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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다이어리]국민이 믿는 ‘소비자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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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그나마 좀 배운 게 영어인데, 베를린에는 온통 독일어만 써 있으니 숍에 가면 늘 까막눈이 된다. 뭐 하나를 사려면 시간이 배로 걸린다. 종류는 또 얼마나 많은지. 얼굴에 바르는 크림 하나만 해도 낮에 쓰는 건지 밤에 쓰는 건지, 건성인지 지성인지 민감성인지 꼼꼼하게 쓰여 있고 브랜드도 천차만별이다. 제품을 찾는 것부터 일이다 보니 어떤 것이 제일 좋은지 알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냥 유명한 브랜드로 고르거나 감으로 물건을 사곤 했다.

경향신문

이동미 여행작가


그러다 ‘슈티프퉁 바렌테스트(Stiftung Warentest)’에 대해 알게 됐다. 직역하면 ‘재단법인 제품평가’라는 뜻으로, 독일의 유명한 소비자 보호기관이다. 이곳은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쉽게 쓰는 제품들을 선택해 항목별로 품질을 평가, 비교하고 등급을 매겨 소비자에게 알려준다. 등급은 0.5~1.5점을 받은 제품이 가장 우수, 1.6~2.5점은 우수, 2.6~3.5점은 보통, 3.6~4.5점은 보통 이하, 4.6~5.5점은 불합격 수준이다. 평가하는 제품의 범위도 매우 넓다. 식품과 화장품, 주방용품, 전자제품은 물론이고 보험, 증권, 교육, 여행 등의 서비스 상품, 공공건물의 안전도까지 비교 검사한다. 매년 검사하는 제품의 수는 2000개 정도이며, 모든 테스트 결과와 관련 기사는 두 개의 자체 매거진과 온라인(www.test.de)에 유료로 공개한다. 또 최고 점수를 받은 제품들은 1등급 표시의 슈티프퉁 바렌테스트 로고를 제품에 사용할 수 있는데(로고 사용료를 내고), 슈퍼마켓이나 상점에서 한눈에 알아보고 살 수 있으니 유익하다.

이제는 치약 하나만 사더라도 1등급 표시가 부착되어 있으면 믿고 바로 산다. 살 때마다 놀라는 것은 이 등급을 받은 제품들이 대부분 다른 제품보다 가격 또한 저렴하다는 것. 독일의 유명한 치약이라고 알려진 브랜드들보다 데엠(dm) 드럭스토어 자체 상품인 치약이 최고 품질 평가를 받았는데 가격은 900원 정도로 가장 쌌다.

1964년 설립된 슈티프퉁 바렌테스트는 현재 독일인의 96%가 알고 있고, 그중 80%는 대단히 신뢰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이 단체가 독립적이고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체나 공급자, 광고주의 어떠한 청탁이나 영향 없이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서만 제품과 서비스를 테스트하고 있다.

최고의 평가를 받은 제품 또한 재단이 정한 엄격한 조건에 따라 광고에 활용할 수 있으며, 모든 1등급 제품이 광고를 갖다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재단은 공정하고 철저한 검사로 항상 독일 국민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을 증명해 왔고, 지난 57년간의 역사로 입증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한국소비자원이 있다. 홈페이지에는 위해정보 신고와 위해정보 동향, 판매 차단된 식품의 리스트가 속보로 나와 있다. 불법제조된 가짜 건강식품 차단, 살모넬라균 오염 가능성이 있는 돼지껍데기 판매 차단, 기준 초과 비소를 함유한 영유아용 시리얼 차단 등의 리스트가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다. 많이 먹는 시리얼 브랜드 중 가장 좋은 시리얼은 무엇인지, 가장 깨끗한 물티슈는 무엇인지, 가장 안전한 가습기살균제는 무엇인지 여전히 알 수 없다. X창을 누르고 조용히 사이트를 나왔다.

이동미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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