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오프라인 구경 뒤 온라인 구매…매장 응대 ‘공짜노동’ 해법 찾는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온라인 판매 뒷받침’ 매장 직원들

급여 줄거나 해고 위기 내몰려

시세이도 노사 ‘기여수당 합의’ 이어

다른 유통사 노동자들도 대가 요구

현대차는 캐스퍼 온라인 판매 마찰

정부, 대안에 소극적…“중재 나서야”


한겨레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샤넬코리아·로레알코리아 화장품 판매 직원들이 유니폼 대신 투쟁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복장 투쟁’을 하고 있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화장품 브랜드 ‘로레알’ 판매 직원 ㄱ씨는 회사의 대대적인 온라인몰 광고를 볼 때면 마음이 불안하다. ㄱ씨와 같은 판매직 노동자는 오프라인 매장 판매 실적에 따라 수당을 받는데, 온라인 판매가 강화되면서 노동강도만 세지고 월급은 적게 받는 모순이 발생해서다. 최근 ㄱ씨는 매장 방문 손님을 응대하다 갑자기 걸려온 온라인 상품 문의 전화를 받거나 오프라인 매장에 재고가 없어 상품 판매를 못하는 상황을 자주 겪었다. 최근엔 온라인 상품에 첨부된 사은품의 사용법을 매장 직원에게 설명해 달라거나 온라인몰 상품의 문제점을 해결해 달라는 온라인몰 손님의 요구에 난처할 때도 있었다. ㄱ씨는 “온라인 판매 강화로 공짜노동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오랜 일터였던 오프라인 채널이 쇠퇴하면서 끝내는 일자리를 위협 받을 것이 가장 걱정”이라고 말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상품을 체험한 뒤 온라인으로 사는 소비행태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았다. 유통산업 구조의 대전환이 편리함과 경제성을 내세워 소비자의 일상에 스미는 동안, ㄱ씨 처럼 오프라인 매장을 떠받쳐 온 서비스 노동자들의 일터도 급격히 바뀌었지만 회사도 정부도 ‘응대 노동의 공정한 몫’을 챙겨주지 않았다.

최근 한국시세이도 노조가 회사로부터 매달 5천원씩 ‘온라인 기여 수당’을 고정적으로 지급 받는 합의(관련기사☞[단독] 시세이도, 화장품 업계 최초 판매직원에 ‘온라인 수당’ 준다)를 이끌어낸 데 이어, 다른 유통기업 노동자들도 ‘공짜노동’을 거부하고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고 나섰다. 18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로레알 노사는 2021년 임금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백화점 오프라인 채널 매출 감소에 따른 소정의 위로금을 일회성으로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구체적인 위로금 내역은 밝히지 않았다. 또 백화점 오프라인 채널이 갈수록 축소되는 상황에 대비해 이달 말부터 시작되는 2022년 임금단체협상에서 관련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로레알지부가 속한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는 지난달부터 온라인 판매에 수반되는 오프라인 매장 노동의 존재를 인정하고 대가를 지급하라고 사측에 요구해 위로금 지급을 이끌어냈다. 또 다른 화장품 브랜드 샤넬 역시 같은 안건을 두고 판매직 노동자들과 교섭 중이다.

유통기업의 온·오프라인 병행 전략으로 오프라인 매장에서 상품을 체험한 뒤 온라인으로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지만 이에 수반되는 노동의 대가는 제대로 지불되지 않았다. 오프라인 매장 노동자들은 소비자들에게 제품 시연 및 설명, 고객 민원 응대 등 각종 노동을 도맡아 왔으나, 여전히 오프라인 매장 실적에 연동된 급여를 받는다. 더 많은 일을 하고도 되레 급여를 적게 받는 모순이 발생했다. 또 온라인 판매 가속화로 오프라인 판매직 일자리가 줄면서 해고 위기에 놓이는 경우도 생겨났다. 예를 들어 로레알 소속 화장품 브랜드 ‘슈에무라’의 경우 올초 한국 매장이 모두 문을 닫으면서 판매직 노동자 30여명이 본사 다른 브랜드 매장으로 전출을 가거나 그만뒀다.

이런 고민은 화장품 업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의류나 자동차 등 고가의 소비재를 유통하는 경우 이에 수반되는 고객 응대 노동을 오프라인 노동자가 떠안는 경우가 많다.

현대자동차 판매직으로 구성된 현대차 노동조합 판매위원회는 지난달 현대자동차가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캐스퍼’를 전량 온라인 판매하겠다고 밝히자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다. 판매직 노동자 급여의 상당 부분이 오프라인 매장의 판매 실적에 따른 판매수당이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출시된 캐스퍼에 대해선 판매수당 대신 고객지원금 명목으로 절반 이하를 지급하고, 이는 통상임금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판매직 노동자들은 전담팀이 다 소화하지 못한 캐스퍼 관련 각종 전화 문의에 응대하지만 그에 따른 보상은 다른 차종보다 적다. 노조는 온라인 판매가 본격화되면 이런 식으로 임금 삭감과 고용 불안이 본격화될 수 있다고 보고 사쪽에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온라인 기여 수당이나 오프라인 판매 감소 위로금 등은 사업 구조가 온라인 위주로 재편되는 가운데 ‘노동자 몫’을 요구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이희종 서비스연맹 정책실장은 “온라인 매출이 매장 직원 노동과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 받은 것”이라며 “사측이 오프라인 매출 이윤 감소를 이유로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면 노조가 이를 근거로 고용 유지를 주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작 이런 문제를 풀어가야 할 정부는 대안 마련에 소극적이다. 유통산업 구조조정을 정부 차원에서 다루는 건 일자리위원회 유통티에프지만, 지난 8월26일 두 번째 회의가 열린 뒤 두 달 넘게 다음 회의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유통산업 고용 유지와 관련된 구체적인 안을 내놓지 않아 날짜가 계속 미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 연구위원은 “유통업계의 온라인 수당 요구는 산업 구조 변화가 노동자의 일하는 방식에 깊숙이 들어왔음을 재확인하는 계기”라며 “단순히 개별 사업장의 노사끼리 풀 문제가 아니고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일자리 안정과 유지를 전제로 노사 양쪽의 의견을 모으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짚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