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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누리호 발사]韓 우주발사체 개발 역사 '10대 결정적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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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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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KSLV-2)'가 21일 오후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고도 700km에 무사히 올라가 위성 모사체 분리까지 성공했지만 궤도 진입에는 실패해 100% 완벽한 성공은 아니다. 하지만 우주 발사체 자체의 성공은 충분히 입증됐다.

누리호의 개발은 2010년 3월부터 11년 7개월간 1조9572억원을 투자해 공을 들인 결과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 7번째 우주 강국으로 도약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경제력도 부족했지만 미국의 미사일지침 등 강대국들에 밀려 '우주 개발'은 꿈도 못 꾸던 것과는 천양지차다. 한국은 1993년 조그마한 과학로켓으로 시작해 30년 만에 1.5t급 실용 위성을 고도 700km에 쏘아올 릴 수 있는 추력 300t급 우주발사체를 보유하게 됐다. 간단치 않은 과정이었다.

우주발사체 기술은 국가 안보와 직결돼 미국, 일본 등 기존 우주 강대국들이 한국을 무시하며 돈을 준다고 해도 기술 이전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맨바닥'에서 출발한 항우연 기술진은 배울 데가 없어 미국 워싱턴DC 항공우주박물관 같은 곳에 찾아가 전시된 로켓 엔진들을 보며 스케치를 했다고 한다. 맨땅에서 출발해 7대 우주 강국으로 도약한 한국의 30년간 우주 발사체 개발 역사를 10대 결정적 장면으로 살펴 보자.

1. 첫 걸음은 소박했다.

한국은 1993년 6월4일 1단 과학로켓인 KSR-I 발사에 성공해 대한민국 우주발사체의 역사를 시작했다. 1989년 항우연 설립 4년 만의 일이었다. 이후 1997년엔 추력이 두 배로 늘어나고 최고 고도도 4배 높아진 KSR-II 발사에 성공했다. 2002년 국내 최초 액체 추진 로켓인 KSR-III를 성공 발사했다. 비록 8t급의 작은 로켓이었지만 한국은 이를 통해 우주발사체 개발을 위한 기반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다.

2. 제1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 수립

모든 계획은 '꿈'과 목표가 있어야 이뤄질 수 있다. 무엇보다 정부의 사업은 법이 제정되고 이를 시행하기 위한 체계가 갖춰져야 제대로 진행된다. 1990년대 까지만 해도 한국에게 '우주 개발'은 먼 얘기였다. 그러나 1996년 5월 우주개발 중장기 기본계획이 확정됐다. 2005년 5월엔 우주개발진흥법이 제정되면서 제도적 기반이 완성됐다. 특히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6월엔 우주 개발을 위한 원천 기술을 확보했다. 우리 손으로 만든 위성을 독자적 발사체로 발사한다는 원칙을 담아 '제1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을 수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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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로우주센터 탄생

한국 정부는 우주 개발을 독자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전초기지인 '우주센터'를 가진 전세계 13개국 중의 하나다. 2001년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를 최종 부지로 선정해 2009년 준공했다. 우주센터는 단순히 로켓을 세워 놓고 발사만 하면 되는 곳이 아니라 로켓 제작, 실험 등이 진행되는 복합 시설이다. 특히 이번에 누리호 발사를 위해 건설된 제2 발사대는 첨단 기술이 적용됐다. 초고압, 극저온, 청정 기술, 공기내의 수분과 분진 함량 및 크기 등을 엄격히 제한하는 기술, 질소ㆍ헬륨 등을 초고압으로 만들어 내는 기술 등을 국내 독자개발했다. 한국은 2013년 나로호 발사 과정에서 발사대 운용 기술을 완벽히 확보했다.

4. 나로호 발사

2013년 1월 30일은 한국이 우리 땅에서 처음으로 우주 발사체를 쏘아 올린 날이다. 나로호는 기술 습득 위해 러시아와 협력해 제작됐다. 1단부는 러시아가 2단부는 한국에 만들었다. 2번의 실패와 4번의 발사 연기 끝에 결국 성공했습니다. 한국은 나로호 개발과정에서 습득한 기술을 기반으로 누리호 등 독자적 우주발사체 기술 개발에 착수할 수 있었다. 설계부터 제작, 시험 등 우주발사체 개발에 필요한 모든 기술이 나로호 개발을 통해 축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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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누리호 개발 착수.

