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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배추가 주저앉는다…중부지방 중심 무름병 등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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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괴산, 강원 춘천 등 주산지 상황 심각

농진청, 중부 10%, 해남 5~6%, 전북·경남 2~3% 피해

농민 “이상고온 등 자연재해 보상해야”…농림부 “좀 더 살펴봐야”


한겨레

충북 청주시 미원면 장영철씨 부부가 21일 무름병 등으로 녹아내린 배추밭에서 한숨을 쉬고 있다.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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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을 열흘 남짓 앞둔 배추가 주저앉고 있다. 충청·강원 등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무름병·바이러스·냉해 등이 겹치면서 배춧잎이 이내 마르고, 밑동이 물러져 흐물흐물 녹는 현상이 번진다.

21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운교리 배추 들녘은 온통 ‘단풍밭’이다. 여느 해 이맘때 밭을 덮은 무성한 배추는 간데 없고 무름병으로 녹아 메마른 배추가 두둑에 간당간당 몸을 지탱하고 있다. 이미 녹고, 쪼그라들어 속이 야구공만해진 배추도 수두룩하다.

“30여년 배추 농사지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야. 건질 게 한 개도 없어. 완전히 망했어.” 이 마을 토박이 장영철(78)씨의 말이다. 장씨는 지난 8월8일 문전옥답 1만㎡(3천여평)에 배추를 심었지만 한 포기도 수확하지 못했다. “농약·비료·품삯 등 헛돈만 쓰고 빚더미에 올라앉게 됐어. 배추는 물러 사그라지고, 내 속은 타들어 가.”

이웃 신창수(65)씨의 드넓은 배추밭 2만4750㎡(7500평)도 마찬가지다. 푸른색보다 누런 배추가 훨씬 더 많다. “간신히 서 있기는 한데 70~80%는 손 못 댈 정도야. 계약한 김치 공장에서 계약금 돌려달라는데….” 1㎞ 남짓 떨어진 곳에서 배추를 수확하던 이병래(57)씨는 “이상기후로 무름병에 바이러스, 냉해까지 와서 수확은 예년의 절반”이라고 푸념했다.

가을배추 산지인 청주 미원은 올해 배추 275㏊를 심었는데 무름병·바이러스 등으로 110㏊(40%)에서 피해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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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미원면 이병래씨가 병해가 난 배추를 가리키고 있다.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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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임배추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이웃 괴산도 피해가 확산한다. 20일까지 군 전체 배추 재배 면적(598㏊)의 33%인 199㏊에서 무름병 등 피해가 났다. 청천면은 124㏊ 가운데 절반가량인 59㏊(48%)에서 절단이 났다. 황달성 괴산군 원예특작팀장은 “괴산 전역에서 무름병 등 피해가 났고, 더 늘 것으로 보인다. 배추 비상 상태”라고 말했다. 충남 아산·홍성 등에서도 무름병 피해가 확인된다. 신성창 한살림 농산팀 지역 담당은 “김장용 절임배추 등 배추 수급 차질이 예상된다. 전국에서 배추를 찾고 있는데 쉽지 않다”고 밝혔다.

가을배추 산지 강원도 심각하다. 춘천시 서면은 배추밭 150㏊ 가운데 135㏊(90%)에서 크고 작은 병해가 났으며, 절반인 75㏊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 지역 농민들은 “띄엄띄엄 병에 안 걸린 배추가 있을 정도다. 배추 1망(3포기) 가격도 2000~3000원 수준으로 평년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전국 겨울 배추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전남 해남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지난달 초부터 4752㏊를 심어 10여일 뒤 절임배추를 본격적으로 출하하는데, 일부 지역에서만 무름병이 나타났다. 김미연 해남군 원예특작팀장은 “이달 초순 기온이 30도까지 올라가 무름병 등이 나타났지만 중순에 날씨가 다시 차가워지면서 잦아들었다”고 전했다.

무름병 등 배추 괴질을 부른 것은 이상기후 때문이다. 고창호 농촌진흥청 기술보급과 지도관은 “배추를 심은 9월 이후 평년에 견줘 기온이 3~4도 정도 높았고, 잦은 비로 습도가 높아지면서 세균성 무름병 등이 확산했다. 전국 29곳의 배추 관찰포를 살폈더니, 충남·북 등 중부는 10% 이상, 해남은 5~6%, 전북·경남 등 2~3% 정도 피해가 확인됐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기상이변에 따른 자연재해인 만큼 정부가 나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청주·괴산·단양 등 충북지역 배추 재배 농민은 20일 충북도청 앞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다. 김희상 전국배추생산자협회 사무총장은 “기상이변으로 무름병·바이러스·냉해가 한꺼번에 오면서 배추 피해가 확산한다. 정부가 피해 원인·면적을 조사한 뒤 적절하게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학철 농림축산식품부 재해보험정책과 주무관은 “자치단체에서 피해를 인식하고 파악하는 것으로 안다. 재해로 피해가 났다는 것이 명확하게 인정돼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선 재해로 보기엔 이르다는 판단이다. 좀 더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해남·청주·춘천/안관옥·박수혁·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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