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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허연의 책과 지성] 폭 3미터 감방에서 세계를 울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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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터키의 밀란 쿤데라'라 불리는 작가이자 언론인 아흐메트 알탄은 2018년 2월 정부 전복을 시도했다는 누명을 쓰고 체포된다. TV프로그램에 출연해 정부 전복의 거사를 알리는 암호문을 유포했다는 죄목이었다. 터키 검찰은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하지만 에르도안 독재정부의 사주를 받은 재판부는 그에게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한다.

"길이 4m 폭 3m짜리 감방에서 남은 평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절대 사면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교도소에서 죽을 것이다. 나는 죽음의 영토로 내려가고 있다."

감옥에 갇힌 알탄은 옥중수기를 쓰기 시작한다. 어둠 속 희미한 빛에 의지해 잉크로 써내려간 그의 수기 19편은 변호사에 의해 밖으로 반출된다. 얼마 전 국내에 번역 출간된 '나는 다시는 세상을 보지 못할 것이다'(알마 펴냄)는 그 수기의 번역본이다. 한국어와 영어를 비롯한 몇 개 외국어 판본으로 출간됐지만 아직 알탄의 모국어인 터키어로는 출간되지 못했다. 책에는 한 지식인 작가가 절망을 이기기 위해 육체를 포기한 채 오로지 정신성에 기대어 자기 자신을 단련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문장 하나하나가 살아서 꿈틀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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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만의 '오디세이'를 쓰되 이 좁디좁은 감방 안에서 내 목숨으로 쓸 것이다. 나의 이 모험은 오직 죽음에 이르렀을 때에야 끝날 것이다. 나는 쓸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견뎌내기 위해, 싸우기 위해,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 실패들을 용서하기 위해."

알탄은 비인간적인 대우와 육신의 고통, 끝없는 고립감과 싸우며 몇 번의 무너질 것 같은 순간들을 이겨낸다. 그는 절박한 순간마다 작가의 정체성과 지식인의 책무를 사유하며 스스로를 다잡고 버텨 나간다.

"나는 거의 신적인 교만함을 가지고 있다. 나의 확신은 문학이라는 단단한 껍데기 속에서 진주처럼 자라고 있다. 나는 면책특권을 가지고 있다. 내가 쓴 책들이 나를 철갑처럼 보호하고 있다. 나는 이 글을 감방 안에서 쓰고 있다. 나는 작가다. 당신들이 나를 감방 안에 넣을 수는 있지만 나를 가둬둘 수는 없다. 왜냐면 작가들에게는 마법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마법은 당신들이 만들어놓은 벽을 아주 쉽게 뛰어넘을 수 있다."

알탄의 사연이 알려지자 노벨상 수상자들이 들고 일어섰다. 가즈오 이시구로, 마리오 바르가스요사, 존 맥스웰 쿠체 등 문학상 작가들과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32명의 수상자들이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에게 알탄을 비롯한 지식인 6명의 석방을 요구하는 공개 서한을 보냈다. 이들의 노력과 악화된 여론에 움찔한 터키 정부는 지난 4월 알탄을 가석방했다.

구소련 강제수용소에서 10년의 투옥생활을 끝내고 '수용소 군도'라는 소설을 쓴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위대한 작가는 자신이 속한 나라에선 제2의 정부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정권도 위대한 작가를 좋아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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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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