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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부부 건축가의 공공탐색]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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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일본 교토 니시키 시장을 감싸고 있는 지붕 달린 상가 ‘데라마치’의 풍경. 임형남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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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주·임형남ㅣ가온건축 공동대표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시차도 없고 도시의 풍경이 비슷하다. 거리나 골목으로 들어서면 외국에 온 것 같지 않아서 어떤 때는 말도 알아들을 것만 같다. 그러나 곧 그 말들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으며, 비슷하지만 결코 같지 않다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서로 간의 거리와 역사적인 배경을 겹쳐서 생각하면 일본과의 관계는 묘하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본을 경원시하고 호감이 있더라도 되도록 표현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 관계는 국경이 맞닿아 있는 나라 간에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동질감과 이질감이 공존하는 것에서 오는 자유로움이 있다. 한국 같지만 한국이 아닌 곳을 거니는 느낌은 마치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으며 거리를 걷는 것 같다. 내 안의 소리와 바깥의 소리가 완전히 다르다.

일본의 교토는 아주 고적한 도시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시대를 열며 도쿄로 천도하기 전까지 약 1100년 동안 일본의 중심이었고 왕이 머물던 장소였다. 그리고 그 역사가 마치 방부 처리된 것처럼 상하지 않고 잘 보존된 곳이다. 세계적인 관광지인지라 사람들이 많이 몰려온다. 그러나 관광객이 아무리 들끓어도 내면의 고요를 전혀 흩뜨리지 않는 저력을 간직한 채, 종갓집 며느리 같은 자태로 꼿꼿이 앉아 있다. 그런 풍경이 무척 경이롭다.

교토는 도시계획으로 가로가 바둑판처럼 잘 정돈되어 있다. 예전에 일본의 국왕이 살았던 곳에서부터 가로 방향의 구획선이 1조, 2조, 3조로 도시를 가르고, 남북으로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경계로 동과 서가 나누어진다. 그리고 구획마다 각자 알이 탐스럽게 들어찬 과실처럼 오래된 역사와 시간이 가득 들어차 있고, 시간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는 교토인의 일상이 공존하고 있다.

그런 모습은 관광지가 되면 일상은 사라지고 번잡함과 사람들을 현혹하는 화려한 포장으로 대체되는 수많은 역사 도시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인구 150여만명 정도 되는 크지 않은 도시지만, 역사가 워낙 깊다 보니 여러 가지 재미있는 구경거리도 많다.

교토의 중심에 놓여 ‘교토의 부엌’이라는 별칭이 붙은 니시키 시장은 오랜 역사를 담고 있으면서도 활기가 가득하다. 채소와 반찬거리들, 그리고 식당이 뒤섞여 사람들이 마치 물결처럼 흘러다니는 곳이다. 그리고 니시키 시장을 감싸고 있는 ‘데라마치’라는 지붕 달린 상가도 흥미롭다.

교토시청 맞은편으로 들어가면 폭이 넓고 지붕이 있는 아케이드 형태의 데라마치가 시작된다. 데라마치는 사정(寺町)이라는 한자의 일본식 발음으로, ‘절의 거리’라는 뜻쯤 될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교토를 개조하면서 고쇼의 동쪽에 사원을 모으면서 유래된 거리라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교토에는 유난히 절이 많아서 1000개가 훨씬 넘는다고 한다.

거리를 들어서자마자 왼쪽으로 절이 하나 보이는데, ‘혼노지’(本能寺)라는 절이다. 지금은 아늑한 작은 절이지만 원래는 오다 노부나가라는 일본 전국시대의 영웅에 관한 이야기와 조선시대 통신사들에 얽힌 이야기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주로 미술품과 공예품점, 갤러리 등이 있는 거리의 중간에 단아한 전통가옥 형태의 필방이 나온다.

데라마치를 방문했을 때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가 둘러보았는데 다양한 지류와 서예 물품들, 엽서나 기념품에 이르기까지 품목이 다양했다. 한참 고르고 영수증을 보니 개업한 지 500년이 넘은 가게였다. 약간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길을 가다 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포도송이처럼 골목이 중간중간 빠져나가면서 떠들썩한 시장의 풍경이 열린다. 마치 어느 여름날 산 위로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듯이 새로운 공간들이 계속 열리고 그 안으로는 다양한 가게들이 있다.

화려한 색감의 손수건 가게는 400년이 넘었다고 하고, 20세기 초부터 있었다는 카페에는 지긋한 어르신들과 젊은이들이 섞여 커피를 마시고 있다. 방금 개업한 노출콘크리트 외장의 안경점에서는 시끌시끌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극장에서는 최신 개봉작 포스터가 걸려 있다. 한국에서 유행이 넘어갔다는 디저트 전문점에는 학생들이 바깥까지 줄을 서서 재잘대고, 둥근 지붕 아래 걸린 안내 문구에는 프리 와이파이 안내가 붙어 있다. 시장 안에는 오래된 것들과 새로운 것들이 경계 없이 섞여 정제된 바깥 거리의 풍경과는 다른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찬란한 문화유산이 아니라 시장의 풍경에서 교토가 천년의 도시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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