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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1 (일)

㎾h당 3원 조정했는데, 전기요금 '폭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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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덕 기자]

국제유가와 천연가스, 심지어 석탄 가격까지 상승세를 타고 있다. 가파르게 늘어난 에너지 수요를 공급이 받쳐주지 못하고 있어서다. 어쩔 수 없이 한전은 '연료비 연동제'를 적용해 연료비 단가를 조정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전기요금 폭탄론'이 곳곳에서 제기된다. '탈원전 정책 때문에 전기요금이 올랐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나온다. 전기요금 논란, 이대로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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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가격이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섰다. 두바이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11일 기준(현지시간) 배럴당 80.68달러와 80.52달러를 기록했다. 연초 대비 59.4%, 69.1% 올랐다. 두바이유는 2018년 10월 이후 최고치, WTI는 2014년 10월 이후 최고치다.

눈여겨볼 점은 최근 들어 상승세가 더 가팔라졌다는 거다. 지난 8월 4일 대비 두바이유는 16.3%, WTI는 18.2% 올랐다. 그러자 시장에선 "이런 상승세가 지속된다면 100달러까지 올라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천연가스 가격도 오르고 있다. 연초 MMBtu당 2.58달러(뉴욕상업거래소 기준)였던 천연가스 가격은 11일 5.34달러로 치솟았다. 연초 대비 107.0% 상승했다. 지난 5일엔 6.31달러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는 2015년 이후 6년 만에 최고치였다.[※참고: 천연가스는 MMBtu(=100만 Btu)라는 영국식 열량 단위를 사용하는데, 알파벳대로 읽거나 '밀리언 Btu'로 읽으면 된다. 액화천연가스(LNG)를 기준으로 할 때, 1MMBtu LNG의 열량은 원유 0.18배럴(약 28.6L) 수준이다.]

석탄 가격 상승세는 더 빠르다. 연초 톤(t)당 80달러대(뉴욕상업거래소 기준)였던 석탄 가격은 10월 11일 244.5달러를 기록했다. 연초보다 3배가량 오른 셈이다.

이렇게 에너지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해서다. 코로나19로 중단됐던 경제활동이 늘어나자 에너지 수요가 눈에 띄게 커졌다. 반면, 미국·유럽 등의 화석연료 투자 제한, 원유와 천연가스의 증산 차질 등으로 공급은 제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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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해 전기요금 인상 압박도 커지고 있다는 거다. 국내 전체 전력의 62.4%(2020년 기준)를 LNG, 석탄, 석유로 생산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가 올해부터 에너지 가격의 상승·하락 여부에 따라 전기요금을 올리거나 내리는 연료비 연동제를 시행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한국전력이 지난 9월 23일 연료비 조정단가에 에너지 가격 상승분을 반영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전은 올해 1분기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할 당시 에너지 가격이 낮아 '㎾h당 -3원'으로 연료비 조정단가를 산정했는데, 4분기에는 에너지 가격 상승분을 반영해 '㎾h당 -3원'을 '㎾h당 0원'으로 되돌렸다.

이에 따르면 전기 소비자는 4분기부터 전기요금을 종전보다 월 648원(2020년 10월 가구당 월평균 전력사용량 216㎾h 기준) 더 내야 한다. 지난해 4분기 가구당 월평균 전기요금 보다 2.8% 오르는 수준이다.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라 할인됐던 전기요금이 원상태로 돌아갔으니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전기요금 올리면 안 되나

그런데 한전이 연료비 조정단가에 에너지 가격 상승분을 반영한 것을 두고 이상한 비판이 뒤따른다. "국민이 결국 '탈원전 정책의 청구서'를 받았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 전기요금 인상이 없다고 해놓고 뒤통수를 쳤다" "전기요금 폭탄을 맞게 생겼다"는 등이다.

[※참고: '탈원전 청구서'라는 비판은 설득력이 없다. 현 정부는 탈원전을 진행한 적이 없어서다. 오히려 2020년 원전 설비와 전력생산량은 문재인 정권 초기보다 더 늘었다. 이는 더스쿠프 통권 455호의 기사 '적자만 나면 남탓… 한전 실적에 숨은 고약한 역설'에서 충분히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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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비판이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기요금은 절대 올려선 안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서다. 사실 문재인 정부가 이런 비판을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애당초 정부가 "원전을 줄이는 대신 (원전보다 비싼)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겠다"고 주장하면서 전기요금을 올리지는 않겠다는 황당한 주장을 해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제 에너지 가격이 연초 대비 50% 이상 오르는 상황에서 고작 '㎾h당 3원'을 조정한 게 그렇게나 이상한 일일까. 국제유가 상승으로 휘발유 가격이 올라도 전기요금은 올리지 말아야 정상일까. 그렇지 않다. 에너지 가격에 따라 전기요금을 올리지 못할 거였다면 연료비 연동제도 도입하지 말았어야 했다.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게 이렇게 쉬운데, 왜 이런 의문들이 쏟아지는 걸까. 전기요금 정상화에 관한 공론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다. 사실 전기요금 공론화의 필요성은 수없이 제기돼 왔다. 하지만 그 결과물로 나온 건 연료비 연동제가 전부다.

그마저도 연료비 조정단가의 조정치는 ㎾당 ±3원으로 제한돼 있고, 정부 의지에 따라 좌우된다. 연료비 연동제조차 시장상황에 따라 작동하지 않고 정치적 논리에 따라 작동할 여지가 매우 크다는 얘기다.

이헌석 정의당 녹색정의위원회 위원장(에너지정의행동 대표)은 "연료비 연동제가 실시된 후로 전기요금 현실화를 위한 공론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오히려 대선을 앞두고 전기요금 공론화는커녕 탈원전 논쟁이나 탄소중립 논쟁 등과 맞물려 진영논리로 흘러가고 있는데, 이런 상황은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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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고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과정에서 전기요금이 오르는 건 상식적이다. 다만 이를 국민이 충분히 이해하도록 만듦과 동시에 국민을 설득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전기요금을 왜 올려야 하고, 어떻게 올리는 게 타당한지 국민 스스로 납득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러려면 국민의 신뢰부터 얻어야 한다."

'전기요금 인상 없다' 황당한 주장

그는 한전 이야기로 주장을 이어갔다. "한전은 무작정 '손실을 보고 있으니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할 게 아니라 원가를 완전히 공개해야 한다. 전문가들이 그 원가를 근거로 적절한 '정상화'를 논의해야 한다. 한전은 원가를 낮추려는 노력도 해야 하고, 각종 전기요금 감면제도도 진짜 저소득층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손봐야 한다. 그런 공론화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연료비 연동제만 만들었으니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누군가가 부담해야 할 비용을 제대로 정산하지 않으면 갑작스럽게 전기요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 일부에서 벌써 전력산업 전체를 민영화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결국 지금 필요한 건 전기요금 현실화를 위한 공론화 과정이다.

'전기요금은 절대 올려선 안 된다'는 게 얼마나 신뢰성 없는 주장인지 전기 소비자에게 알리고 설득해야 한다. "임기 내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면서 황당한 주장을 펴온 정부는 물론 대통령을 꿈꾸는 잠룡들이 먼저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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