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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풍류대장’, 국악 예능의 희망 편과 절망 편 사이에서 [위근우의 리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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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을 비틀어 귀를 열었다… 이제 동시대 감성에 녹아들 차례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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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풍류대장> 참가자 국악인 최예림은 국악 공연만으로 생계가 어려워 교양 프로그램 리포터로 활동하던 자신의 사연을 래퍼 에미넴의 ‘Lose Yourself’에 담아 판소리 스타일로 불러 화제가 됐다. JTBC <풍류대장>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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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가장 스웨그 넘치는 참가자는 Mnet <쇼 미 더 머니> 시즌 10의 래퍼들이 아닌 국악 크로스오버 경연인 JTBC <풍류대장>의 최예림이었다. 그는 국악인으로서 한 달 내내 공연을 해도 월 80만원밖에 벌지 못해 KBS <6시 내 고향> 리포터로 활동하던 자신의 사연을 바탕으로 에미넴의 ‘Lose Yourself’를 판소리 스타일로 편곡, 번안 및 일부 개사해 불렀다. 비록 잠시 가사를 놓치는 실수를 했음에도 “무대에 설 수 없는 현실로 돌아오고 자존감 무너지고 삶은 막막하고”처럼 본인 삶과 연결된 가사와 포효하는 목소리의 일치감에 심사위원들은 1라운드 합격을 안겼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완곡 버전에선 그가 직접 쓴 가사로 분노의 사자후를 토해내 댓글에서도 큰 호평을 받는 중이다. 여기엔 한(恨)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쇼 미 더 머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 수행으로서의 분노, 스웨그가 아닌, 협소한 국악 시장에서 생존하고 그 와중에 음악인으로서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삶의 구체적인 맥락이 있다. 1라운드에서 탈락한 국악 퓨전밴드 고래야는 국내보다 해외에 더 많이 알려진 본인들의 현실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고, 최예림처럼 작창을 랩과 결합한 신동재는 ‘서른인데 이제 국악 말고 밥 벌어 먹고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주위 사람들의 우려 혹은 참견을 가사에 담아냈다. 국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모으겠다는 포부를 품은 <풍류대장>이 끝날 때 즈음엔 뭔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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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풍류대장> 참가자 서도밴드는 밴드에 국악을 섞은 무대로 주목을 받았다. JTBC <풍류대장>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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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 참가자들이 타 대중음악 장르와의 크로스오버 무대를 통해 경쟁한다는 <풍류대장>의 기획에는 두 가지 맥락이 존재한다. 첫째, 이날치가 부른 ‘범 내려온다’의 성공과 그로 인해 소급되어 다시금 회자된 이희문, 장영규의 프로젝트그룹 씽씽 등 국악 크로스오버에 대한 관심이다. 지난 6월 동아일보에선 ‘“제2의 이날치 찾아라” 눈 크게 뜬 대중음악계’란 기사를 통해 각종 밴드 경연에 국악을 섞은 팀이 다수 등장하는 경향을 전하며, 이번 <풍류대장>에도 참가한 서도밴드를 소개하기도 했다. 둘째, 앞서 이야기했듯 미디어 노출이나 팬덤, 장르 커뮤니티 자체가 극도로 협소한 국악 시장의 열악함이다. 심사위원인 송가인과 박정현이 팬임을 자인하며 큰 기대를 모은 서도밴드, 송가인의 대학 동기인 서진실이 소속된 AUX는 심사위원 만장일치 호평과 함께 모두 1라운드 합격 및 톱 10에 뽑혔지만 당장 1년 전인 2020년 10월3일, 그 서도밴드가 출연하고 서진실이 진행(원래 진행자인 김나니를 대신해)했던 MBC <우리가락 우리문화> 213회는 여간해선 시청자를 만날 수 없는 토요일 새벽 5시에 편성되었다. 이 두 가지 맥락은 원래 퓨전 성향을 가진 참가자 외에도 정통 가야금 병창을 하던 임재현이 그를 잘 알던 송가인도 놀랄 정도로 파격적인 ‘하여가’ 무대를 시도하는 내적 동기를 만든다. 국악인으로 생존하고 실존하는 건 어려운데 퓨전 국악에 대한 대중음악 시장의 관심이 커졌으니 크로스오버를 통한 변모는 필연적인 것처럼도 보인다.

