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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때 형제복지원…12년간 513명 죽었는데 '징역 2년6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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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은 기자]
머니투데이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3'/사진제공=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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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에서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형제복지원에 잡혀간 무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21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3'에서는 이야기꾼 MC 장도연, 장성규, 장현성이 그룹 SG워너비 이석훈, 가수 전소미, 영화감독 장항준에게 '1987 인간청소'를 주제로 '형제복지원'에 끌려간 아이들 이야기를 전했다.

1982년 9월 리어카 행상이었던 정씨의 아들 정연웅 군이 실종됐다. 그는 학교에서 공부도 잘 하고, 암투병 중인 어머니를 손수 병간호하던 착한 아들이었다.

정연웅 군이 연탄가게 형을 따라간 후 실종된 가운데, 가족들이 신고를 하자 경찰은 동네 형이랑 함께 갔으면 가출이라며 그를 찾는 것을 도와주지 않았다.

그러나 40년 만에 찾게 된 정연웅 씨는 "4년 7개월 정도 갇혀 있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연탄가게 형과 함께 부산역으로 놀러 간 후 한 남자에게 납치돼 사라지게 됐다.

1년 후, 이번에는 7살 혜율이와 남동생이 동시에 실종됐다. 대전에 살고 있는 엄마를 만나기 위해 기차에 올라탄 후 그대로 사라졌던 것.

두 사건 모두 부산역에서 한 남자를 만난 후에 납치됐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정연웅 씨는 자신들에게 다가온 남자의 정체는 경찰이었고, 경찰을 따라 부산역 파출소에 갔다가 냉동 탑차에 실렸다고 밝혔다. 그는 그길로 '한국판 아우슈비츠'라고 불렸던 형제복지원으로 향하게 됐다.

산비탈에 지어진 감옥 같은 요새에서 아이들은 매를 맞으며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야 했고, 어른들은 건물을 지었다. 아이들은 죄수처럼 이름 대신 번호를 달았고 장난감, 신발, 장롱, 자물쇠 등을 만들었다.

그 곳은 거대한 공장이자 강제 노역소였다. 수십 채의 건물들을 5미터 높이의 담벼락이 둘러싸고 있었고 몽둥이를 든 경비원이 있었다.

정연웅 씨는 형제복지원에서는 밤만 되면 여자와 남자아이들이 성폭행 당했다고 밝히며, 그 당시 충격이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형제복지원에 끌려온 사람들의 공통점은 부랑인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부랑인의 기준은 열차에서 졸다가 종점까지 가거나 역에서 TV를 본 적이 있거나, 야외에서 술을 마시거나 면도를 안 해서 수염이 덥수룩한 채로 거리를 다니면 해당될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연웅 씨는 당시 아버지와 다시 만나길 간절히 기대하다가 2년 후, 형제복지원 안에서 파란 체육복을 입은 아버지와 재회하게 됐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실종된 아들을 찾다 형제복지원에 끌려왔던 것.

정연웅 씨 부자의 비극적인 사연에 이야기를 듣던 전소미는 "전혀 반갑거나 좋지 않았을 것 같다. 차라리 여기서 안 만났으면 할 것 같다"며 눈물을 보였다.

정연웅 씨는 "아버지가 나를 만나 부끄럽지 않겠나. 좀 마음이 이상했다"며 차마 아버지를 아는 척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며칠 후 정연웅 씨의 아버지는 감시를 피해 명절에 나왔던 딱딱하게 굳은 시루떡을 아들 손에 쥐여줬고 정연웅씨는 "맛있게 먹었다. 철이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하다 오열했다.

정연웅 씨는 잡혀온 지 4년 만에 탈출에 성공했지만 주민들의 신고로 다시 형제복지원에 잡혀가게 됐다.

형제복지원의 실체는 김용원 검사의 추적으로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그는 1986년 12월, 산에서 꿩을 사냥하다가 울산의 깊은 산속에서 공사를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를 수상히 여긴 그는 다음날 사진을 찍고 추적을 시작했다.

공사하는 사람들 옆에 셰퍼드 개가 13마리나 있고, 손에 몽둥이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을 미행한 김용원 검사는 사람들의 발을 쇠사슬로 묶고 축사 같은 곳에 가둔 것을 목격했다.

김용원 검사가 목격한 장면은 형제복지원 168명이 6개월째 막노동을 하는 현장이었다. 형제복지원은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8759평으로 축구장의 4배 크기였고 수용인원은 3164명, 이 중 미성년자는 900명이었다.

형제복지원 안에서 발견된 철제 금고에서는 미화 5000달러, 일본 화폐 546만엔, 통장 30개가 발견됐다. 발견된 금액만 1986년 기준 총 20억원이었다.

그러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하던 박 원장은 88 서울올림픽을 앞둔 상황에서 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제대로 된 처벌을 피해갔다.

박 원장은 "전두환에게 훈장과 표창을 받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며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정부는 형제복지원 홍보 영화까지 만들어준 것으로 드러났다.

군인 출신이었던 박 원장은 부랑인을 데려와 인건비를 주지 않고 일을 시키면 돈이 된다고 생각해 형제복지원을 세웠다.

1981년 88 서울올림픽이 결정되면서 전두환 대통령이 환경 미화 작업의 일환으로 부랑인들을 잡아들이고 '인간 청소'를 하라고 지시했던 것도 형제복지원이 탄생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형제복지원에서는 12년 동안 513명이 사망했지만 형제복지원 측은 자연사를 주장했다.

김용원 검사는 박 원장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려 했으나 당시 부산시장에게 전화가 와 박 원장을 풀어주라고 했고 검찰 상부에서는 횡령액을 7억원 이하로 줄이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결국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터지면서 형제복지원 부산 본원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박 원장은 울산 공사현장 특수감금과 횡령죄로만 기소가 됐다. 박 원장은 최종판결에서 횡령죄 일부만 인정돼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벌금은 0원이었다.

박 원장은 출소 이후 또 복지시설을 열어 장애인, 정신질환자를 수용하며 국가예산을 계속 받았으며 온천, 스포츠센터, 대규모 골프장 등을 열기도 했다. 박 원장은 제대로 된 처벌을 끝까지 받지 않고 2016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당시 아이였던 피해자들이 어른이 돼 스스로 증거를 모으고 목소리를 낸 끝에 현재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 1호 사건으로 조사가 진행 중이다.

한편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매주 목요일 오후 10시 35분에 방송된다.

이은 기자 iame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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