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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씨'조차 사라진 대선… "이재명이" "윤석열이" 무례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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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 빼고 '이름'만 부르며 공격
정치 제대로 작동할 땐 없던 일
과거엔 대통령 '씨'로 지칭도 금기
"정치권이 정치 품격 스스로 훼손"
한국일보

윤석열(왼쪽) 전 검찰총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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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17일 더불어민주당의 '고발사주 국기문란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 회의. 송영길 대표는 "손준성 검사가 윤석열 장모, 처를 옹호하는 고소장을 대신 써 줘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윤석열에게 충성함으로써 윤석열이 잘 되면 (권력을) 보장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2. 15일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TV토론. 유승민 전 의원은 원희룡 전 제주지사의 공약인 '미래 국부펀드'를 비판하면서 "이재명, 문재인하고 똑같은 이야기를 하느냐"고 했다.

이처럼 직함은 물론이고 '씨(氏)' 같은 최소한의 존중의 표현도 떼고 이름 석자만 달랑 부르는 게 요즘 정치권의 풍경이다. 상대를 철저히 무시하고 욕보이겠다는 저의가 깔려 있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던 시절엔 없던 일이다.

한국일보가 19일 민주당·국민의힘 지도부와 대선주자들이 이달 들어 공식석상에서 한 발언을 분석한 결과, '이름만 부르기'는 이미 일상적인 공격 전술이 됐다. 열성 지지자들은 후련하다고 할지 몰라도, 여야 정치인들이 스스로 권위를 훼손하고 정치의 격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일보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오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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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에선 주로 지도부가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 송 대표는 17일 고발사주 TF 회의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의 정직 2개월 징계가 정당했다는 법원 판결과 관련해 "윤석열의 행위가 범법이었음을, 불법이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강병원 최고위원은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같은 판결에 대해 "국민 두려운 줄 모르는 윤석열의 권력 중독까지 함께 심판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배 최고위원도 "한동훈 검사가 윤석열의 최측근임을 법원이 판결로 공식화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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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전 의원(왼쪽부터), 원희룡 전 제주지사, 홍준표 의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5일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1대1 맞수토론에 앞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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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도 마찬가지였다. 홍준표 의원과 윤 전 총장이 15일 대선후보 경선 TV토론회에서 나눈 대화. "가장 도덕성이 없는 이재명을 (상대 당 대선후보로) 만났으니까 도덕성 문제를 따지는 것이다."(홍 의원) "이재명의 대장동 사건을 좀 봐주겠다는 이야기인가."(윤 전 총장)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18일 TV토론회에서 "이재명을 확실하게 이기겠다"고 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이재명은 국정감사에서 도마뱀 꼬리자르기 식으로 피해가고 있다"고 했다.

15일 군인공제회 등에 대한 국회 국방위의 국정감사.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재명이"라고 자꾸 부르자, 기동민 민주당 의원이 반발했다. "공당의 대통령 후보인데, '이재명이'라고 하면 되는가. 제가 '윤석열이'라고 하던가."

과거엔 대통령을 '씨'라고 불러도 모욕으로 해석


과거엔 정치 공방이 아무리 사나워져도 여야가 최소한의 예의를 지켰다. 직함을 제대로 부르는 건 '금도'였다. 대통령을 '씨'라고 부르는 게 막말성 공격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격식을 지켰다. 지난 대선에 출마한 홍준표 전 의원은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를 비판하면서도 '후보'로 부르기를 빼놓지 않았다. "지금 민주당 1등 하는 후보(문재인 대통령)는 즈그(자기) 대장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다."

예의 없는 정치는 결국 '제 살 깎아먹기'로 귀결된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념적·정파적으로 양극화가 심해지니 본인 진영을 규합하고 상대방에게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키기 위해 정치인들이 선을 넘는 것"이라며 "중도층의 선택이 대선의 중요한 변수라는 점을 감안해서라도 기본적 예의는 서로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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