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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소녀들은 '서울'이라는 무지개를 좇아 대관령을 넘었다[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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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안녕히 가십시오 - 강원도(Good-bye, Gangwon-do).’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구불거리는 대관령 길을 넘는 아버지 차 안에서 김현주씨(당시 19세)의 가슴은 울렁거렸다. 트렁크가 꽉 차 뒷좌석에 실은 짐가방을 그는 꼭 끌어안았다. 고향 강릉을 떠나 ‘대관령을 넘는’ 것은 오랜 바람이었다. “중·고등학교 6년 내내 목표는 강릉 밖으로 나가는 거였어요. 어쩌면 모두의 목표였겠지만요.”

2008년 2월의 그날 그가 짐을 푼 곳은 경기 수원의 한 대학 기숙사. 모든 것이 새로웠다. 대도시의 스카이라인, 차도와 길거리에 넘치는 자동차와 사람들까지. 현주씨는 “낯선 세계로 떨어진 <오즈의 마법사> 속 도로시가 된 기분이었다”고 했다. 13년이 흘러 서른두 살이 된 그는 7년차 영화 마케터다. 서울 관악구의 원룸에 살며 강남의 콘텐츠 회사에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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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강릉의 A여고 3학년 1반 동창생인 장호진씨와 김영빈씨(이상 가명), 김현주씨(왼쪽부터)가 지난달 12일 서울 남산공원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며 대화하고 있다. 졸업한 뒤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강릉 소녀’들은 14년째로 접어든 서울살이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되돌아봤다. 김창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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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이야기다. 고향을 뒤로하고 서울에 자리 잡은 청년이 어디 현주씨뿐인가. 50년 전에도, 30년 전에도 청년들은 진학과 취업을 위해 서울로 향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수도권으로 떠나고 있다. 구불거리는 고개가 매끈한 터널로, 아버지의 자동차가 KTX로 바뀌었을 뿐이다.

‘청년들은 무엇 때문에 고향을 떠나나’ ‘떠난 이들이 향하는 곳은 왜 수도권이며 왜 돌아가지 않나’. 청년층 이탈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을 건져내기 위해선 우선 이 질문들의 답을 찾아내야 한다. 경향신문은 2008년 현주씨와 함께 강릉의 A여고를 졸업한 3학년 1반 동창생 36명의 졸업 후 행적을 추적했다. 소재가 파악된 30명 가운데 14명에 대해 대면·전화·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의 진학과 취업, 결혼 등 청년기 주요 고비의 이동 경로와 선택에서 지방과 지방 청년의 현실을 읽어내려 했다.



강릉 소녀들의 근황



A여고는 비평준화 지역이던 강원도에서 지역 명문으로 통했다. 동해나 속초 등 인근 시·군에서 온 유학생도 많았다. 그런 분위기에서 ‘인서울’ 대학 진학은 중요함을 넘어 당연시되는 목표였다. 현주씨의 짝꿍으로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미디어 콘텐츠 운영 업무를 하는 장호진씨(가명)도 예외는 아니었다. 부모님은 집 근처 사범대를 나와 교사가 될 것을 권했지만 딸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미디어 업계에서 일하고 싶었던 그에게 서울은 꿈과 동의어였다. “강릉에 남는다는 것은 무언가 ‘끝나버릴 것’ 같다는 느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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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을 통해 확인한 ‘강릉 소녀’들의 근황에서도 ‘수도권 지향성’이 뚜렷했다. 소재가 파악된 30명 중 수도권 거주자는 16명(서울 13명·경기 3명)으로 절반이 넘는다. 전업주부 1명을 제외하면 15명이 수도권에서 일한다. 비수도권 거주자는 14명으로 강릉(8명)과 춘천·속초·부산·대구·세종·청주(각 1명)에 산다. 진학 대학이 파악된 32명 가운데 40% 이상인 15명이 서울과 인천, 경기 등 수도권으로 갔다. 특히 대학을 서울로 진학한 경우에는 거의 예외 없이 수도권에 정착했다.

그러나 ‘인서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수도권 학생들에 비해 입시 정보와 전략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꿈이 큐레이터였던 현주씨는 어려서부터 미술사 책을 끼고 살았고 그림 감상을 좋아했다. 진로를 상담한 선생님은 미술사를 전공하려면 미술 실기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형편이 안 됐던 현주씨는 진로를 바꿔 행정학과에 진학했지만,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야 실기 없이도 갈 수 있는 관련 학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서울에 있었더라면 저렴한 비용으로 미술이론 전공자에게 논술 과외를 받을 수 있었을 거예요. 그랬으면 인생행로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200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등급제’가 적용된 처음이자 마지막 시험이었다. 등급제란 표준점수와 백분위 없이 성적표에 등급만 표기하는 제도다. 1~2점 차이로 당락이 갈리는 폐단을 막기 위해 마련됐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속출했고, 원서 접수 과정에서 눈치 싸움이 극에 달했다.

