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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영웅' 호칭에 갈려나가는 사람들 [김수진의 '별 일 있는'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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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의 '별일 있는' 캐나다] 혹독한 초과근무에 지쳐 의료계 떠나는 캐나다 간호사들

캐나다에서 경험하는 크고 작은 '별일'들, 한국에 의미있는 캐나다 소식을 전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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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앞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가 연 5대 요구안 선언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근처에서 한 노조원이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등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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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인구 1000명 당 간호사 수는 4.2명으로 OECD 평균인 7.9명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간호사 1인당 평균 환자 수는 10명을 훌쩍 넘는다. 이같은 인력부족으로 인한 초과근무 및 불규칙한 3교대 근무 등 열악한 근무 환경이 개선되지 않은 채 코로나19가 발발했다. 기존의 근무환경을 더욱 악화시킨 팬데믹이 장장 2년 가까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제 간호사들은 지칠대로 지쳐 버렸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지난 3~4월 조합원 4만3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55.7%가 '코로나19로 노동여건이 악화됐다'고 답했다. '일상생활이 악화됐다'고 응답한 비율은 그보다 높은 78.7%였다. 지난 여름 JTBC는 "영웅이란 찬사 뒤에 가려진 간호사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

이곳 캐나다 간호사들이 처한 상황도 매우 흡사하다. 예전부터 부족했던 간호사 인력 문제가 코로나19로 더욱 악화된 것도, 그로 인해 초과근무가 강요된 것도, 그리고 버틸 수 없을 만큼 지쳐 결국 퇴직하는 간호사들이 늘어난 것까지 아주 많이 닮아 있다.

휴일, 문 닫은 응급실... "열심히 일해 왔지만"

8월의 어느 휴일, 온타리오주의 작은 마을 클린톤 병원은 응급실 문을 닫아야 했다. 밤이고 낮이고 반드시 열려 있어야 할 응급실이 하루 문을 닫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건 근무할 간호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고작 예닐곱 명의 간호사가 있는 그 병원에서, 네 사람으로 이뤄진 12시간 근무조에 업무량은 늘 넘쳤고, 그 주만 해도 간호사 홀리 브래커는 쉬는 날 없이 매일 일했다고 했다. 그는 CBC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날의 감정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정말 열심히 일해 왔지만, 그날엔 마치 우리가 공동체의 기대를 저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캐나다 간호사 연합 회장 린다 실라스의 말에 의하면, 이 작은 마을의 상황이 더 심각한 편이다. 하지만, 간호사 부족은 대도시를 포함한 캐나다 전역에 걸친 문제이기도 하다. 코로나 팬데믹이 문제를 악화시키고 부각시켰을 뿐, 간호사 연합과 노동 경제학자들은 이미 수년 동안 수요에 못 미치는(특히나 인구 고령화를 고려했을 때) 캐나다 간호사 수에 대해 경종을 울려왔다.

그리고 팬데믹이 간호사들의 번아웃을 가중시켜 매우 걱정스러운 속도로 퇴직이나 조기 은퇴가 일어나고 있다고 보고된 바 있다. 퀘백 주지사에 따르면, 실제로 퀘백주에서만 4000여 명에 이르는 간호사들이 일을 그만뒀다. 이는 일부 응급실들이 시간을 단축하거나 심지어 닫아야 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간호사들의 대거 퇴직은 당연하게도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남은 간호사들의 업무 부담은 더욱 늘어나고, 이는 돌봄을 받아야 할 환자들에게도 시간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악영향을 끼친다. 지친 간호사들에 의한 의료 실수도 배제할 수 없다.

간호사들이 짊어져야 하는 짐은 혹독한 업무량뿐이 아니다. 팬데믹 이후 증가한 환자나 보호자들의 언어적 폭력을 견뎌야 하는 것도 간호사들의 몫이다. 락다운 기간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폭언을 하거나 심지어 고소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코로나에 대한 음모론을 내세우거나 정부가 백신으로 시민들을 통제하고 있다면서 간호사들과 논쟁을 벌이려는 이들도 있다. 언어 폭력을 넘어 신체적 폭력이 일어나기도 한다. 병원 밖에서 마스크나 백신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는 것도 생명을 구하려 고군분투하는 간호사들에게는 상처가 된다.

