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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단군 이래 최대규모 가계부채…충격 없는 브레이크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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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지뢰’ 가계빚…벼랑 끝에서 ‘부채 축소’ 시험대 올라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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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험요소로 꼽히는 가계부채 문제가 벼랑 끝에서 시험대에 오른다. 금융위원회가 오는 26일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고,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출 환경은 엄격해지고 금리 부담은 높아질 것이 확실시된다. 그간 경기회복세의 부침, 금리의 오르내림 속에서도 줄곧 늘기만 했던 가계부채가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의 길을 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취약계층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지원이 병행돼야 하고, ‘빚투’(빚내서 투자)에 나선 청년세대의 신용위험이 자산가격 변동에 따라 확대되지 않도록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출 규제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정책이 나올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위기에도 늘어난 부채, 축소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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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규모 이미 GDP 추월
기준금리 인상도 본격화 예고
가계 소득 제자리인 게 더 문제

20일 한은 통계를 보면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8년 1분기 69.2%에서 올 1분기 104.7%까지 높아졌다. 가계가 지고 있는 빚이 나라 전체의 경제 규모를 웃돌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한국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도 가계부채가 멈추지 않고 늘었다. 올 2분기 가계대출 규모는 1705조30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코로나19 발생 이후 초저금리와 부동산, 주식 등 자산가격 급등이 맞물리면서 증가율은 더 가팔라졌다. 지난해 연간 가계부채 증가율은 9.2%, 올해 상반기에는 더 가팔라져 올 6월 말 가계부채는 전년 동기 대비 11.3% 증가했다.

이 같은 증가세를 억제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가계부채 증가가 누적될 경우,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고 금융불균형이 쌓이면서 실물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미국이 곧 자산매입 축소(테이퍼링)에 나설 것으로 보이고 한국의 금리 인상도 불가피한데, 이렇게 되면 당장 변동금리 부담이 커지면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한국은 거품이 꺼질 것이 두려우니까 계속해서 폭탄 돌리기처럼 빚을 키워왔는데 지금은 어떻게든 가계부채 증가 흐름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은 지금까지 정책 대응을 통해 가계부채 총량을 축소해본 경험이 없다. 미국, 영국 등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규제를 강화해 부채 총량을 줄였던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의 경우 금융위기 이후 은행이 대출 심사를 강화하고, 가계 역시 상환능력에 맞춰 부채를 줄이면서 디레버리징이 급격히 진행됐다. 미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위기 이전인 2007년 3분기 134.4%로 최고치를 찍은 이후 2013년 1분기 111.6%까지 하락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도 같은 기간 20.9%에서 13.0%까지 떨어졌다.

금융위가 다음주 발표할 가계부채 관리 방안은 부채 총량 관리와 DSR 규제 강화 등이 골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 “그동안 고정금리 비율을 늘리고, 분할상환 의무를 강화하는 등 규제가 강화돼왔으나 이번처럼 당국에서 강력한 수단으로 가계부채 관리에 나서겠다고 예고한 적은 처음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소득은 제자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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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의 절대 규모가 가파르게 늘어난 점도 문제지만, 가계소득이 제자리걸음인데 부채만 가파르게 늘었다는 점도 우려를 더하는 문제다. 가계부채 증가는 단기적으로는 가계소비 증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현재 국내의 상황은 누적된 가계부채가 오히려 소비여력을 떨어뜨리고 금융불균형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는 상태로 풀이된다.

지난해 가계의 소득대비 부채비율은 201%에 달한다. 그나마도 재난지원금 등 정부가 가계에 지원한 이전소득이 가계소득 증가의 상당부분을 차지했음을 감안하면 빚 부담은 더 무거워졌을 것으로 추산된다. 정화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전소득 효과를 제외할 경우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8%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가계부채 증가는 단기적으로 소비를 늘리는 효과가 있겠지만, 중기적인 시계에서는 오히려 소비를 위축시키는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특히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1분위 계층의 소득 대비 대출이 다른 계층에 비해 가파르게 늘어난 점은 우려스럽다. 한은의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지난해 1분위의 처분가능소득은 1009만원으로 전년보다 5.3% 늘었고, 금융부채는 1182만원으로 19.9% 늘었다. 큰 타격을 받은 임시일용직, 대면서비스, 자영업자 등의 고용이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저소득계층의 소득 회복이 더딘 주요한 이유로 꼽힌다.

■전세대출은 정말 죄가 없나

실수요자 보호하며 핀셋 규제
총량 억제하며 대출절벽 방지
정부, 규제와 관리 사이 ‘고심’

당국이 강력한 가계부채 관리 의지를 밝히면서도 끝까지 고민했던 부분은 전세대출과 제2금융권에 대한 규제 강화 방안이다. 상대적으로 느슨한 규제를 놔둘 경우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실수요를 보호하면서도 대출 규제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대출절벽 사태를 겪으면서 문제가 됐던 전세자금대출의 경우 금융당국이 실수요가 대부분인 것으로 보고 총량 규제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세보증금 제도 자체가 일종의 ‘사금융’ 역할을 하는 게 사실이어서 현재의 보증부 대출 구조를 고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세입자의 대출을 가지고 갭투자에 나서기 쉬웠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세대출 대부분이 금융회사가 책임을 지지 않고 주택도시보증공사,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 등에서 보증하는 형태여서 금융사의 리스크 관리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준경 교수는 “보증부 전세대출은 주거 취약계층에 정책적 배려 차원에서만 엄격하게 적용하도록 하고, 무분별하게 전세대출에 대해 정부에서 보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대출 총량을 관리하면서도 대출절벽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부적인 방안도 강구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줄을 세워서 한도 내에서는 대출을 다 내주고, 이후부터는 아예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돼 버리는 현재의 관행 때문에 최근의 혼란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여전한 취약계층·‘빚투’ 청년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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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을 내기 어려워지고 이자 부담이 늘면 가계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 축소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코로나19 충격을 가장 크게 받아 빚을 낼 수밖에 없었던 소상공인·자영업자의 경우 어려움이 더해질 수 있다. 코로나19 대응 차원에서 실시됐던 각종 금융지원 조치 종료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이자까지 오르는 형국이 될 수 있어서다. 정중호 소장은 “대출 규제를 주체별로 달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현재의 총량 규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이 과정에서 중소 자영업자를 비롯한 취약계층부터 피해를 보게 되기 때문에 별도의 지원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자산투자 열풍이 불면서 ‘빚투’에 나선 20~30대의 부채 급증 역시 취약한 고리로 꼽힌다. 아직 소득 기반이 탄탄하지 못한 젊은 계층이 주식, 부동산 투자에 대거 뛰어든 것이 통계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올 2분기 20~30대 가계부채는 전년 동기 대비 기준 12.8% 늘면서 나머지 연령층의 증가율(7.8%)을 크게 웃돌았다. 전체 가계부채에서 청년층이 차지하는 비중도 2분기에 26.9%로 지난해 동기(26.0%)보다 0.9%포인트 늘어났다. 지난해 4분기 주택담보대출의 연령별 증가율을 보면 20대(27.0%)와 30대(9.6%) 증가율이 전체 증가율 3.7%보다 월등히 높았다. 특히 금리 인상이 본격화하고 대외 악재가 불거지면서 자산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지고 있는 점도 불안요인이다. 하준경 교수는 “부채 축소 과정은 고통을 수반하겠지만 지금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2030세대가 소득이 충분치 못한 상태에서 빚을 지게 되면서 결혼이나 출산에도 부정적 영향이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run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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