박소흔씨(가명)는 대입제도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도 원망스럽다. 서울의 대형병원 간호사인 그는 ‘인서울’ 대학 대신 춘천의 한 사립대를 졸업했다. 그는 “입시 때 학교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는데, 나중에 보니 성적이 비슷한 다른 수험생이 인서울 대학에 합격한 것을 알고 속상했다”고 말했다. 정보 부족으로 국가유공자 자녀임에도 관련 수시 전형 대신 정시에만 올인한 경우도 있었다.



서울 생활의 기쁨과 슬픔



상경한 강릉 소녀들은 대도시에 압도됐다. 곳곳에 즐비한 고층건물에 충격적으로 편리한 대중교통, 어디서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문화 인프라, 다양한 출신 배경의 사람들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기회이자 가능성이었다.

현주씨도 공강 시간이면 미술 전시나 특색 있는 큐레이션의 영화를 보기 위해 수원과 서울을 수도 없이 오갔다. 영화 마케팅이라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된 것도, 복수전공으로 문화산업을 택한 것도 이 경험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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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한 강릉 소녀들은 대도시에 압도됐다. 곳곳에 즐비한 고층건물에 충격적으로 편리한 대중교통, 어디서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문화 인프라, 다양한 출신 배경의 사람들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기회이자 가능성이었다. 이미지컷 Unsplash@hideandseek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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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세상을 경험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알게 되는 일이기도 했다. 호진씨는 서울살이를 통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깨달았다. 여고 시절 한 아이돌그룹의 열정적인 팬이었던 그는 서울에 와서야 진짜 ‘덕통 사고’를 당했다. 록페스티벌에서 만난 한 밴드에 푹 빠진 것이다. 호진씨는 말했다. “그때 알았어요. 강릉에 있을 때 아이돌을 좋아한 건 ‘좋아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어서’라는 걸요.”

하지만 안도감도 잠시, 서울에 발붙이고 사는 일은 만만치 않음을 곧 깨달았다. 대부분 월세 30만~60만원대의 작은 방에 살며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강릉에선 본 적 없는 서울역의 홈리스, 강남의 명품 거리가 빈부격차를 실감케 했다.

경기 부천의 사립대를 나와 8년째 IT 서비스 기획자로 일하는 김영빈씨(가명)는 ‘서울 토박이’가 가장 부러웠다고 했다. “서울 친구들은 자취를 하는 저를 속도 모르고 부러워했어요. ‘강릉 유지’ 딸 아니냐면서요. 아직도 부모님과 살면서 월급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 차이는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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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부천의 사립대를 나와 8년째 IT 서비스 기획자로 일하는 김영빈씨는 서울 사람들의 지방에 대한 무지·무관심에 놀랐다 말한다. 그가 만난 서울 사람들은 태풍 매니는 기억해도 하루에 800㎜가 넘는 물폭탄이 쏟아지며 사망·실종자만 246명을 남긴 태풍 루사는 기억하지 못했다. 사진은 2002년 태풍 ‘루사’가 동반한 가웅과 폭우로 인해 마비된 원 강릉시 강남동 도로 일대. 서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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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놀란 것은 서울 사람들의 지방에 대한 무지·무관심이었다. 강릉 사람이라면 2002년 태풍 루사는 잊을 수 없다. 하루에 800㎜가 넘는 물폭탄이 쏟아지며 사망·실종자만 246명, 재산 피해는 5조원이 넘었다. 하지만 서울 친구들은 수도권 피해가 컸던 태풍 매미는 기억하면서도 루사는 전혀 몰랐다. 그는 “하도 모르길래 재산 피해액, 인명 피해 수치를 뽑아 보여준 적도 있다”고 했다.



두 번째 갈림길, 취업



취업은 청년층의 두 번째 이동 기점이다. 강릉 소녀들의 ‘2차 이동’은 대학 졸업 전후인 2010년대 초중반 시작됐다. 비수도권 대학을 졸업한 뒤 5명이 수도권으로 올라왔다. 반대의 경우는 3명(강릉 2명·세종 1명)이다. 이 시기 수도권 거주자가 15명에서 16명으로 비수도권을 앞질렀다.

서울의 유통회사에서 상품기획자로 일하는 최서현씨(가명)는 2012년 말 춘천에서 상경했다. 그의 대학 생활은 강원도 탈출을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 편입과 교환학생, 해외취업 등 시도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무조건 인서울 대학에 가고 싶었는데 못 갔어요. 편입도 해외취업도 하지 못했을 때에는 온 우주의 기운이 나를 강원도 안에 잡아두려는 건가 싶었어요.” 서현씨는 졸업 전부터 서울에서 방을 잡았고, 얼마 안 가 취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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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게임회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는 길효리씨(가명)는 강원도의 대학을 나와 서울로 취업했다. 강원도에는 그래픽 디자인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없다. 약 2년간은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리는 수업을 듣기 위해 왕복 8시간을 꼬박 버스에서 보내야 했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 김기남 기자


원하는 일자리가 서울에만 있는 경우도 많았다. 서울의 게임회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는 길효리씨(가명)는 강원도의 대학을 나와 서울로 취업했다. 사행성 게임을 만드는 업체 한 곳을 제외하면 강원도에는 게임회사가 한 군데도 없었다.

