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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구사대 동원되고 뇌출혈로 쓰러지고...고등학생 '현장실습'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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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기자(kakiru@pressian.com)]
여수에서 홍정운 군이 현장실습 도중 사망했다. 지난 6일, 요트업체에서 12kg 납 벨트를 허리에 차고 물속으로 들어가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다 목숨을 잃었다. 홍 군은 잠수자격증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물에 들어가는 것조차 두려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홍 군의 현장실습은 잠수가 아닌 선내 실습이었다. 그러나 현장실습을 나온 지 열흘 만에 홍 군은 세상을 떠나야 했다.

문제는 이런 참사가 늘 반복된다는 점이다. 2017년 1월에는 전주 콜센터에서 일하던 홍수연 양이 과중한 업무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생수공장에서 일하던 이민호 군이 프레스기에 끼어 사망했다. 2014년 1월에는 CJ 제일제당 진천공장에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 상사의 폭언, 폭행 등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다. 2011년 12월에도 현장실습생이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주 70시간 가까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이러한 아이들의 죽음의 이면에는 '현장실습'이라는 제도가 존재한다. 아이들은 현장실습이라는 통로를 통해 사회로 나가지만 그 끝은 매우 좋지 않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쯤에서 현장실습이 어떻게 생겨나게 됐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 살펴볼 때가 됐다.

프레시안

▲ 11일 오후 전남 여수시 웅천동 웅천친수공원에 요트 현장실습 도중 잠수를 하다 숨진 여수의 한 특성화고교 3년 홍정운 군의 빈소가 마련돼 추모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홍 군은 지난 6일 오전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따기 위해 잠수를 하던 중 변을 당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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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진 현장실습

현장실습은 박정희 시대인 1963년 산업교육진흥법에 의해 정식으로 도입되었다. 이 법률에 근거해서 산업교육을 실시하는 학교 학생들이 재학 중 지정된 산업체에서 현장실습을 이수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공업고등학교의 경우, 실습환경이 사업체 환경을 따라 갈 수 없는 상황에서 기능교육을 산업체 현장에서 완성하자는 교육 목표를 가지고 시행된 제도다.

당시 직업계고(현 특성화고) 현장실습의 목적은 △ 이론적 지식과 실기 수행능력의 통합, △ 현장 업무수행 능력 향상 △ 직장근무태도 습득, △ 전공 관련 산업체 탐색 등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산업체의 적극적 참여 부족, 체계적인 실습 프로그램 미비, 관련 예산 부족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당시만 해도 교육법(현 교육기본법)은 일반고와 직업고를 구분하지 않았다. 그 해 산업교육진흥법이 제정되면서 직업교육을 담당하는 학교를 실업계고(현 특성화고)라고 정의했을 뿐이다. 산업교육진흥법에 실업계고의 구체적인 교과 과정이나 현장실습 제도에 대한 규정은 없었다. 따라서 각종 실습 기자재가 부족한 학교는 산업교육을 하기 위해 산업체로 실습을 보내기 시작했다. 현재의 파견 현장실습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이후에도 오랫동안 파견현장실습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었다.

'산업역군'을 육성한다는 목적으로 도입된 현장실습 제도는 그렇다 보니 여러 부작용을 빚어냈다. 경제개발이 당면 숙제였던 우리의 노동환경, 일선 공장 등은 교육환경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학교에서 일정 수준의 능력을 갖추고 산업현장으로 투입하게끔 했지만, 학교현장과 산업현장은 질적인 면에서 전혀 별개의 현장이었다. 아무리 학교교육을 받았다 해도, 결국 산업현장에서는 그에 따른 맞춤형 인력으로 거듭나야 했다. 일이 숙련될 때까지, 부단한 노력이 수반됐다. 그 과정에서 다치거나 죽는 일은 십상이었다. 일명 사람을 '갈아 넣는' 구조였다.