"비인간적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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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3월 1일 캐나다 몬트리올의한 보건요원이 코로나19 백신 접종 주사기를 살펴 보고 있다.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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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0월 15일, 곪을 대로 곪은 간호사들의 문제가 터져 버리고 말았다. 퀘백주 간호사 연합이 파업을 선언한 것. 12개 지역 3만 명 이상의 간호사들이 그 주말 초과근무를 하지 않겠다고 나섰다. 간호사 연합은 코로나 팬데믹의 압박 아래 기진맥진한 간호사들의 상황을 피력했고, 인력부족을 메우기 위해 실시되고 있는 강제적 초과근무 관행의 전면 금지를 요구했다. 퀘백 간호사 연합 노동위원회 부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시스템은 간호사들과 환자들 모두의 건강과 안전을 위험에 빠뜨리며, 간호사들에게 정신적 피해를 입힙니다. 우리는 이런 운영방식을 끝내야만 합니다."

팬데믹으로 더욱 악화된 근무조건이 이제 막 간호사로 첫 걸음을 뗀 젊은 간호사들로 하여금 다른 진로에 눈을 돌리게끔 한다는 것도 큰 문제다. 팬데믹이 한창일 때 응급실 근무를 시작한 22세의 간호학과 학생 로렌스 레오나드는 가혹한 근무시간 때문에 벌써부터 간호사로서의 자신의 미래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됐다. "환자를 사랑하지만 매순간이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마음과의 전쟁 같다"고 했다. 매일 밤낮으로 한계를 넘어 완벽하게 일할 것을 요구하는 병원의 현실에 그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한국 역시 신입 간호사들의 퇴직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메디컬투데이>에 따르면, 2020년 충북대병원의 퇴직 간호사 129명 중 92.25%, 강원대병원의 퇴직 간호사 78명 중 85.89%, 서울대병원의 퇴직 간호사 142명 중 76.05%가 입사 5년 이내 퇴직한 간호사였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퀘백 간호협회장은 "정부가 간호사들을 계속 근무하게 하고 싶다면 '위기 모드'에 돌입해서 장려금을 더 지급하고, 현장에서 간호사들을 지원해줄 보다 나은 관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토론토의 간호사 에람 츠호갈라는 임시방편으로 그때그때 간호사를 더 채용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근무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한 새로 채용된 이들 역시 떠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린다 실라스 역시 지난 수십 년간 의료분야의 문제 해결방식은 늘 미봉책에 불과했음을 지적했다. 코로나와 같이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당장의 인력충원도 중요하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력충원이란 향후 의료업계에 얼만큼의 인력이 필요한지에 대한 모델링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하며, 그러한 모델링을 수행할 정부 지원 예측기관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캐나다 퀘백주 보건부장관 크리스티앙 두베는 간호사 연합의 파업 선언에 대한 대응으로, 곧 의료계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구체적 방침들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에 앞서 8월 초 간호사 연합과 맺은 협정에는 1% 봉급 인상, 야간과 저녁 및 주말 근무에 대한 보너스 지급, 1500개의 풀타임 자리 마련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영웅'이라는 말 속에 짓눌리는 사람들

한국 보건복지부와 보건의료노조의 협상 역시 9월 2일 타결됐다. 코로나19 환자 중증도별 간호사 배치기준을 마련하고, 예측 가능하고 규칙적인 교대 근무제 같은 방안을 내년 3월 내로 시행키로 했다. 또 우선순위에 입각한 직종별 인력기준을 마련해 의료인력 확충에도 힘쓰기로 했다.

다음은 보건의료노조가 8월 18일 기자회견을 마치고 남긴 말이다.

"이제 희생과 헌신에 대한 박수가 아니라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부족한 인력난 가운데 중환자실 간호사로서 코로나 환자들을 돌보다 지쳐 이제는 다른 직업을 택한 토론토시의 조한나는 이렇게 말했다.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드는 건 팬데믹 동안 간호사가 '영웅'이 돼주길 바라는 공동체의 기대입니다. 제가 얼마나 지쳐 있는지를 얘기하면 안될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기대하는 그런 영웅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그들을 격려하려던 '영웅'이란 칭호가 더욱 무거운 짐이 돼 그들의 어깨를 내리 눌렀는지도 모르겠다. 간호사들이 원하는 건 '코로나 최전선의 영웅'이라 엄지 척 치켜드는 찬사가 아니다. 간호사들의 고된 노동은 그러한 찬사로 상쇄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실질적인 대책이 절실한 때다.

김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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