힙합 경연인 <쇼 미 더 머니>가 열 번째 시즌에 이르러 예전 참가자들이 다시 등장하고, TV조선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으로 피어오른 트로트 열기는 종편과 지상파를 망라한 유사 프로그램들의 범람으로 빠르게 소진됐고, JTBC <슈퍼밴드> 시즌 2는 종영한 지 얼마 안 된 지금, 국악 엘리트들이 참가하는 크로스오버 경연은 상당히 높은 완성도와 신선함을 보장한다. 이날치에 대한 대중의 뜨거운 반응을 기억한다면, 안 만들 이유도 없고 참여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MBN은 8월에 <조선판스타>를, JTBC는 10월에 <풍류대장>을 시작했다. 이 흐름 자체는 막을 수 없어 보인다. 중요한 건 방향이다. 장르의 대중적 저변이 넓어지고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희망 편이라면, 장르 유망주를 불쏘시개 삼아 활활 시청률의 불만 밝히고 사라지는 화전민이 되는 건 절망 편이다. 과거의 <쇼 미 더 머니>가 그러했듯, 장르가 노출되거나 음악인이 대중을 만날 창구가 부족한 상황에서 경연 프로그램은 상당한 대의를 확보한다. 대의는 양날의 검이다. 음악인들의 생존을 함께 고민할 수 있지만, 생존을 빌미로 실존을 무시할 수도 있다. <팬텀싱어> <슈퍼밴드> <싱어게인>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JTBC 음악 경연 예능은 그런 면에서 상당히 조심스러운 편이며 <풍류대장>도 비슷한 정서를 유지한다. 심사위원의 독설이나 불필요한 갈등 유발은 거의 없고, 각 팀의 무대 연출에 상당히 공을 들이고 합격 여부와 별개로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충분히 인정해준다. 심사위원 이적은 의외의 탈락을 한 고래야를 향해 크로스오버라는 프로그램 기준과 어긋날 뿐 멤버 각각이 훌륭한 음악가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해준다. 하지만 이 발언은 참가자에 대한 존중과 함께, 정합적으로만 보이던 이 프로그램의 어떤 구멍을 드러낸다. 크로스오버라는 기준은 국악을 바탕으로 한 지금 이곳에서의 대중적 시도들을 평가하기에 가장 적절한 기준 혹은 개념인가. 앞서 말한 최예림의 무대는 분명 인상적인 크로스오버였지만, 크로스오버라는 개념만으로 그 무대의 스웨그가 온전히 설명될 수 있는가.

국악 크로스오버 경연 나온 최예림
에미넴의 ‘Lose Yourself’ 편곡
직접 쓴 랩 가사로 ‘분노의 사자후’
완곡 버전 온라인 공개돼 큰 호평
작창·랩을 결합한 신동재도 주목

우리 소리 대중화에 목표 둔 기획
퓨전 너머 대중들 취향 자극하는
‘제2의 이날치’가 등장할 지 눈길

장르 저변 확대 순기능 기대되지만
생존 빌미로 실존 무시하게 될지도
훗날 몇몇 파격 무대만 기억 남을까
숨은 명곡 찾아듣는 ‘팬덤’ 부를까

국악의 대중화라는 <풍류대장>의 기획에 있어 크로스오버나 퓨전이란 개념보다 더 적절한 건 ‘컨템퍼러리’, 즉 동시대성처럼 보인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제2의 이날치를 발굴하는 것이라 해도 그러하다. 이날치는 크로스오버를 해서가 아니라, 크로스오버를 통해 지금 이곳의 대중의 취향을 자극했기에 스타가 될 수 있었다. 씽씽의 이희문은 2019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당시(조선 시대)에도 예술 하는 사람들은 자유로운 영혼이라 자기 스타일대로 놀았죠. (중략) 그게 지금 경기 민요를 내 맘대로 비트는 명분”이라 말하기도 했지만, 과거의 소리꾼은 전통의 담지자가 아닌 그 시대의 컨템퍼러리로서 존재했다. 그들이 현대에 와서 다시 대중을 향해 노래한다면 상당 부분 현대 대중음악의 방법론을 취하겠지만 그것이 꼭 누구나 알 만한 인기 가요와 과격하게 매시업(mashup)하는 방식만은 아닐 것이다. 이번 주 진행된 2라운드에서 한영애의 ‘조율’에 맞춘 신동재의 무대가 좋았던 건 본인이 만든 작창 파트에서 코로나 시국에 힘들어하는 지금 대중의 이야기를 마치 과거 소리꾼이 그 시절 대중 이야기를 하듯 풀어냈기 때문이다. 크로스오버보다 우선하는 건 동시대적 맥락의 공유다. 우리가 같은 시대를 함께하고 있다는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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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풍류대장> 참가자 신동재는 작창과 랩을 결합한 형태의 공연에서 국악인으로써 주위 사람들의 우려 혹은 참견을 가사에 담아냈다. JTBC <풍류대장>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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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지금까지의 <풍류대장>은 앞서 말한 거의 모든 이유로 상당히 잘 만든 음악 경연 예능이다. 엘리트 코스를 거친 참가자들의 기본 실력 자체가 뛰어나기도 하거니와 크로스오버라는 방법론을 통해 대중과의 접점을 늘려나간다는 기획의도를 제작진이 진지하게 실행 중이라는 것도 알겠다. 그러니 국악 예능 절망 편이 기다리고 있진 않을 듯하다. 물론 희망 편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지금껏 수많은 경연 프로그램이 화제가 됐지만 경연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과 해당 장르 생태계의 성장은 비례하지 않았던 경험이 더 많다. <풍류대장>이 끝났을 때 크로스오버라는 이름으로 시도된 몇몇 파격적 무대의 기억과 일부 인기 출연자 위주의 행사 기회만을 남길지, 정가와 민요와 판소리 등 다양한 국악 내 장르 안에서 자기 스타일을 골라 새로운 팀을 찾아 들을 청중 집단이 등장할지 아직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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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위근우


<풍류대장>은 후자에 필요한 동시대적 경험의 순간을 자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어쨌든 종사자가 “국악 하면 먹고살기 힘들고/ 춥고 배고픈 게 아티스트고/ 돈을 밝히면 속물이고/ 그 말에 속아 넘어가고/ 소리 없는 검은 속물의 조언”(최예림, ‘Lose Yourself’)이라 외친다면 뭔가는 좀 달라져야 할 테니.

칼럼니스트 위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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