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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인사이트] 갑질 계약서의 끝판왕…화이자가 전 세계를 무릎 꿇린 4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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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자 CEO 생일날 관을 지고 간 의대생들…"부끄러운 줄 알아라"



지난 21일, 앨버트 불라 화이자 CEO의 생일날 뉴욕주 스카스데일 자택 앞에는 의대생들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관을 지고 나타나 시위를 벌였습니다. 관에는 'Global South'(남반구의 저개발국가)라고 써져 있었고, 잔디밭에는 각 국가별로 사망자를 표시한 묘비를 만들어 꽂아놨습니다. 생일날 불청객들이 집 앞에서 이런 시위를 벌이는 게 당사자로서는 기분 나쁜 일이겠지만, 이를 영상으로 보는 사람들은 뭐가 문제인지 명확히 느낄 수 있게 했던 기획 시위였습니다. 흰색 의사 가운을 입은 학생 몇 명이 나와서 발언을 했는데, 불라 CEO에게 "돈 벌려고 사람들을 숨지도록 내버려두는 행동이 부끄러운 줄 알아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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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라 CEO는 미국 정부의 초기 지원금을 거부할 정도로 배짱 있는 인물로 백신 성공을 위해 불도저처럼 일을 했다는데 큰 이견이 없습니다. 존경과 찬사도 받았고 국가 원수급 영향력까지 얻게 됐지만, 어느 순간부터 미국 내에서도 이런 긍정적인 여론이 미움과 원망이 더 커지는 쪽으로 바뀌는 중입니다. 돈 버는 것에 대해 우리보다 훨씬 관대한 미국이기는 하지만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해도 너무 해먹는다'는 인식이 점점 커지는 것입니다. 저개발 국가까지 백신을 다 공급하는 건, 앞으로 3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화이자도 세계대전에 버금가는 비상 상황을 해결하려는 비상한 노력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백신 지재권 수호를 위해 제약 업계 이익을 옹호하는 강력한 목소리를 내면서 필요하다면 거친 소송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화이자의 태도는 팬데믹이라는 세계사적인 비극을 돈 버는 기회로 생각하고 웃고 즐기는 거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합니다. 미국 정부가 다른 나라에 기부를 하고 있으니 미국 정부에 백신을 많이 팔아먹는 게 할 일 다 하는 것이라고 우기는 게 사람들에게 먹히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불라의 입장은 1950년대 소아마비 팬데믹으로 수만 명의 아이들이 희생되던 시절 백신을 개발했던 조너스 소크와는 정반대입니다. 러시아에서 온 유대인 이민자로 피츠버그 의대 교수였던 소크는 7년 동안 연구해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했습니다. 임상 시험 대상이 없어 자신과 가족을 대상으로 생체 시험했다는 것도 유명한 얘기입니다. 그는 특허를 가지고 돈벌이를 하기보다는 백신을 만드는 방법까지 공개해서 빠른 시간에 소아마비 팬데믹을 종식시키는 일등 공신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때보다 더 심각한 팬데믹 위기를 맞고도 해결 방식은 훨씬 제약사 친화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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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9개국 계약서 분석…'화이자의 힘' 보고서



코로나 백신으로 세계 최고의 권력을 움켜쥔 화이자는 국가를 상대로도 갑질을 하고 있다는 것이 워싱턴에 위치한 소비자단체 퍼블릭 시티즌의 보고서를 통해 낱낱이 공개됐습니다. 일개 제약사가 글로벌 희귀품인 코로나 백신으로 어떻게 전 세계를 무릎 꿇렸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입니다. 이 단체의 자인 리즈비 연구원이 전 세계 9개국이 화이자와 맺은 계약서를 입수해 문제점을 정리해 '화이자의 힘'(Pfizer's Power)라는 제목의 보고서로 정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법대 교수, 변호사 등과 크로스 체크하며 협업했습니다.

그는 온라인에 계약서를 공개한 미국, 영국을 빼고, 다른 국가들은 현지 언론이나 시민단체 등을 통해 폭로된 계약 문건들을 모아 분석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내용이 너무나 흥미로웠고, 혹시 한국과 화이자가 맺은 계약서도 분석하는 게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바로 연락했습니다. 리즈비 연구원은 흔쾌히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줬습니다. 그의 인터뷰와 보고서를 토대로 화이자가 전 세계를 무릎 꿇린 방법을 4가지로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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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정부가 떠들지 못하게 재갈을 물려라: 비밀 유지각서

화이자 계약서 특징은 계약의 자세한 내용이 극도의 보안에 붙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제약사들이 무서워하는 유일한 국가인 미국도 화이자와 강도 높은 비밀 유지 계약을 맺었습니다. 미국도 지금까지 제약사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 표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협상력이 좋은 편인 유럽연합도 비밀유지 계약 때문에 4분기 백신 도입량과 단가에 대해서는 발설하는 게 금지돼 있습니다.

사실 국가를 상대로 이런 식으로 재갈을 물리려 드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불평불만 자체를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걸 원천적으로 막아놨다는 것인데, 그동안 제약사가 공급 지연 같은 사고를 쳐도, 어떤 정부도 공식 채널로 앞장서 제대로 말도 못했던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브라질도 처음 화이자와 협상하다가 불평등 조항이 많다고 공개 반발하다가 코로나 폭증으로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결국 두 달 뒤 조용히 화이자의 요구를 수용하고 계약서를 쓴 뒤 침묵 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런 비밀 유지 조항은 백신 배분을 오로지 화이자의 뜻대로 할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떠들면 물건 안 줘'라는 협박은 국가를 무릎 꿇리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였습니다.

