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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트럼프 만든 남자, 그 등에 칼 꽂았다…극우 배넌 배신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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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한때.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 배넌의 2017년 모습.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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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은 트럼프가 아니라 스티브 배넌인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2017년 2월 뉴욕타임스(NYT)의 사설 제목이다. 갓 취임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던 배넌은 ‘백악관 수석 전략가 겸 고문’이라는 직함을 달고 백악관을 넘어 세계를 호령했다. 외교ㆍ안보 전문가가 아님에도 불구, 당연직으로 국가안보회의(NSC)에 상임 구성원으로 정책을 좌지우지하면서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 직후 발표한 반(反) 이민 정책 등 일련의 모든 정책에 그의 입김이 강하게 서려 있다는 게 워싱턴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NYT와 워싱턴포스트(WP)등 트럼프에 비판적이었던 매체들뿐 아니라 외교전문지인 포린폴리시(FP) 등이 일제히 배넌을 트럼프의 배후로 지목했다. FP는 아예 “배넌 대통령”이라는 명칭을 쓰며 “대단히 파괴적인 인물”이라고 우려했다. NYT는 위의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후) 폭풍과 같은 시간엔 모두 배넌의 흔적이 있다”며 “배넌에게 실권을 줌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 안보마저 정치화한다는 인상”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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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트럼프 취임 직후 핵심 실세들이 백악관 '결단의 책상'에 모여들었다. 맨 뒤에서 문서를 검토하고 있는 이가 배넌.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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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트럼프의 배넌에 대한 신임은 대선 과정에서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으로 만든 팔할은 배넌이다.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배넌은 캠프의 우두머리 역할을 했다. 상대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 대한 네거티브 공격을 주도하며 승기를 잡았다. 그가 이끌었던 극우 성향의 백인 중심 성향의 미디어를 이끌었던 경험을 토대로 대선에서 세몰이를 확실히 했다.

그러나 배넌이 몰랐던 게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와 남편 재러드 쿠슈너와 갈등을 빚으면서 배넌은 무릎을 꿇었다. WP의 베테랑 기자 밥 우드워드는 자신의 책에 “이방카는 백악관 로비에서 배넌에게 ‘내가 누군지 알아? 퍼스트 도터(the First Daughter)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썼다. 이 책은 백악관 사정에 두루 밝은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했고, 그 중 한 명이 배넌이라는 설도 있다. 결국 백악관에서 퇴출된 건 배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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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前) 자칭 퍼스트 도터 이방카와 남편 재러드 쿠슈너.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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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그가 다시 뉴스의 중심에 섰다. 지난 1월6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국 워싱턴DC 의회 건물(캐피톨 힐)을 점거한 테러 사건의 핵심 배후로 조명되면서다. NYT는 19일(현지시간) 트럼프의 열혈 지지자들에게 의회를 공격하라는 신호를 보낸 결정적 인물 중 한 명이 배넌이 확실하다는 뉘앙스로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배넌은 그가 운영하는 라디오 채널에서 의회 테러 전날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공격의 시점에 서있고, 그 시점은 바로 내일이다.”

트럼프의 적수였던 조 바이든의 당선을 의회가 공식화하는 시점을 앞두고 ‘총공격’을 지시한 셈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지지자들을 선동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의회 측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련 기록을 공개해 조사할 것과, 배넌의 의회 청문회 증인 출석 요구를 하고 있다. 둘은 모두 다 응할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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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6일 의회 난동 사태 현장.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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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넌의 이력서는 한 사람의 것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경력으로 차있다. 1970년대엔 미 해군에서 근무했지만 1990년대엔 골드만삭스로 투자은행(IB) 금융맨으로 변신했다. 그러다 할리우드로 건너가 영화 제작자로 십수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그러다 정치적 야심을 드러내면서 우익 매체 브라이트바트를 설립하고, 이후 트럼프와 손을 잡았다.

배넌은 백악관 퇴출 후엔 반(反) 트럼프 노선을 걸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촉즉발 외교안보 정책을 고발하는『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저서에 핵심 증인으로 등장하면서다. 트럼프의 아킬레스 건인 러시아와의 유착설 등을 뒷받침하는 증언을 하며 트럼프의 등에 칼을 꽂는 역할을 자임했다. 트럼프는 “배넌은 미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 트럼프와 배넌의 인연은 이렇듯 주군과 책사에서 막말을 주고 받는 앙숙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이번 미 의회 증인 사태는 불변의 진실을 확인시킨다. 이들의 인연이 선연이든 악연이든, 둘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운명 공동체라는 점이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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