지역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고 했다.

그의 그림을 모아 22~31일 청주 더블루체어 아트홀에서 <힘내라 대한민국 천개의 별> 전시가 열리고 있다. 지금껏 에스엔에스 등을 통해 알린 희망 얼굴 1000점을 볼 수 있다. ‘희망’이 된 그림의 주인공들이 참여하는 토크 콘서트도 이어진다.

“가끔 별로 안 닮았다고 하는 이는 있어도 화를 내거나 불편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희망 얼굴은 웃는 얼굴이니까요. 웃는 얼굴을 그리는 동안 저도 웃으니까 좋고요. 희망이 번져 다들 웃었으면 좋겠어요.”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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