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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 무대 뒤의 조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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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가수 조용필의 위상이나 살아온 날의 이야기는 누구나 알 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정작 무대 뒤에 가려진 뮤지션 조용필에 대한 조명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조용필과 나는 1980년대에 미주한국일보가 초청하는 재미동포위문공연단의 출연자와 취재기자로 5년 동안을 매년 40여 일씩 미주 10여 개 지역을 순회하며 동고동락했다.

첫 공연지 로스앤젤레스(LA)에서의 일이다. LA에 도착한 일행이 호텔에 내리는데 조용필은 바로 공연장으로 가겠다고 했다. 공연장은 LA의 랜드마크 같은 슈라인 오디토리엄이었다. 아카데미상, 그래미상, 에미상 등을 시상하는 미국의 대표적 문화예술 공연장으로 시설이 잘된 곳이다. 그런데 문제는 조용필이 사운드 체크를 하고 앰프 스피커가 더 필요하다고 한 것이었다.

추가 시설이 안 되는 공연장을 겨우 설득해 앰프 스피커를 무대 양옆에 쌓아놓고 공연을 했다. 슈라인 오디토리엄이 생기고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조용필은 그렇게 철저한 뮤지션이고 확실한 리더였다.

짧지 않은 시간 공연여행을 같이하면서 그가 왜 조용필인지, '국민가수'인지를 더 알게 됐다. 누군가의 말처럼, "노력과 집념으로 피어난 한 송이의 국화꽃"같이 "먹구름 속에서 우는 천둥소리 음악으로 피어낸 오빠" 같은 가수다.

한참 전 조용필을 취재한 후배 기자가 "가수로서 정상을 이룬 사람인데 참 겸손하고 과장 없고 담백하데요. 평소에도 그런가요?"라고 물었다. 조용필은 늘 조용필일 뿐이다.

미국 가기조차 하늘의 별 따기였던 그때, 1980년 6월 14일 LA 슈라인 오디토리엄에서 역사적인 한국 가수의 미국 공연이 첫 막을 올렸다. 심혈을 기울인 그 대형 무대에 조용필이 등장했다. 6500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환호가 폭발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정' '한오백년'을 열창하고 이어 다음 노래를 소개했다. "여러분은 이 노래를 잘 모르실 겁니다. 지금 히트하고 있는 '창밖의 여자'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위트 있는 그의 멘트에 공연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조용필은 그렇게 교포들을 사로잡고 위문했다.

'창가에서면 눈물처럼 떠오르는/ 그대의 흰 손 … 차라리 차라리 그대의 흰 손으로/ 나를 잠들게 하라' 노래가 끝나고 눈시울 젖은 동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못했다. 이상하게도 조용필이 무대에 서면 아무리 큰 무대도 꽉 차 보인다. 분명 '작은 거인'이다.

그 소녀 데려간 세월이 미운 '단발머리' 소녀들, 이 주말도 벌써 쌀쌀한 가을이다. 그 푸르던 날의 추억으로 영원한 오빠 조용필의 가을 같은 노래를 듣는 것도 괜찮은 주말일 것 같다.

[신대남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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