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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지고 실패한 건 '요즘 애들' 아닌 체제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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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헬렌 피터슨 '요즘 애들' 번역 출간
최고 학력 쌓고 제일 적게 버는 밀레니얼 세대 분석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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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그들에게 '기대치는 높고, 직업윤리 수준은 바닥'이라고 꾸짖는다. '온실 속 화초'라고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지 못했다'고도 한다. 정작 그들은 항변한다. '성공'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배웠기에 대학 입학에, 구직에 '성공'하려고 노력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적 지원이나 안전망을 거의 누리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이 일을 전부 해내려고 아등바등하다 신체적·심리적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 버렸다. 미국 밀레니얼 세대(1981년~1996년 출생)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미 온라인매체 버즈피드 기자 출신으로, 스스로를 '나이 든 밀레니얼'이라고 표현하는 앤 헬렌 피터슨은 이들의 번아웃이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요즘 애들'은 그가 2019년에 써 큰 반향을 일으킨 '밀레니얼은 어떻게 번아웃 세대가 되었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계기로 이 세대가 처한 비관적 현실을 진단·분석한 책이다. 한국판에 붙은 '최고 학력을 쌓고 제일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라는 부제에 주제가 집약돼 있다.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가 자각하는 수준 이상으로 암울한 현실을 9개 장(章)으로 나눠 조목조목 짚어낸다.

우선 이들의 유년기 시절 경제적·문화적 상황과 당시 부모 세대가 느낀 압박을 들여다본다. 저자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의 부모뻘인 전후 베이비붐 세대는 자신들이 얼마나 쉽게 모든 걸 손에 넣었는지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존재다. 호황의 혜택을 개인의 자수성가로 받아들이고, 사회적 안전망으로부터 보호받은 점을 간과하고 있다. 저자는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 자기가 3루타를 쳤다고 생각하는 세대"라며 이들을 향한 밀레니얼 세대의 반감도 그대로 드러낸다. '엘리트 중산층' 지위를 바람직한 모델로 설정한 베이비붐 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이 계급 진입·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가르쳤다.

이 같은 '계급 불안'을 앞세운 베이비붐 세대의 교육법에 저자는 '집중 양육'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년기를 신체·정서적 발달의 중요한 시기로 보는 대신 대학 입시를 겨냥한 스펙 쌓는 시기로만 봤다는 설명이다. 집중 양육으로 젊은 세대는 야생에서 배회하는 시간이 줄었다.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가 절제력이나 회복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저자와의 인터뷰에 응한 1996년생 마야는 번아웃을 경험할 때마다 '진작 스스로 다치게 뒀어야지, 이제 와서 남들을 따라가려니 힘들잖아'라는 생각이 든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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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과로가 미덕이 돼 버린 자본주의 체제의 현실이다. 기업들은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 몸집을 줄였고, 아웃소싱과 프리랜서 일자리가 늘었다. 오늘날 고용됐다는 것은 좋은 직업, 안정적 직업, 가족을 빈곤 밖으로 끌어올릴 만큼 임금을 많이 주는 직업을 가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특히 과로를 사랑하는 극단적 사례는 실리콘밸리다. 실리콘밸리의 소위 '파괴적 혁신'은 "안정적 일터와 닮은 것은 뭐든지 없애려는 의지에 달려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우리 삶을 더 쉽게 만들어 주겠다며 등장한 인터넷도 밀레니얼 세대의 번아웃에 영향을 미쳤다. 밀레니얼 세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선택적 노출에 끌려다니며 보여주기식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강박으로 번아웃을 상쇄할 순간마저 빼앗겼다.

청년층의 위기를 사회구조적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주제의식이 완전히 새롭지는 않지만 광범위한 학술 연구와 다양한 인터뷰를 동원해 공감할 대목이 많은 책이다. 지아 톨렌티노의 칼럼, 애나 위너의 '언캐니 밸리' 등 최근 미국에서 주목받는 다른 밀레니얼 세대 작가의 저작물도 적절하게 활용했다.

정책적 아이디어나 행동 요령 등 구체화된 번아웃 극복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한계는 있다. 다만 저자는 출간 목적에 대해 "당신 자신과 당신 주변의 세상을 명료하게 볼 수 있는 렌즈를 제공하려 했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반드시 이렇게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는 인정이자 선언이다. 밀레니얼 세대와 그 다음 세대인 Z세대(1990년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를 더해 MZ세대로 불리는 한국 청년층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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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앤 헬렌 피터슨 지음·박다솜 옮김·알에이치코리아 발행·400쪽·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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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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