이는 시대가 흘러 1990년대에도 이어졌다. 소위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3D(Dirty, Dangerous, Difficult)업종에 인력을 수급 할 목적으로 파견 현장실습을 활용하기도 했다. 일례로 2002년에는 A기업에서 조합원들의 노동조합 사무실 출입을 막기 위해 현장실습 나온 학생들을 동원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현장실습이 본래 목적을 상실한 채 운영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그러다 교육부는 1997년 12월, 제7차 고등학교 교육과정편성 운영지침을 통해 실업계 고등학교 현장실습에 관한 사항(교육부 고시 제1997-15호)을 발표했다. 현장실습을 좀 더 독려하는 정책이었다. 실업계 고등학교에서의 전문교과 학습은 현장실습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게 골자였다. 학과의 교육과정 내용과 직접 관련이 있는 현장실습을 실시하고, 교사 지도 아래 최종학년에서 이를 실시하도록 했다. 이후부터 파견 현장실습은 전문교과를 대체하고 있다.

그렇게 파견 현장실습이 늘어나면서 부작용은 더욱 커졌다. 성폭행 피해, 사고와 질병 등 노동재해도 비례해서 늘어갔다. 결국, 2003년 전교조 실업위원회와 참여연대 등에서 실태조사를 진행했고, 이를 계기로 당시 교육인적자원부에서 2003년 5월 ‘고등학교 현장실습 운영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조기취업 형태를 규제하고 취업교육이라는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업에 한해 학생을 파견해야한다는 게 골자였다. 또한, 현장실습 전담교사를 두고 현장실습 시기를 다양화할 뿐 아니라 운영도 다양하게 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취업률의 돌파구 '현장실습'

여전히 현장실습 과정에서 아이들은 죽거나 다쳤다. 2005년에는 현장실습 학생이 엘리베이터에서 추락하는 사망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학생은 실습과정에서 필수인 안전교육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보호 장구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채로 일한 게 뒤늦게 드러났다.

당시 발표된 '교육이라는 이름의 기만과 폭력 - 간접고용 현장실습 실태 보고'를 보면 특성화고생의 현장실습 의무화로 인해 저임금 노동력 착취, 인권 유린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졸업 후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까지 파견형태의 현장실습을 의무 이수함에 따라 구색 맞추기 식의 프로그램이 난립하게 되었다

이에 당시 교육인적자원부는 2006년 5월, ‘실업계고 현장실습 운영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취업이 예정되어 있고 수업의 3분의 2이상을 이수한 경우에만 파견 현장실습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한마디로 현장실습을 대폭 축소한 셈이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이 제도는 폐기됐다.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명박 정부는 2008년 4월, 학교 자율화 정책을 발표했고, 그에 따라 교과부의 '실업계고 현장실습 운영 정상화 방안'은 폐지됐다. 그러면서 현장실습 운영 지침은 시도교육청과 학교로 이전됐고, 자연히 다시 '정상화' 방안 이전으로 현장실습 제도는 돌아가게 됐다.

당시 시·도교육청의 현장실습 운영 지침을 보면 대체 현장실습 이수 가능 등 정상화 방안의 기본 방향을 그대로 유지한 반면, 현장실습 시기에는 유연성을 가지도록 했다. 3학년 2학기 2/3 이수 전에도 파견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고졸취업을 강조하던 2010년부터는 업체의 취업요구에 따라 현장실습 시기도 폭넓게 조정되었다. 당시 정부는 특성화고의 취업률 목표를 2011년 25%, 2012년 37%, 2013년 60%로 제시했다. 만약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정부는 취업률에 따라 학교지원금을 차등화 할 뿐만 아니라, 목표 취업률에 도달 못하는 학교의 경우, 통·폐합하겠다고 압박했다.

정부가 학교와 산업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높은 취업률만을 제시하고 옥죄이자 학교에서는 고육지책으로 전공과 무관한 업체에 학생들을 파견하는 일이 늘어났다. 2012년 서울시교육청 감사 결과 가장 취업을 많이 한 곳이 ‘OO리아’와 군부사관(직업 군인)일 정도였다. 질 나쁜 일자리에, 전공과도 상관없는 일자리에 아이들을 내보내는 식이 된 셈이다.