누리호 개발은 제1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에 따라 2009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해 2010년 3월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가 10년 이상인 데다 보유한 전문 인력 수도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도전해 볼 만 하다"는 결론이 났다. 결국 우리 기술로 1.5t급 실용위성을 700km의 지구 저궤도에 발사할 수 있는 3단 우주발사체 개발에 나섰다.

6. '맨땅'에서 시작한 액체 엔진 개발

로켓의 '심장'인 엔진은 우주 발사체 개발의 핵심이다. 나로호 개발 당시 30t급 액체 엔진 개발 기술을 습득한 항우연 개발진들은 이를 바탕으로 75t 액체 엔진 개발에 착수했다. 그 결과 2016년 5월 1.5초 연소 시험, 2016년 7월 145초 연소 시험에 각각 성공했다. 로켓 엔진은 초당 1000kg의 엄청난 양의 추진제를 공급해 연소시키는 복잡하고 예민하다. 항우연은 회전체를 이용해 추진제의 압력을 높여 고압의 가스를 분출하는 '터보펌프식' 액체엔진 개발을 완수했다. 가장 큰 기술적 난제 연소불안정 현상 극복 위해 10개월간 밤낮없이 매달린 결과다.

7. '지상에 이런 물건 없다' 추진제 탱크 제작 성공.

추진제 탱크는 로켓 구조물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부분이다. 엄청난 무게의 추진제를 견뎌야 하지만 알루미늄 합금의 두께는 2~3mm에 불과하다. 이처럼 얇고 가벼운 소재를 탱크로 사용하는 것은 지상에는 없다. 항우연 개발진들은 용접했다가 불량이 나서 공정 개선 연구를 하고, 다시 또 용접하는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한 끝에 변형을 최소화할 수 있는 특수 용접 공법을 자체 개발해 누리호의 추진제 탱크를 완성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작업은 수작업으로, 도공의 혼을 불어넣어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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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시험 발사체 성공

75t급 엔진 개발을 마친 항우연은 2018년 11월 시험 발사체 발사에 성공하면서 우주 발사체의 '심장'인 로켓 엔진을 마침내 완성했다. 세계 7번째 중형 액체 엔진 개발국이 된 순간이었다. 당시 발사를 앞두고 최종 점검 과정에서 이상이 발견돼 한차례 연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한국이 자체 개발한 우주 로켓은 무사히 하늘로 향했다.

9. 최고 난이도 '클러스터링'도 정복

누리호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어려웠던 부분이다. 목표대로 1.5t 위성을 저궤도에 올릴 수 있으려면 추력 300t의 로켓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려면 75t 엔진 네개를 묶어 300t의 추력을 낼 수 있는 1단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았다. 엔진 4기가 정확한 정렬돼 있어야 하며, 똑같은 추진력을 내야 합니다. 엔진 과열에 대비한 단열기술. 정교한 방향 제어 및 조립도 필수다. 항우연 기술진은 몇차례 시험 연기 등 어려움을 겪었고 이로 인해 1차 발사 일정도 올해 5월에서 10월로 연기됐다. 그러나 2021년 1월 드디어 클러스터링한 1단부 연소 시험에 성공했고 3월까지 3연속 성공하면서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이로써 누리호의 추진 기관의 성능 검증을 모두 마쳤다.

10. 3단형 누리호 등장

지난 6월 1일 나로우주센터에는 3단부가 모두 조립된 누리호가 처음으로 등장해 발사대(엄빌리칼 타워)에 거치됐다. 개발자들에겐 지난 10년간 겪은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순간이었다. 총 37만개의 부품들이 수만시간 동안 극한 조건의 우주 환경 실험을 거쳐 조립돼 마침내 발사를 앞둔 마지막 순간에 이른 것이다. 항우연은 이날 발사대의 기능을 점검하는 인증 시험을 진행했고, 지난 8월 말엔 다시 한 번 누리호를 발사대에 세워 최종 점검 절차인 WDR(Wet Dress Rehearsal)까지 마쳤다. WDR이란 액체 추진제를 주입ㆍ배출하면서 이상 여부를 점검하는 최종 준비 절차다. 신랑 신부가 결혼식 직전에 하는 '웨딩 드레스 리허설'처럼 발사 전에 로켓을 액체 연료로 적셔 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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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II)가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제2발사대에서 화염을 내뿜으며 힘차게 날아오르자 서울역 대합실에서 많은 시민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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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여간 로켓을 개발해 온 항우연 및 민간 업체 개발자들에겐 누리호가 마치 자식과 같을 것이다. 3300도의 누리호 엔진 보다 더 뜨거운 그들의 열정이 마침내 한국을 '우주 독립'의 길로 이끌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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