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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경찰 25시] 절차 무시하다 음주운전자 무죄로 풀어준 경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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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한 차량 소유주에 "차빼라" 요청 뒤 음주단속 적발

음주의심 신고에 집 찾아가 현행범 체포...법원 "위법"

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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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호법' 시행 후 주춤하는 듯했던 음주운전 교통사고가 다시 증가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음주운전 교통사고 건수는 윤창호법 시행 이전 연간 평균 1만9000여건을 상회하다 시행 직후인 2019년 1만5708건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인한 사상자는 2019년 2만6256명에서 2020년 2만8350명으로 2094명 증가했다.

경찰이 엄격한 법 집행을 바탕으로 한 음주운전 근절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단속에만 매몰돼 적법 절차를 무시하다 음주운전자를 눈앞에서 무죄로 풀어주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음주한 차량 소유주에 "차빼라" 요청 뒤 음주단속 적발

경찰이 운전자의 음주 사실을 알고도 차량 이동을 요구한 뒤, 음주운전 단속을 벌인 것에 대해 "절차가 적법하지 않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창원지법 형사3-1부(재판장 장재용)는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은 A(45)씨의 항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항소심 결과에 불복해 상고했고 이 사건은 대법원 판단을 받게 됐다.

A씨는 지난 2019년 11월 2일 오전 8시 30분쯤 창원시 의창구 명곡지구대 주차장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059%의 주취 상태로 약 10m 거리를 운전한 혐의(도로교통법 위반)로 1심에서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A씨는 경찰 함정수사로 인해 음주운전이 적발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경찰에게 자신이 음주를 해 운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렸음에도, 경찰이 계속해서 차량 이동을 요구해 어쩔 수 없이 운전대를 잡았다고 주장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음주상태를 알고 있었음에도 경찰이 방치한 점을 인정했다. 함정수사로 보기는 어렵더라도 범죄행위(음주운전)가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범죄행위를 저지하지 않은 점 등이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된 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음주 의심 신고에 집 찾아가 현행범 체포...법원 "위법"

경찰이 음주 의심 신고 차량을 현장에서 찾지 못해 차량 소유주의 집을 방문해 차 주인을 현행범으로 체포한 것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수원지법 형사항소1-2부(권기만 부장판사)는 지난 15일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원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1심은 "경찰이 피고인의 허락 없이 피고인 집 안에 들어갈 당시에는 방금 음주운전을 한 범인이라는 점에 관한 죄증이 명백했다고 볼 수 없다"며 "경찰이 영장 없이 피고인 집에 들어간 행위는 형사소송법상 현행범 또는 준현행범 체포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음주 측정 요구 및 블랙박스 압수 역시 위법한 강제처분에 연이은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했다. 검찰은 항소했으나, 2심은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경찰은 지난해 1월 30일 오후 10시 40분께 경기 성남시 중원구 한 도로에서 "음주운전이 의심된다"는 신고를 받고 15분 만에 혐의 차량이 주차된 곳에 도착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는 신고자만 있을 뿐 운전자는 없었다.

신고자는 "얼굴이 빨갛고 걸음걸이가 술을 많이 마신 것처럼 보이는 남성이 운전하는 모습을 보고 112에 신고한 뒤 차량 추격을 했다"며 "해당 차량은 진행 신호에도 출발하지 않는 등 비정상적인 운행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다만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는 것은 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운전자를 찾을 수 없던 경찰은 차량 소유자가 운전했으리라 보고, 차적 조회를 통해 차 주인이자 이 사건 피고인인 A씨의 주소를 확인, 같은 날 오후 11시 10분께 바로 인근에 있던 A씨 집으로 찾아갔다.

A씨는 경찰이 찾아오자 영장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집에서 나가달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음주운전 현행범으로 체포할 경우 영장 없이 압수 및 수색을 할 수 있다며 음주 측정을 요구했다.

실랑이 끝에 40여분 후인 오후 11시 52분께 A씨는 음주 측정에 응했다. 그 결과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31%로 나타났다. 이에 경찰은 A씨를 음주운전 현행범으로 체포하면서 별도 영장 없이 차량 블랙박스 저장장치를 압수했다.
음주측정 거부가 음주운전보다 형량 낮아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의 아들인 장용준(21·예명 ‘노엘’)은 지난달 18일 오후 10시 30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성모병원사거리에서 벤츠를 몰다가 다른 차와 접촉사고를 냈다. 이후 출동한 경찰관의 음주 측정 요구에 불응하고 경찰관의 머리를 들이받아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경찰은 장씨가 만취 상태라고 판단해 석방했고 다시 불러 조사한 뒤 지난 1일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측정 거부·무면허운전·재물손괴)과 상해,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가 적용됐다. 다만 음주 측정이 이뤄지지 못한 탓에 음주운전 혐의는 적용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음주운전자가 이러한 법의 사각지대를 악용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만취 시 음주 측정을 거부하는 게 유리한 거 아니냐는 해석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경찰의 음주 측정에 불응할 경우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상,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혈중알코올농도가 0.2% 이상인 사람은 2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상,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음주 측정을 순순히 응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중 후자가 처벌이 더 커야 하는데 측정 불응이 유리한 경우"라며 법 공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장씨는 결국 지난 12일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문성관 영장전담부장판사는 "범죄혐의가 소명되고 도망할 우려가 있다"며 장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날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예정돼 있었지만 장씨는 출석하지 않았다. 장씨 불출석으로 법원은 서면 심리를 거쳐 30여분 만에 영장을 발부했다.
김정래 기자 kjl@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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