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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NOW] 취득세 피하려… 법인이 1억 미만 서민집 쓸어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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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과세 대상 안돼 최근 1년 동안 2만5000채 사들여

10개 부동산 법인이 주택 5431채 매입, 시장 교란시켜

최근 1년간 전국에서 법인이 사들인 주택 중 절반 이상이 ‘공시가 1억원 미만’ 주택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저가 주택은 입지가 떨어지거나 노후화돼 지금껏 투자자들의 관심이 적었지만 이례적으로 수요가 몰린 것이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정부가 지난해 7월 발표한 취득세 중과 조치에서 저가 주택이 제외되자 투자 수요가 그 허점을 파고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일 한국부동산원에서 제출받은 ‘법인 자금조달계획서 심층분석’ 자료에 따르면, 작년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전국에서 법인이 매입한 주택 4만6858가구 중 2만5612가구(54.7%)가 실거래가 1억5000만원 이하였다. 시세 3억원 이하 주택의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반영률)이 68.4%인 점을 감안하면 1억5000만원짜리 주택의 공시가격은 1억원 안팎이다. 공시가격이 1억원보다 낮은 주택을 법인들이 집중적으로 사들였다는 의미다. 전국 공동주택에서 공시가격 1억원 이하 주택의 비율은 30%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 같은 법인의 저가 주택 매수에 대해 “취득세 폭탄을 피하고 투자 수익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정부는 지난해 ‘7·10 대책’을 통해 다주택자와 법인의 주택 취득세를 기존 1~3%에서 최대 12%로 높이기로 했지만, 공시가 1억원 미만 주택은 투기 대상이 될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중과 대상에서 제외하고 세율도 1%로 유지했다. 이 예외 조항을 이용해 부동산 임대·매매 사업자들이 저가 주택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는 것이다.

최근 주택을 사들인 법인은 대부분 실수요보다는 투자 목적인 것으로 해석된다. 천준호 의원실이 집계한 법인의 주택 거래 4만6858건 중 3만6500건(78%)이 부동산 임대 또는 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법인이 매수 주체였다. 매수 건수 상위 10개 법인이 주택 5431가구를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또 주택 매수 자금 중 대출, 임대보증금 등 차입금의 비율이 68%에 달했다. 적은 자기 자본으로 시세 차익을 노리는 것은 전형적인 투자 수법이다. 경기 화성에서 영업 중인 한 공인중개사는 “법인의 경우 공시가 1억원 미만 주택도 종부세 대상이기 때문에 이런 주택에 투자하는 법인은 대부분 1년 이내에 처분해 차익을 실현하려는 단타 수요”라고 전했다.

정부 규제의 빈틈을 이용한 투자는 비단 법인에 그치지 않는다. 다주택자(개인) 양도소득세 중과를 피할 수 있는 공시가격 3억원 미만 주택 역시 최근 거래가 급증했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부와 부동산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작년 7·10 대책 발표 후 올해 9월까지 전국에서 거래된 공시가격 3억원 이하 주택은 90만1372가구로 직전 15개월(74만8140건)보다 20% 늘었다. 정부는 7·10 대책에서 다주택자의 양도세율을 20~30%포인트 올렸지만 지방 중소도시의 공시가 3억원 미만 주택은 예외로 했다.

법인과 다주택자의 매수 수요가 몰리면서 저가 주택 가격도 급등했다. 부산 사하구 ‘도시몰운대그린비치’ 전용면적 49㎡는 작년 6월까지만 해도 월 거래량이 10~20건, 가격은 8000만~9000만원 수준이었지만 올해 7월에는 거래량이 52건으로 늘었고 가격도 1억3200만원까지 뛰었다. 충남 아산시 ‘배방삼정그린코아’는 작년 8월 한 달 동안 6000만원대에 3건 거래된 게 전부였지만 이후 월 거래량이 60~80건으로 크게 늘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전국 전용면적 60㎡ 이하 소형 아파트값은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20% 급등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시중 유동자금과 주택 수요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허술한 규제를 남발하다 보니 투기는 못 막고 서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방의 저가 주택 가격까지 들쑤시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집값을 안정시키려면 수요를 옥죄는 규제보다는 사람들이 집을 팔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미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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