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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위성에서 우주발사체 사업으로…“체격 커져 유아옷 벗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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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성공’ 누리호 발사 의미와 전망]

설계부터 발사까지 전주기 독자기술 확보

실용위성 발사능력 보유 7번째 국가 눈앞

“뭐든 우주에 보낼 운송수단 확보” 의미

우주개발 새 30년 도약 준비 이정표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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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21일 오후 5시 정각에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2발사대에서 발사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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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한국형발사체 누리호의 발사가 100% 성공 눈앞에서 멈췄지만, 1990년대 초 시작한 30년 우주 연구개발의 총결산이라는 의미가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원하는 궤도까지 무사히 비행한 누리호는 우리나라 우주과학이 앞으로 30년의 도약을 준비해야 하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과학계는 우리나라 우주개발이 누리호 이전과 이후로 갈릴 것이라고 말한다. 김승조 서울대 명예교수(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는 “기술목표는 낮게 세우면 그 이상 결과가 나올 수 없다. 좀더 도전적인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주청 같은 지속가능한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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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전 7시20분 누리호가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조립동에서 2발사대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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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위성 발사능력 증명


누리호 발사의 가장 큰 의미는 설계, 제작, 시험, 발사, 운용 등 발사체 전 주기에 걸쳐 독자기술을 확보했다는 데 있다. 2013년 1월30일 발사에 성공한 나로호의 경우 1단 로켓을 러시아에서 구입해 썼다. 또 나로호는 100㎏의 소형위성을 탑재하는 데 그쳤다.

우주기술은 자체 개발도 어렵고 기술 수입도 안 된다. 2009년 나로호 1차 발사가 페어링 분리 오작동으로 정상 비행을 하지 못했음에도 2조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한국형발사체 사업을 시작한 이유다. 누리호처럼 원하는 궤도에 원하는 탑재체를 운송할 수 있는 독자적인 우주 전략기술을 가진 나라는 9개국밖에 없다. 특히 75톤 엔진 4개를 묶어 300톤급 중대형 액체로켓엔진을 비행까지 입증한 세계 7번째 국가로 발돋움했다.

우리나라는 50∼60년대부터 확보한 우주기술을 기반으로 경쟁력을 다져온 우주 선진국보다는 늦었지만, 1993년 1단형 고체추진 과학로켓(KSR-Ⅰ)을 처음 개발한 이래 꾸준히 기술력을 키워왔다. 2013년 140톤급 나로호 발사에 성공하고 8년 만에 300톤급 누리호 발사를 이뤄냈는데 300t급 발사체 개발에 평균 7년 정도 걸렸던 우주 선진국들에 비하면 우리의 기술 경쟁력이 결코 뒤지지 않는 셈이다.

정부는 누리호 발사로 확인된 발사체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해 내년 5월 한 차례 더 발사를 계획하고 있다. 또 내년부터 6년 동안 6800억여원을 투입해 누리호를 4차례 추가로 발사하는 고도화사업을 벌인다. 2022년말께 예정된 누리호 3차 발사 때 탑재될 차세대소형위성 2호를 개발하고 있는 장태성 카이스트 책임연구원은 “기술적 신뢰도 확보를 위해 반복 발사가 필요하다”며 “2024년 4차 발사 때는 차세대중형위성 3호와 초소형위성 1호, 2026년 5차와 2027년 6차 때는 초소형위성 5∼6기씩을 싣고 발사될 예정이어서 다중 위성 발사 기술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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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산업 생태계 활성화 밑거름


우리나라 우주개발은 1992년 8월11일(한국시각)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의 쿠루 발사장에서 최초로 발사된 인공위성 ‘우리별 1호’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위성 위주의 우주산업이 발달했지만 누리호 발사를 계기로 발사체 관련 산업의 발전이 예상된다.

누리호 개발에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두원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을 비롯한 300여개 중소기업이 참여했다. 이들은 국산 로켓에 필요한 핵심 부품을 개발하고 직접 제작하며 독자기술을 쌓아왔다. 500여명의 기업 인력이 투입되며 발사체 분야에서 상당한 기술력을 확보했다. 누리호 전체 사업비 2조원의 약 80%인 1조5천억원이 산업체에 투자됐다. 나로호 개발 당시 산업체 투자액 1775억원에 비하면 8배가 넘는 액수다.

임종빈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 정책연구1팀장은 “누리호 반복 발사를 통해 우리 발사체의 경쟁력을 대외적으로 알려 발사체 시장에 진출하고, 세계적 추세인 소형위성 발사를 위한 소형발사체 개발도 민간 우주기업을 중심으로 좀더 활성화할 수 있는 우주산업 생태계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노스페이스와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등 국내 스타트업 기업들은 소형발사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노스페이스는 하이브리드 로켓기술을,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는 메탄엔진 기반의 소형발사체를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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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 비행 상상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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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우주전략 기획·운영 주체 다듬어야


우주기술은 국제적으로 기술 이전이나 정보 공유가 제한된다. 발사체 기술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 보면 이중 용도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누리호의 성공적인 운용을 통해 우리나라는 발사체라는 안보자산뿐만 아니라 또 다른 안보자산인 위성의 발사 운용 능력을 확보하게 됐다. 고정환 항우연 한국형발사체개발본부장은 “무엇보다도 우주발사체가 하나 생겼다는 것, 무엇이든지 우주에 실어나를 수 있는 운송수단을 확보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누리호는 국가의 과학기술 능력, 경제적 역량을 대외적으로 공표할 수 있는 호재다. 하지만 우주발사체의 경제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경제성이 없다면 발사체 기술 개발을 어떤 논리로 끌고 갈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국가 차원에서 우주개발 육성을 끌고 간다면 누가 할 것인지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한다. 이창진 건국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우주 경쟁력을 지속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기획·운영 구조 체계(거버넌스)를 바꿔야 한다. 체격이 커졌으면 유아용 옷은 벗어야 한다. 아직 연구개발 차원에서 보는 시각이 있어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흥(나로우주센터)/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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