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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기재부가 거머쥔 한국은행 임금인상률…헌법상 '노동권' 침해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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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작년 최대실적에도 물가 감안한 실질 임금상승률 '마이너스'

"한은 임금인상률, 기재부가 결정"…학계 "기재부 관행 바뀌어야"

뉴스1

2020.12.1/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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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성은 기자 = 기획재정부가 독립기관인 한국은행 임직원들의 임금을 결정하는 관행이 매년 이어지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관행이 한국은행법의 본래 취지에 반하는 데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권마저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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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준 의원 © 뉴스1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연도별 임금인상률'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까지 한은의 임금인상률은 매년 0~2%대를 기록했다. 2018년 1.6%였던 임금인상률은 이듬해인 2019년 0.8%로 대폭 깎였다가 2020년에는 2.7%로 올랐다. 올해에는 0.7%로 임금인상률이 다시 0%대로 낮아졌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한은의 실질 임금인상률을 계산하면 이보다 한층 낮아진다. 2018년 임금인상률에서 물가상승률(1.5%)을 빼면 실질적인 임금인상률은 0.1%에 불과하다. 이런 식으로 계산해보면 2019년 실질 임금인상률은 0.4%이며 2020년에도 2.2% 수준에 불과하다. 한은의 2021년 연간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2.1%이므로, 이를 임금인상률에 적용하면 -1.4%라는 결과가 나온다. 물가를 감안하면 월급이 깎인 셈이다.

특히나 지난해는 한은이 1950년 설립 이래 최대 실적을 낸 해였다. 2020년 한은의 당기순이익은 7조3659억원으로 전년(5조3131억원)에 비해 38.6% 급증했다.

물론 한은은 통화신용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기 위해 설립된 '무자본 특수법인'이라 순이익을 내더라도 회사에 모두 쌓아두는 것은 아니다. 법정적립금과 기금 출연 등을 제외한 나머지는 정부에 모두 세입으로 납부한다. 지난해 정부에 납부한 금액만 5조1220억원이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대부분은 정부 곳간을 채우는데 쓴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임금이 오르기는커녕 물가조차 못 따라가는 수준으로 임금인상률이 결정되다 보니 한은 내부에선 침체된 분위기가 역력하게 감지된다. 한은의 한 직원은 "매년 임금인상률이 지나치게 낮아 직원들 불만이 계속 커지고 있다"며 "금융사나 증권사로 이직하면 한은보다 훨씬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어 우수 인재들이 유출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는 기획재정부가 한은의 임금인상률을 정하는 관행이 굳어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한은이 공공기관은 아니지만 공적인 업무를 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공공기관과 금융공기관의 임금인상률을 참고해 한은의 임금인상률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한국은행법을 근거로 든다. 한국은행법 제98조의 Δ1항 "한은의 매 회계연도 예산은 금융통화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확정한다" Δ2항 "한은은 제1항의 예산 중 급여성 경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예산에 대해서는 미리 기재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Δ3항 "한은은 해당 회계연도 개시 60일 전까지 기획재정부장관에게 제2항에 따른 예산의 예산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규정을 토대로 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결정된 한은 임금인상률은 기재부를 포함한 정부 공무원보다도 낮았다. 공무원 임금인상률은 2018년 2.6% → 2019년 1.8% → 2020년 2.8% → 2021년 0.9%로 한은보다 매해 0.1~1.0%포인트(p) 높게 책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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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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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기재부와 한은 노조 간 논의는 없었다는 게 기재부와 한은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한은 관계자는 "기재부가 최종적으로 임금인상률을 정해서 내려주면 한은 노사 간 협의는 이러한 인상률에 맞춰 직원들에게 어떻게 분배할 지에 대해서만 이뤄진다"면서 "기재부와 노조 간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데다 노사 협상마저 큰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학계는 헌법이 보장한 '노동권' 침해 가능성을 제기한다. 헌법 제33조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한은은 물론 공공기관 직원들에게 이러한 기본권이 지켜지지 않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지나친 관여와 규제로 인해 공공부문의 단체교섭에 사실상 의미가 없어진 탓이다.

권혁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법상 단체교섭이나 협상은 근로계약을 맺은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하는 것이 맞지만, 기재부가 예산을 내려준다면 한은 노조가 기재부와 함께 공동교섭을 해야 실질적인 협상이 가능할 것"이라며 "이는 한은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에 모두 적용되는 것으로 공공부문에 대한 공동교섭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근본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아울러 "한국은행법 제98조는 원칙적으로 한은 내부의 임금인상률 결정을 거쳐 기재부가 이를 승인을 하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에 만일 기재부가 임금인상률을 통보하는 관행이 있다면 바뀌어야 한다"며 "노동 3권의 단체교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헌법적 요구와 한국은행법이 상충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se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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