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전두환의 맡기는 정치? 윤석열의 큰 착각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댓글 1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전두환 시절의 정치, 이것이 잘 된 정치인가

오마이뉴스

▲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경선 후보가 19일 부산 연제구 부산개인택시조합에 택시를 타고 도착하고 있다. 윤 후보 손에는 윤희숙 전 의원이 쓴 책 '정치의 배신'이 들려 있다. ⓒ 연합뉴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또다시 설화(舌禍)를 낳았다. 지난 19일 부산 해운대구를 찾은 그는 "전두환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며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고 발언했다. 파장이 크다.

국민의힘 해운대갑 당원협의회 사무실에서 전두환 옹호론을 역설한 그는 이런 평가를 내린 이유를 "맡겼기 때문"이란 말로 설명했다. "이분은 군에 있으면서 조직 관리를 해봤기 때문에 맡긴 거"라면서 "그렇게 맡겼기 때문에 잘 돌아간 것"이라고 한다.

윤석열 후보의 발언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전두환처럼 '맡기는 정치'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 위해서였다. 그는 "대통령이 되면 지역과 출신 등을 따지지 않고 최고 인재를 뽑아 적재적소에 배치한 뒤 시스템 관리를 하겠다"고 다짐까지 했다.
오마이뉴스

▲ 7월 17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사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7월 17일 광주 5.18 민주묘지를 방문한 윤석열 전 총장은 희생자 묘비들을 둘러보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자리를 함께한 5.18 유공자가 '대학 시절 모의재판에서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한 마음이 지금도 여전한가?'라는 취지로 묻자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또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는 문제와 관련해서도 "5.18 정신을 국민 전체의 가치로 떠받들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도 말했다.

'전두환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5.18 묘지에서 울먹이던 그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다. 전두환과 상극인 5.18을 헌법 전문에 담자는 발언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이쯤 되니 전두환에 대한 윤석열의 평가보다도 되레 5.18에 대한 윤석열의 '진짜' 평가가 궁금해질 지경이다.

언론통폐합, 국회·정당 해산 그리고 국가보위입법회의

윤석열은 전언의 형태를 취하긴 했으나, 1979년 12.12 및 1980년 5.17 쿠데타와 뒤이은 5.18 학살을 뺀 나머지 부분에서는 전두환이 정치를 잘했다고 말한 것과 같다. 5.18과 전두환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전두환이 정치만큼은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다. 쿠데타 및 5.18 이후의 전두환은 '폭군'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전두환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언론 통폐합이다. 신문·방송을 자기 필요에 맞게 통폐합하고 언론의 자유를 극도로 억압했다. 비판의 여지를 아예 봉쇄하는 이 같은 모습은 민주주의나 공화주의에 대해 그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오마이뉴스

▲ 1980년 8월 18일, 최규하 전 대통령(오른쪽)이 청와대를 떠나기 앞서 전두환 국보위 위원장의 예방을 받고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다. 가운데는 민관식 국회의장 직무대행. ⓒ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폭군 전두환의 모습은 1980년 가을에도 명징하게 나타났다. 그해 8월 16일 사임한 최규하 대통령에 이어 9월 1일 청와대에 들어간 그는 10월 22일 헌법개정 국민투표를 실시한 뒤, 제5공화국 헌법의 발효를 명분으로 폭정을 실시했다. 새 헌법이 시행된 첫날인 10월 27일의 <경향신문> 1면 머릿기사는 이렇게 보도했다.
"이날 헌법이 발효·시행됨에 따라 공화·신민·통일·유정회 등 각 정당과 정파 그리고 국회가 해산됐으며,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전면 폐지됐다. 또한 입법 기능은 국회 해산과 동시에 국가보위입법회의에 넘어갔으며, 입법회의는 정치풍토특별조치법안을 비롯한 각종 법안과 예산안 등을 다룰 예정이다."

5.18 학살 5개월 뒤, 전두환은 제5공화국 출범과 동시에 국회와 정당부터 해산했다. 이때 그가 출범시킨 국가보위입법회의는 국회의 기능을 대신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의 권능까지 행사했다. 이 기구는 정치인의 자격을 심사하고 판정하는 정치풍토특별조치법을 제정해 1980년 11월 12일 정치인 811명이 정치활동 규제 대상자로 지정되고 15일에는 24명이 추가 지정되도록 만들었다.

국회의원보다 훨씬 막강한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위원들은 전두환에 의해 임의로 선출됐다. 10월 28일 제정된 국가보위입법회의법은 제2조에서 "입법회의는 헌법과 법률에 정한 국회의 권한을 행사한다"고 한 뒤 제3조에서 "입법회의는 정치·경제·사회·문화·행정 기타 각계의 학식과 덕망이 있는 인사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50인 이상 100인 이내의 의원으로 구성한다"고 규정했다.

