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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부모에 장기 내어준 10대 자녀, '효'라고만 할 수 없는 이유[뉴스원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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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재산 증여와 상속. 효도계약 써야할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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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의 촉: 미성년 자녀의 장기이식이 자율적 결정일까



한국은 생체 장기이식 기술은 세계 최고이다. 뇌사자 장기이식과 달리 살아있는 사람의 장기를 적출해서 이식한다. 세계 최고가 된 데는 의료인의 헌신과 혁신적 마인드가 첫째 이유이지만 가족 중심의 유교문화가 기증 활성화를 이끈 측면도 있다.

이런 탁월한 성과에 다소 어울리지 않은 부분도 있다. 미성년자 장기 적출과 이식이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최근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국정감사 자료를 분석해 공개했다. 지난해 미성년자 장기 등을 의식 받은 사람은 80명이다. 이 중 20명은 16세 미만의 장기를 받았다. 16세 미만 장기 기증은 2016년 3건에서 많이 늘어난 것이다.

생체 기증은 간·신장·골수·말초혈을 제공하는 것이다. 말초혈은 손·팔 등에서 혈액을 뽑아 혈액암 환자에게 이식한다. 지난해 간 기증이 41건, 신장 1건, 골수 4건, 말초혈 34건이다.

간·신장 41건은 16~18세 고교생이 기증했다. 말초혈은 16세 미만, 16~18세가 각각 17건이다. 골수는 16세 미만이 3건, 16~18세가 1건이다.

현행 장기이식법에는 16세 이상 미성년자 생체 장기는 배우자ㆍ직계존비속ㆍ형제자매 또는 4촌 이내의 친족에게만 기증할 수 있게 돼 있다. 말초혈과 골수는 16세 미만도 가능하다.

지난해 미성년자 간·신장·골수·말초혈이 누구에게 가장 많이 갔을까. 75%는 부모이다. 형제·자매(23.8%), 방계혈족(1.3%) 순이다.

자식의 간·신장·골수·말초혈을 적출해 부모에게 제공하는 건 최고의 효로 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부모가 숨지면 미성년 자식이 부모 없이 살아가야 하고, 이런 걸 생각하면 미성년 자식이 장기를 부모에게 기증하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 또 간 절제 후 간이 원래대로 자라기 때문에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미성년자의 권익 차원에서 달리볼 필요가 있다. 신현영 의원은 “미성년자 장기 등의 이식 수혜자는 생계를 함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사 결정 과정에서 미성년자의 자율적 판단이 존중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하대청 광주과학기술원 교수(과학기술사회학)는 "부모가 장기를 이식받지 않으면 죽는다는데, 같이 사는 자식이 가만있을 수 있겠느냐. 미성년자는 가족의 강압에 취약한 지위에 있다. 자식의 기증이 자율적 결정일 수 없다"고 말한다.

하 교수는 "미성년 손자가 할머니에게 간을 기증한 후 할머니가 사망하자 손자가 후회하는 걸 봤다. 본인의 건강상태도 좋지 않다고 했다"며 "부모에게 기증하고선 속으로 후회해도 그 말을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며 "선진국에서는 자식의 거부 의사를 그대로 부모에게 전달하지 않고 의학적인 이유를 대서 자식을 보호한다. 우리처럼 미성년자의 장기 적출을 법으로 허용하는 나라가 거의 없다"고 말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체코·덴마크 등 23개국은 부모가 동의해도 미성년자의 장기 기증을 허용하지 않는다. 일본은 2015년 기증 가능 연령을 16세 이상에서 18세 이상으로 올렸다. 다만 룩셈부르크·벨기에는 형제에게, 프랑스는 형제·자매에게 골수 기증만 허용한다. 독일은 1촌의 혈족, 형제·자매에게 골수 기증만 가능하다. 영국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 지침도 미성년자의 장기 적출·이식을 허용하지 않는다.

신 의원은 “미성년자는 신체적·정신적으로 성숙하는 과정에 있으므로 이들의 장기 기증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WHO와 선진국 지침을 참고해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예외적인 상황에서 허용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대청 교수는 "우리 사회가 이미 선을 넘었다. 이제는 미성년자를 보호해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일학 연세대 의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는 "미성년자가 장기 기증에 명시적으로 동의한다고 해도 강압이 작동할 것이다. 장기 이식이 아니면 죽는다고 가족이 울면 미성년 자식이 나서지 않을 수 있겠느냐"며 "미성년자를 보호하도록 법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올 3월 장기기증 활성화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미성년자 권익 보호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백경순 혈액장기정책과장은 "미성년자가 가족에서 강압 받을 우려가 있어서 기증 허용 연령을 재검토하거나 기증 의사의 자발성을 평가하는 도구를 만드는 등의 이행대책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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