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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임채운의 혁신성장 이야기] 플랫폼 기업이 돈만 내면 상생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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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이투데이

빅테크 플랫폼 기업의 전방위 사업 확장에 대한 저항과 반발이 거세다. 영세 소상공인과의 갈등이 고조되며 골목상권 침탈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비판적 여론이 높아지자 정치권에서는 플랫폼 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회에서는 올해 국정감사에 카카오 이사회 김범수 의장을 비롯한 플랫폼 기업의 경영자를 대거 증인석에 세워 소상공인 보호와 쇄신을 요구하였다.

이런 비판에 직면하여 카카오는 3000억 원 규모의 상생기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더불어, 택시 노조 및 운송업계와 상생협약을 맺어 카카오 모빌리티의 스마트 호출을 비롯한 주요 서비스를 대거 중단하고 무리한 확장에 나서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카카오가 발표한 골목상권과의 상생 노력에 대하여 전문가와 소상공인들은 진정성이 결여된 임시방편이라고 지적한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카카오의 상생안이 “면피용에 불과하다”라는 혹평을 내놓았다. 카카오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상생을 이행할 것인지 밝히지 않고 일방적으로 돈만 내놓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카카오와 김범수 의장에 대한 제재 절차를 밟고 있는데 이를 일시적으로 모면하기 위한 위기 회피용 대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과거에 네이버도 부동산 서비스업에 진입했다가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고 골목상권 침해로 인한 반감을 사서 철수한 적이 있다. 당시 네이버는 공정위의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소상공인과 상생한다는 명분으로 500억 원을 출연하여 ‘중소상공인 희망재단’을 설립했다. 그러나 재단의 운영이나 사업은 네이버의 산하단체처럼 움직이고 있다. 상생기금을 이용해 빌딩을 매입하고 운영비를 지출하며 사회공헌 사업도 수행하고 있다. 홈페이지 공지사항에는 입주사 모집과 대관 안내 두 개만 달랑 올라와 있다. 지금까지 소상공인과의 상생협력에 얼마가 투입되었고 어떤 성과가 나오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카카오는 3000억 원을 출연하면서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여 상생할 것인지에 관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내놓지 않았다. 그래서 카카오도 네이버와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심을 받는다.

골목상권 침탈 논란이 야기될 때마다 상생기금을 출연하여 모면하는 관행이 생긴 것은 동의의결 제도 덕분이다. 동의의결(同意議決, Consent Decree)은 불공정행위의 혐의를 받는 사업자가 스스로 거래 상대방의 피해 구제 방안을 제시하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사건을 종결시키고 제재를 면해 주는 제도이다. 동의의결은 미국에서 처음 도입되었고 지금은 일본, 독일 등의 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당시 미국 측의 요구로 2011년 11월에 이 제도를 도입하였고 2013년 11월 네이버에 최초로 적용하였다.

동의의결 제도는 공정거래 위반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하여 조사 및 심의에 투입되는 행정력을 절약하고, 피해에 대한 실질적 보전이 이루어지도록 하여 법적 처벌보다 경제적·사회적 기여를 유도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가해기업이 제안한 시정방안의 사후 점검장치가 없어 기회주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단점도 나타난다. 애플코리아의 경우 2021년 2월 공정위에 1000억 원 규모의 동의의결안을 신청하여 제재가 면해진 이후에도 불공정행위를 중지하지 않았을뿐더러 스스로 제안한 시정방안을 이행하지 않는 도덕적 해이를 저질렀다.

동의의결 제도의 자진 시정조치를 이행하게 만드는 담보 장치가 없으므로 가해기업은 일단 상생기금을 낸다고 하여 제재를 모면하고 그 이후에는 기금을 임의로 사용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남용하는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공정위도 이런 허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동의의결에 따른 시정계획의 이행 여부를 공정거래조정원이나 소비자보호원과 같은 기관이 점검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였다. 동의의결 이행을 사후적으로 관리하여 자진 시정조치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는 개선방안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사후 이행 정도를 점검하는 일은 쉽지 않을뿐더러 행정력을 절약하고 처벌보다 책임을 강조하는 동의의결의 취지에 어긋난다.

플랫폼 기업이 과징금 대신에 내놓는 상생기금을 효율적이며 실효성있게 운영하는 방안은 자체적인 재단 설립보다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의 상생협력기금에 출연하여 투명하게 소기의 목적에 맞도록 집행하는 것이다. ‘상생협력법’에 따라 대기업의 중소기업 상생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2011년에 출범한 상생협력기금은 2021년 6월 말까지 285개사의 대기업이 출연한 1조5502억 원을 운용하며 21만1774개사의 중소기업을 지원해 주고 있다. 최근에 농어업 분야의 상생기금도 관리하고 있어 골목상권 소상공인 상생기금도 충분히 추가하여 수용할 수 있다. 이처럼 공신력있는 기관의 상생협력기금에 출연하고 지원대상과 용도를 플랫폼 기업이 지정하면 동의의결 제도의 취지를 살리며 이행성을 담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상생기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발적인 상생 노력이며 사회적 책임이다. 플랫폼 기업이 동반위의 행정제재를 두려워하거나 기금의 출연을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책임을 다하고 상생을 실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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