② 돈 못 내면 독하게 받아내라: <주권 면제 포기+민간 중재자 심판+정부 자산 추징> 3단 콤보

주권 면제는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 관습법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리즈비 연구원은 화이자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할 여지를 열어두는 동시에 자신들에게 유리하고 비밀이 보장되는 민간 중재자 심판 따르게 하기를 원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주권 면제는 국가의 법적인 보호조치의 가장 핵심인데, 그걸 포기하도록 했다는 것은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백신을 주는 조건으로 국가가 자발적으로 주권 침해적인 조항을 수용하게 강제한 것입니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일부 국가에서는 백신 대금을 못 낼 때 정부 자산을 담보로 넣도록 했습니다.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 콜롬비아 같은 곳에서는 백신 대금이 체불되면 정부가 가지고 있는 예금, 투자는 물론 정부 소유 항공사, 정유사 등을 내놔야 하는 방식입니다. 못 사는 나라에도 돈은 소송을 통해서든 정부 자산을 처분해서든 악착 같이 받아내겠다는 걸 계약서에 관철시켰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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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화이자의 문제는 눈 감아줘라: 배송 지연도 허락, 지식 재산권 침해는 국가가 대신 배상

상대국의 문제를 추궁하는 방법은 지나칠 정도로 세밀하게 요구했던 화이자는 자신들에게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마련해놨습니다. 공급 지연 사태에 대해서 화이자는 책임이 없다는 건 기본 입장이었다고 리즈비 연구원은 설명했습니다. 거기에 더 나가서 알바니아, 브라질, 콜롬비아 계약서에는 배송 일정에 대해서는 화이자가 어떤 수정을 해도 수용한다는 것까지 관철시킨 게 확인됐다고 말했습니다.

코로나 백신 지식 재산권은 절대 내놓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화이자지만 적어도 4개국 계약서에 다른 회사의 지식 재산권을 화이자가 침해했을 때는 해당 국가가 배상하는 걸로 계약을 했습니다. 사업하다가 발생할지 모르는 골치 아픈 일을 정부가 전부 떠 안아주는 걸 요구해 관철시켰다는 것입니다.

④ 백신의 이동을 막아라: 허락 없는 백신 기부 봉쇄

화이자는 자신들이 판매한 백신이 국가 간에 오가는 것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품질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를 내세울 수 있지만, 국가별로 단가가 다르게 책정돼 있기 때문에 이를 전면 허용할 경우 싼 곳에서 비싼 곳으로 물건이 역류하는 암시장이 형성될 것을 우려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한참 접종하고 백신이 남아도는 국가에서도 백신이 나가지도 못하고, 백신이 부족한 국가는 화이자가 물건을 주기 전에는 백신을 다른 나라에서도 받기도 어렵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리즈비 연구원은 "백신 기부가 충분히 빠르게 진행되지 않으면 팬데믹이 더 커지고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독점 괴물'로 변하는 화이자…"기술 이전 통한 독점 해체밖에 없다"



리즈비 연구원은 화이자가 코로나 백신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막강한 정부조차 다른 레버리지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문제적 조항을 결국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이를 해결하려면 화이자의 힘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걸 막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리즈비 연구원도 하루 빨리 백신 생산 기술을 다른 나라에 이전해 그들도 백신을 동시에 최대한 많이 생산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백신사들이 무서워하는 국가는 미국밖에 없습니다. 국방 물자 생산 법으로 백신 원료를 구해주는 미국이기 때문에 백신사들의 목줄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요한 특허를 미국 정부가 가지고 있는 것도 많습니다. 물건을 생산하는 즉시 백신사들은 미국 정부의 요구는 최우선으로 납품하고 있습니다. 리즈비 연구원은 미국 정부가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제약사들을 움직일 방법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기술 공유, 제조법 공유도 미국 정부가 나서면 가능하다며, 한국에도 기술 이전을 통해 백신을 하루라도 빨리 생산하게 하는 게 팬데믹을 빨리 끝내는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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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유지 조건으로 가려진 한국 계약…화이자의 갑질 더 공론화돼야



우리나라도 백신 계약 관련해서 비밀 유지 협약을 맺었다고 여러 차례 인정한 바 있습니다. 백신 구매에 뛰어든 것 자체가 늦었고 공급 일정을 당기기 위해 제약사들이 원하는 조건을 상당수 수용했을 거라는 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퍼블릭 시티즌은 한국 정부와 화이자가 맺은 계약서를 확보하지는 못했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리즈비 연구원은 화이자 계약서는 전 세계 공통적으로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발견된다면서 한국 계약서에도 문제 조항이 들어가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한국 정부와 화이자 계약서가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제약사들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힘없는 국가를 위력으로 무릎 꿇리고, 글로벌 공급 확대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은 미국에서도 비난받기에 충분한 일입니다. 미국 언론에서도 칼럼 등을 통해 백신 제약사들이 돈 버는 데만 집중하고 팬데믹 종식을 위해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비판하는 칼럼들이 계속 실리는 중입니다. 이런 점에서 미국에서 공개된 화이자의 갑질 계약서의 실태는 국내에도 충분히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미국 기준으로 봐도 '내가 만든 백신 내가 팔겠다는데 누가 시비냐'고 하기 어려운 심한 갑질이기 때문입니다.
김수형 기자(se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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