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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광화문]동학개미와 동학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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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박재범 증권부장] #제도는 시대의 산물이다. 뜬금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제도도 따져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다 있다. 그렇다고 그게 현재의 존재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소명을 다했으면 자연스레, 당연히 물러나는 게 맞다. 대선주자들이 폐지 공약을 내 건 증권거래세가 그렇다. '이중 과세' 논란을 잉태한 채 만들어진 게 증권거래세다.

1978년 증권거래세를 만들면서 노림수를 '거래'보다 '소득 과세'에 뒀다. 소득 파악 시스템이 미비했던 상황을 고려할 때 소득 과세 대체 수단으로 거래세를 활용한 셈이다. 이후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가 강화되며 마찰이 발생한다.

국회 예산정책처 예산정책연구에 실린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의 세수 효과' 논문에 따르면 2016년 주식 거래에서 이득을 본 투자자의 1인당 평균 양도이익은 1700만원, 거래세는 90만원이었다. 반면 같은 해 손실을 본 투자자는 1인당 약 1130만원의 손실을 기록하면서 거래세로 120만원을 냈다.

#1994년 증권거래세에 '시대'가 추가된다. 바로 농어촌특별세다. 농특세는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를 계기로 탄생한다. 농수산물 시장 개방이 불가피해지자 정부가 국내 농어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재원 마련용으로 만들어진 세금이다.

고가 주택을 봉하거나(종합부동산세) 주식을 매도할 때(증권거래세), 명품 가방이나 자동차를 살 때(개별소비세), 골프장이나 경마장에 들어갈 때(개별소비세) 농특세를 낸다. 비싸고 사치스런 것을 거래하는 이들에게 농어촌 지원을 맡긴 측면이 강하다. (이들이 시장 개방의 수혜자는 딱히 아니다.)

10년 한시 제도로 도입됐는데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등 시장 추가 개방 때마다 수명이 2번 연장됐다. 일몰이 2024년 6월인데 수명이 30년으로 끝날 것으로 보는 이는 없다. 농어업 경쟁력 강화라는 '목적'의 실현 여부는 언제나 고려 대상이 아니다.

#시장의 불만이 이어지자 정부는 거래세 인하 방침을 세웠다. 지난해 내놓은 '금융세제 선진화 추진 방향'에 따르면 2020년 0.25%인 거래세율이 2021~2022년 0.23%, 2023년 0.15%로 낮아진다.

하지만 시대의 산물, 농특세는 그대로 남는다. 거래세가 사라져도 거래세에 기생하는 농특세는 살아남는 기이한 구조다. 일몰 시한 핑계를 대지만 세수 규모를 보면 당장 포기하기 힘들다.

지난해 농특세는 6조2596억 원으로 전년 대비 2조3617억 원(60.6%) 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중 3조6157억원을 주식시장에서 가져왔다. 급증한 거래대금 덕이다. 지난해 코스피 시장의 거래대금은 2644조원으로 전년(1227조원)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그렇다보니 농어촌특별사업계정 관련 재정지출(총세출)에서 타기금 전출이 60% 이상 차지한다. 농특세가 필요 이상 걷힌다는 의미다.

#본질로 돌아가면 결국 '시대'와 만난다. 30년전 농어촌 지원을 현재까지 부여잡고 있는 게 적절하냐는 문제다. 1970년대 이후 도시로 몰리는 인구를 최소화하기 위해 농어촌 지원을 늘려온 게 사실이다. 여기에 우루과이 라운드, FTA 등 시장개방에 맞춰 자원을 밀어줬다.

이게 2020년까지 정답일 순 없다. 시대 변화에 따른 피해계층, 소외계층은 30년전 농어촌 못지않다. 도시엔 노인 빈곤층과 빈곤 청년이 공존한다. 플랫폼 산업, 혁신 산업의 등장으로 도태되는 이들이 적잖다. 어찌보면 이 '시대'가 바라는 것은 '노인빈곤특별세'나 '청년특별세'가 아닐지.

세금이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한 수단이라면 대한민국에서 농특세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다시 따져봐야 한다. 논의 순서는 '농특세→금융투자소득과세→거래세'로 가는 게 맞다. 정치권 눈치보다가 혹여 동학개미와 동학농민간 싸움이 불거지기 전에 말이다.

머니투데이



박재범 증권부장 swallo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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