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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fn사설] 겉핥기에 그친 비정규직 제로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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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1일 콜센터 비정규직 1600명을 '소속기관'을 세워 고용하기로 했다. 민주노총이 대규모 집회를 예고한 지난 7월 23일 강원 원주시 건강보험공단본부 주변에서 경찰이 집회 장소로 접근하는 노조원을 막아서고 있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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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콜센터 비정규직 1600명을 '소속기관'을 세워 고용하기로 했다. 문재인정부의 트레이드마크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일환이다. 소속기관 고용은 건보공단이 첫 사례다. 앞서 작년 여름 인천국제공항공사는 보안검색 직원 1900명을 직접고용했다. 한국도로공사는 자회사 고용과 직고용을 병행했다. '소속기관'은 건보공단과 동일법인이다. 이때문에 소속기관 고용은 사실상 직고용에 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건보공단 소속기관으론 일산병원, 서울요양원 등이 있다.

비정규직 범람은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 임금, 고용 등에서 비정규직은 2등 국민 취급을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득 양극화도 뿌리를 캐면 비정규직 문제에 닿는다. 문 대통령은 4년 전 정부 출범 직후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캐치프레이즈에 잘 어울린다.

하지만 실행 과정에서 이 정책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먼저 해당 공기업의 정규직이 반발했다. 공기업은 누구나 선망하는 직장이다. 그만큼 입사 경쟁이 치열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이런 절차를 건너뛰었다. 정규직 노조가 로또 채용이라고 반발하는 이유다. 공기업 취업을 목표로 몇 년씩 공부하는 젊은이들은 불공정을 문제 삼았다. 지난해 여름 불거진 이른바 인국공 사태도 불공정 논란이 불을 붙였다. 정규직이 급증하면 신규채용이 줄 수밖에 없다는 점도 취준생들을 자극했다. 청년들은 올봄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분노를 표출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으로 비정규직이 줄었을까. 아니다. 왜 그럴까. 비정규직이 생기는 근본 원인을 방치했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은 노동시장의 이중성에 있다. 대기업·공기업 정규직 노조는 안락한 성(城) 안에 둥지를 틀었다. 성은 해고무풍지대다. 이들은 나이가 벼슬인 연공급제 아래서 고소득을 누린다. 이런 노동귀족이 많아질수록 성 밖엔 비정규직이 득실댄다.

이 구조를 깨려면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을 허물어야 한다. 그래야 정규직으로 들어가는 문이 더 열린다. 서강대 이철승 교수는 연공급제 폐지를 그 출발점으로 본다('불평등의 세대'). 연공급제 아래서 기업은 인건비의 대부분을 정규직에 할당할 수밖에 없다. 연공급제 대신 직무급제를 도입해야 정규직·비정규직을 가르는 장벽이 낮아진다. 직무급제는 업무, 숙련도 등에 따라 임금을 지급한다.

건보공단 콜센터 비정규직 1600명에게 정규직 전환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 안에 끼지 못한 대다수 비정규직들은 더 괴롭다. 공공·민간을 떠나 비정규직 양산을 막는 근본대책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정부가 할 일이다. 그러자면 기득권 노조와 한판 붙을 각오를 다져야 한다. 지금과 같은 겉핥기식 비정규직 정책만으론 비정규직 범람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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