전두환이 임명한 입법위원들이 '정치인 자격'의 심사에 관한 기준까지 만들었다. 이들이 1980년 10월 28일부터 1981년 4월 10일까지 활동했고 그 토대 위에서 제5공화국이 운영됐다. 전두환 시대의 정치라는 것이 얼마나 부조리했는지,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알 수 있다.

전두환 '맡기는 정치'의 치명적 한계

윤석열은 1979년에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전두환 정권에 대한 저항이 활발했던 1980년대를 20대 청년으로 살았다. 그래서 전두환의 폭정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그랬는데도 그는 '전두환이 정치는 잘했다'고 평가한다.

윤석열 같은 이들은 '전두환이 물가만큼은 잘 잡았다' '전두환은 전문가에게 맡겼다' 등의 말을 하지만, 이는 실상을 정확히 반영한 이야기가 아니다. 전두환이 물가상승을 억제한 비결은 다름 아닌 노동 탄압이었다. 노동자들을 억압해 임금 인상을 막는 방법으로 물가를 관리했던 것이다.

이 점은 전두환 경제정책의 기틀을 세운 김재익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의 정책 기조에서도 확인된다. 1983년 10월 14일 <경향신문>은 "저물가·저금리·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그의 정책 신념은 제5공화국 경제정책의 기둥으로 확고한 자리를 잡아 왔다"고 말한다.

공권력을 동원한 노동 탄압으로 임금을 억제하고 이를 토대로 물가를 관리했다는 것은 전두환의 경제정책이 일반 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소수의 특권층을 위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국민의 시각에서는 전두환 시절의 경제가 나빴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시절에 일반 대중이 공정한 대가를 받았다면, 1987년 6월항쟁 때 넥타이부대로 상징되는 중산층이 거리로 대거 몰려나온 이유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전두환이 '맡기는 정치'를 했다는 평가도 문제점이 있다. 전두환이 김재익 경제수석 같은 전문가에게 과감하게 권한을 넘겼다고 칭찬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김재익은 1981년 정부조직법 상의 경제기획원 장관이 아니라 전두환과 함께 청와대에 근무하는 비서관이었다. 비서관에게 일임하는 것과 경제기획원 장관에게 일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청와대 내의 업무 분장을 놓고 전두환이 업무 위임을 잘했다고 평가하긴 힘들다.

전두환이 했다는 '맡기는 정치'가 실상은 그런 것이었다는 점은 5공 시절의 청와대 비서실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 사실에서도 나타난다. 1990년 11월 25일 <한겨레>는 "5공화국 하에서도 한때 비서실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한 적이 있다"며 "5공의 비서실은 대통령의 보좌·참모 및 행정 조정 기능은 물론 상당 부분은 행정부를 장악하고 지휘하는 역할까지 맡았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두환이 권한을 각 부처에 잘 분배했다면, 그 시절의 청와대가 그렇게 막강해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청와대 비서실이 막강했다는 것은 전두환이 정부부처 업무 분장을 제대로 하지 않았음을 뜻한다고 말할 수 있다.

5.18과 전두환을 분리하는 발상 자체가 문제
오마이뉴스

항소심 마친 전두환 ▲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군부의 헬기 사격 사실을 부정하며 목격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는 전두환씨가 8월 9일 오후 항소심 재판에 출석한 후 광주지방법원을 떠나고 있다. 전씨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두환 때는 정치를 전문가에게 맡기기는커녕 되레 선을 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타인의 권한까지도 임의로 침해했다. 검찰총장의 권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1992년 7월 13일 <동아일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1981년에 서울지방검찰청 특수1부가 저질연탄을 만들어 부당이득을 취한 업체들을 수사하자 전두환이 서울지검장에게 격려 전화까지 건 일이 있다. 그랬던 전두환은 곧바로 태도를 바꿨다. 동력자원부 간부가 구속되면서 행정부의 위신이 손상되고 부당이득이 정치자금으로 흘러들었다는 주장들이 나오자, 검찰에 대한 태도가 돌변했다.

위 기사는 "일이 이렇게 되자 당시 전 대통령은 격노했다"고 전했다. 분노한 전두환은 서울지검장과 3차장, 특수1부장검사를 한직으로 쫓아냈다. 만약 윤석열이 전두환 시절에 검찰총장을 지냈다면, 윤석열이 전두환을 어떤 대통령으로 기억하게 됐을지 추론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윤석열이 잘했다고 말하는 전두환의 정치 역시 실상은 반민주적이고 반(反)시대적인 것이었다. 그런 전두환의 정치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한국 현대사에 대한 윤석열의 인식이 일천하다는 걸 보여준다.

무엇보다, 5.18과 전두환을 따로 떼어놓는 발상 자체가 문제다. 전두환에게서 5.18을 떼어내는 것은 전두환에 대한 인식의 문제점보다는 5.18에 대한 인식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종성 기자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마이뉴스에서는 누구나 기자 [시민기자 가입하기]
▶세상을 바꾸는 힘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오마이뉴스 공식 SNS [페이스북] [트위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