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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섰다”···‘흑자폐업’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 대구시청 점거 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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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18일 대구 중구 대구시청사 1층. 로비 한쪽에 남성 5명이 ‘벼랑 끝 해고노동자 대구시가 살려내라’ ‘게이츠 노동자 기만하는 대구시 규탄한다’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앉아 있었다. 이들은 이날 오전 8시부터 청사 안에서 농성을 벌이기 시작했다. 시청 건물 밖에는 이들과 같은 조끼를 입은 남성들이 단식농성 중이었다. “(오늘로) 55일째”라고 이들 중 한 명이 힘겹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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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대구시청사 1층 로비 한쪽에서 지난 18일 한국게이츠 해고 노동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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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게이츠 해고 노동자들이 대구시의 적극 중재를 다시 촉구(경향신문 3월5일자 12면 보도)하며 시청 점거 농성에 나섰다. 공장 부지가 최근 매각되는 등 사측의 자본 청산 절차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자 해고 노동자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에 본사를 둔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한국게이츠는 지난해 6월26일 코로나19에 따른 경영난과 구조조정 등을 이유로 공장 문을 닫았다. 노동자 147명이 퇴직 통보를 받았다. 당시 협력업체만 51곳, 여기에 속한 노동자는 6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회사 측은 희망퇴직안을 개별 노동자들에게 제시한 뒤 위로금을 지급했지만, 폐업이 부당하다며 사측 안을 거부한 19명은 지금도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퇴직자 가운데 사무직군인 15명은 고용승계가 이뤄져 게이츠 판매법인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 노동자 대부분은 일거리를 구하지 못해 생계가 막막한 상황이라고 노동조합은 전했다. 한국게이츠는 농성을 멈추지 않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3억4000여만원 손해배상가압류를 청구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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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게이츠 해고 노동자와 민주노총 대구지부 관계자 등이 지난 18일 대구시청사 밖에서 55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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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노동자들은 외국 투자자본의 일방적인 철수와 이에 따른 해고자 문제에 대구시가 적극 나서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게이츠는 1991년 대구은행에서 60억원을 빌려 달성산업단지 내 부지 1만3223㎡(약 4007평)를 마련해 공장 가동을 시작했다. 노조는 사측이 2000년 이후 한 차례를 제외하고 매년 순이익을 낸 것으로 파악했다. 최근에도 2017년 77억원, 2018년 47억원, 2019년 45억원 등 흑자를 기록했다.

노동자들은 한국게이츠가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음에도 부지매입금 등 빌린 돈을 갚지 않고 공장을 가동해 왔다고 밝혔다. 또 이러한 방식으로 이윤을 극대화한 뒤 노동자를 해고하는 방식으로 폐업했다고 보고 있다.

노조는 최근 한국게이츠 공장부지를 인수하게 된 업체가 후속 사업에 나서기로 하고, 한국게이츠 대출금 60억원을 대신 갚은 것으로 파악했다. 19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지난 6일 금융기관의 설정한 근저당도 말소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게이츠는 이달 말까지 자동차부품 제조업을 위해 투입했던 자본을 모두 정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한국게이츠가 국내에서 법인세 감면 등 세제 혜택과 공장부지 인수자금 지원 등의 지원을 받았음에도 폐업 이후 토지 매도 등에 따라 수십억원 시세차익을 챙겨서 떠나게 됐다고 비판한다. 이에 공장 부지를 사들인 업체에 대한 정보와 고용 승계 등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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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대구지부 관계자들이 지난 18일 대구시청 앞에서 한국게이츠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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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츠 해고 노동자들은 외국 자본이 노동자들을 손쉽게 해고하고 또 다른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게 됐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현재 대구 지역의 60%가량이 대기업 2·3차 하청을 받는 자동차 부품업체이고 외국 자본 비율도 많은 상태다. 하지만 최근 지역사회에서는 상당수 업체가 폐업 위기에 놓였거나 정리해고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 다른 한국게이츠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채붕석 금속노조 대구지부 한국게이츠지회장은 “울산 등 일부 지자체는 외국 투자 자본이 지역에 왔을 때 이익금 일부를 기금으로 조성해 한국게이츠와 같은 문제가 나면 노동자를 도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외국 투자 자본의 횡포에서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해용 대구시 경제부시장은 “민간기업에서 벌어진 일이라 지자체가 노동자들을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사실상 없다”면서 “그간 사측과 노동자들을 만나 수차례 중재를 시도했지만 이런 상황까지 와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글·사진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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