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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도 높고 담보 있어도 ‘더 높은’ 금리… 상식 깨진 대출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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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 등의 규제가 켜켜이 쌓이면서 대출 시장의 왜곡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부동산 등 담보를 잡고 돈을 빌려주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가 신용대출보다 높아지고, 전문직 신용대출 상품 금리가 일반 직장인의 것을 넘어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신용도가 높고 담보가 확실하면 더 좋은 조건으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금융 상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은행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이날 기준 주담대 변동금리는 연 3.35~4.67%, 고정혼합금리는 연 3.28~5.01%다. 신용대출 금리는 연 3.18~4.45%(은행 내부 신용 1등급 대출자 1년 대출 기준)다. 개인 차주 상황별로 다르겠지만 단순 비교하면 주담대 금리가 신용대출보다 더 높은 것이다.

조선비즈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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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주담대는 신용도만을 평가해 대출을 내주는 신용대출과 비교해 금리가 낮은 것이 일반적이다. 주담대를 갚지 못해도 담보물을 처분하면 그 손해를 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공무원이나 전문직 등 신용 등급이 우월해 신용대출에 있어 초저금리 우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소수를 제외하면, 주담대 금리가 신용대출보다 싼 것은 당연하게 여겨져 왔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대출금리가 서로 역전하는 기현상이 종종 나타나고 있다. 이 현상은 지난해 8월에도 한 차례 나타난 적 있었는데, 당시는 자연적인 시장금리 변화 영향이 컸다는 것이 은행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대출금리 결정 구조상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를 반영한 금리 하락 속도가 신용대출 쪽이 더 빠르게 작용한 것이다. 여기에 카카오뱅크·케이뱅크 등 인터넷은행들이 낮은 신용대출 금리를 내보이면서 시중은행 역시 적극적으로 금리 인하 경쟁에 뛰어든 영향도 있었다.

1년 후인 지금 시장금리 움직임에 더해 금융당국의 강화한 가계대출 조이기 정책이 맞물리면서 금리 역전 현상이 재발했다. 우선 은행은 주담대 고정금리 산정에 장기물인 금융채 5년물(AAA등급) 금리를, 신용대출 금리에는 단기물인 금융채 6월물 금리를 반영한다. 그런데 최근 한두 달 새 5년물 금리 인상폭이 6월물의 인상폭보다 컸다.

이런 시장금리 변화에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 영향이 가세했다. 금융당국이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7%를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만큼, 목표치까지 남은 한도가 동난 은행들은 속속 대출을 죄고 있다. 특히 은행들은 연말이 다가오면서 가계대출 상승분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담대 공급을 바짝 조여야 했는데, 이 때문에 가산금리 인상이나 우대금리 인하 등이 이어져 전체적인 주담대 금리가 빠르게 상승한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지난해와 달리 올해 왜곡 현상은 금융당국 정책에 따른 은행들의 인위적인 금리 조정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부 은행에서는 신용대출 가운데서도 신용도가 높은 전문직 신용대출 금리가 더 높게 뛰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대부분 은행은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을 대상으로 한 전용 상품들을 운용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은행의 전문직 신용대출 상품의 최저 금리는 3%대면서 일반 직장인 최저 금리는 2%대인 곳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빚투’(빚내서 투자) 등 투기 용도의 과도한 대출을 차단해야 한다는 정부 인식이 있었고, 이 때문에 가장 먼저 고신용자·고소득자들이 타깃이 됐다”며 “올해 초중순부터 잇따른 이들의 신용대출 규제에 이어 현재의 가계대출 총량 규제가 더해져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고신용자에게는 대출을 아예 내주지 않는 곳도 있다. 인터넷은행 카카오뱅크는 지난 8일부터 연말까지 고신용자 대상 신용대출과 직장인 사잇돌대출, 일반 전월세보증금 대출 신규 판매를 차단했다. 금융당국에 약속한 중저신용자 비중 확대와 대출 총량 관리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다. 다만 전세대출은 총량 규제에서 예외로 한다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오는 22일부터 일반 전월세보증금 대출은 재개하기로 했다.

박소정 기자(soj@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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