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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5·18 당시 절도범 누명 쓴 50대 재심서 41년 만에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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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 불법 구금·고문에 허위 자백
군법회의서 징역형 선고 받아 옥살이
"군 검찰이 받은 자백 증거능력 없어"
한국일보

광주지법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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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신군부의 불법 구금고문에 따른 허위 자백으로 특수절도·도주죄를 뒤집어썼던 50대 남성이 재심을 통해 41년 만에 무죄를 선고 받았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법 제12형사부(부장 노재호)는 소요·계엄법 위반·도주·특수절도 혐의로 기소돼 군법회의에서 유죄를 선고 받은 이모(59)씨에 대한 재심에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씨는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의 헌정 유린에 맞서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고, 같은달 29일 광주경찰서로 연행됐다가 전투병과 교육사령부(상무대) 헌병대 영창으로 보내졌다. 이씨는 같은해 6월 505보안대로 끌려가 전기 고문 등 극심한 가혹행위를 당했고, 건강 악화로 광주 국군통합병원으로 후송됐다.

같은 해 7월 4일 전남북계엄 보통군법회의 검찰이 영장 없이 이씨를 구속했다. 이씨는 다음 날 다시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간다는 것을 알게 되자, 화장실을 가는 척하며 국군통합병원을 탈출했다. 하지만 도주 하루 만인 7월 7일 붙잡혀 505보안대로 연행돼 또다시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했고, 같은 해 8월 1일 군법회의에 기소됐다.

신군부는 절도 범죄를 저지른 적 없는 이씨에게 거짓 자백을 강요해 특수절도죄도 적용했고, 전교사보통군법회의·육군고등군법회의·대법원을 거쳐 징역형(장기 3년·단기 2년)이 확정됐다.

검사는 이에 2018년 5월 이씨의 소요·계엄법 위반·도주죄에 대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했고, 재판부는 5·18특별법상 민중항쟁과 관련된 행위인 소요·계엄법 위반에 대해서만 재심 개시 결정을 했다. 그러나 재판부가 재심 대상에서 빠진 이씨의 특수절도·도주죄 부분의 형량을 다시 정하기 위한 심리를 하던 중 이씨가 5·18 당시 불법 체포·구금 상태에서 고문·가혹행위를 당한 유력한 증거가 발견됐다.

광주시의사회가 펴낸 5·18 의료 활동 책자에는 김연균 당시 국군통합병원장이 상무대 영창 등에서 고문·가혹행위를 당해 병원으로 실려 온 5·18 참여자들을 진료한 기록이 실렸는데, 여기에 이씨의 후송 사유 등이 발견됐다. 재판부는 해당 기록을 이씨가 신군부에 의해 불법으로 수사를 받았고 극심한 고문까지 당한 명백한 증거로 보고, 5·18특별법이 아닌 형사소송법에 따른 재심 사유를 추가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법관 발부 영장 없이 1980년 5월 29일부터 7월 4일까지 불법 체포·구금된 상태로 수사를 받았고, 계엄포고에 의해 구속 당한 것도 영장주의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돼 효력이 없는 만큼 군 검찰이 이씨에게 받은 자백은 위법해 증거 능력이 없다고 보고, 이씨의 모든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수사·재판 당시 가혹한 고문·가혹행위에 따라 자포자기 심정으로 (특수절도죄를) 거짓 자백했다는 취지로 재심 법정에서 이씨가 진술한 점을 종합하면, 범죄가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며 “도주죄의 경우 이씨가 불법 체포·구속 상태와 고문 행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아난 것으로 위법성이 없고, 긴급 피난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소요·계엄법 위반에 대해선 다른 5·18 관련 재심 사건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전두환 신군부의 헌정 질서 파괴 범죄에 대항한 정당행위(형법 제20조)로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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