자연히 현장실습 과정에서 아이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은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 2011년 말 기아차에서 현장실습하던 학생이 뇌출혈로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한 A씨가 주야 맞교대로 일하며 마스크 하나에 의지한 채 페인트칠을 하다 쓰러졌다. 이를 계기로 2012년 4월, 교육과학기술부, 고용노동부 및 중소기업청이 합동으로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현장실습 학생이 일반 노동자와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 근로계약을 체결하도록 하면서 노동관계법을 준수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그간 현장실습 학생은 노동권을 보장 받지 못했다.

이후인 2013년에도 '학생 안전과 학습 중심의 특성화고 현장실습 내실화 방안' 등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근본대책이 되지 못했다. 문제가 되는 현장실습이라는 제도는 그대로 둔 채, 땜질식 처방만 내놓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였을까. 이후에도 LG유플러스 홍수연 양, 제주도 이민호 군 등 현장실습 제도 속에서 학생들의 죽음은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정부는 현장실습 제도를 확대하는 정책인 '도제학교'를 도입하기도 했다. 직업계고 관련, 이명박 정부의 핵심전략이 '마이스터고'였다면, 박근혜 정부에서는 '도제학교'가 주요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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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오후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열린 고(故) 홍정운 군 추모 촛불집회에서 한 시민이 추모하는 글을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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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기업에만 현장실습 허용했으나...

그나마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직업계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전 정부와는 조금 달랐다. 2017년 12월, 문재인 정부는 '조기 취업형 현장실습 전면 폐지' 계획을 발표하면서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을 없애는 듯 보였다. 당장 2019년부터 학생 신분으로 취업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다만 예외적으로 실습 지도와 안전 관리 등이 확보된 현장에는 현장실습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우수 현장실습 기업 후보군을 각 학교에 제공하고 해당 기업에 대해선 다양한 행정적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현재 고교생 실습이 이뤄지고 있는 모든 현장을 전수 점검해 학생의 인권보호와 안전 현황을 중점 확인한 뒤 위반 사항이 발견되면 즉각 학생들의 복교를 조치키로 했다. 직업교육훈련촉진법도 손질해 학생의 현장실습 자율성을 부여하고 '현장실습표준협약서'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도 부과키로 했다. 취업률 중심의 학교평가와 예산지원 체제의 개선도 약속했다. 그간 산업 중심 정책이 교육 중심 정책으로 프레임이 전환되는 식이었다. 물론, 갈 길은 멀지만, 가야 할 방향은 명확히 인지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일선 학교와 학부모, 그리고 재학 학생의 반발이 거셌다. 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취업인데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을 없앨 경우 취업이 어려워진다고 반대했다.

그러자 교육부는 두 달 후인 2018년 2월 '학습중심 현장실습의 안정적 정착 방안(안)'을 발표했다. 문제가 되는 '조기 취업형 현장실습‘ 즉,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을 폐지하는 게 아닌, 보완·수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안전이 확보된 경우에 한해 겨울방학 전에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으로 선회했다.

안전 등 일정기준을 충족하는 업체를 '현장실습 선도기업'으로 선정한 뒤, 이러한 기업에 한해서만 학기 중 취업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선도기업으로 인정되지 않는 기업은 겨울방학 이후, 즉 학기가 끝난 뒤 취업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2019년 1월, 교육부는 '직업계고 현장실습 보완방안'을 발표하면서 유야무야됐다. 선도기업에 선정되지 않은 기업도 '참여기업'으로 현장실습생을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선도기업 자격이 안 되는 기업들의 현장실습 참여가 급감해 학생들의 현장실습 기회가 축소된다는 이유였다. 이번에 세상을 떠난 홍 군도 '참여기업'에서 일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이었다.

[허환주 기자(kakiru@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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