효리씨는 고향에 머물며 취업준비를 위해 서울로 디자인 학원을 다녔다. 강원도에는 그래픽 디자인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없다. 약 2년간은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리는 수업을 듣기 위해 왕복 8시간을 꼬박 버스에서 보내야 했다. “제가 차 안에 있던 그 시간에 서울 친구들은 연습을 더 하면서 진도를 뺄 수 있었어요. 확실히 그 친구들이 취업도 빨리했고요.”

자산운용사에서 10년째 일하고 있는 한예현씨(가명)도 서울에 있었기에 취업 기회도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서울의 한 사립대를 졸업한 예현씨는 대학 시절 자산운용사에서 인턴을 한 경험을 살려 빠른 취업에 성공했다. “강릉에 있었다면 기회가 없었을 거예요. 자산운용사는 서울에 몰려 있고 다른 금융기업의 지방 영업점들은 인턴을 뽑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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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이라는 큰 산을 넘은 강릉 소녀들의 최대 고민은 이제 ‘내 집 마련’이다. 치솟는 수도권 집값으로 출신과 관계없이 청년층에게 내 집 마련은 요원해졌지만 지방 출신 청년들의 출발선은 서울 출신들보다 뒤에 그어져 있다, 사진 이미지컷 Unsplash @Dal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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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이라는 큰 산을 넘은 강릉 소녀들의 최대 고민은 이제 ‘내 집 마련’이다. 치솟는 수도권 집값으로 출신과 관계없이 청년층에게 내 집 마련은 요원해졌지만 지방 출신 청년들의 출발선은 서울 출신들보다 뒤에 그어져 있다. 대충 따져봐도 서울의 부모님 집에서 생활하는 이들과 비교하면 월세와 생활비를 포함해 한 달 최소 100만원 이상을 10여년 손해본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국 사회에서 서울에 집이 있다는 건 매우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이기도 하다. “서울 출신인 회사 후배가 저보다 모은 돈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았어요. ‘나보다 연봉 많이 받는 거 아니냐’고 물어볼 정도였죠. 서울 출신은 지방 출신보다 적어도 1000만원 연봉을 더 받는 것과 마찬가지예요.”(김영빈씨)



‘핫플’이 된 고향…돌아갈 수 없는 이유



강릉은 요즘 ‘힙스터의 성지’로 떴다. 해안을 따라 늘어선 개성 있는 카페와 서핑숍이 전국에서 온 이들로 북적인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무렵 개통된 KTX 강릉선으로 수도권과의 거리도 더 가까워졌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강릉을 찾은 방문객은 1900만명에 달했다. 2015년 이후 전입이 전출을 역전하면서 2019년 말 기준 강릉시 인구(21만3442명)는 전년 대비 485명 증가했다. 빠르게 쪼그라드는 여느 지방 소도시들과 대조적이다.

고향의 활기는 강릉으로 유턴한 소녀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승혜씨(가명)는 춘천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강릉으로 돌아와 10년째 문화 관련 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수도권 취업을 노리다 우연한 기회에 일을 하게 됐다. 그는 “지역 문화유산 관련 행사를 열면 젊은층 참여도가 높고 호응도 좋다”며 “강릉의 문화적 요소를 보고 이주하려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승혜씨도 강릉 생활의 만족도가 점점 높아진다고 했다. “몇년 사이 KTX가 생기고 놀거리도 많이 생겼어요. 일하면서 지역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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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 자리를 잡은 강릉 소녀들에게도 고향은 숨통 트이는 곳이다. 하지만 ‘고향에 내려가 살 수 있냐’는 질문에는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 사진은 10월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도로변의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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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 자리를 잡은 강릉 소녀들에게도 고향은 숨통 트이는 곳이다.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간 사회생활을 한 소녀들은 매일 아침 ‘지옥철’에 몸을 실을 때마다 강릉의 깨끗한 공기와 바다를 떠올린다.

하지만 ‘고향에 내려가 살 수 있냐’는 질문에는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 “강릉은 홈(Home)이에요. 돌아가고 싶지 않은 홈.” 김현주씨 목소리에 씁쓸함과 단호함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강릉에서는 내 일(영화 마케팅)을 할 수 없다. 이 일을 하는 내 자신이 좋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라며 “강릉에서의 현주라는 그 삶의 단계는 확실히 지나온 느낌”이라고 말했다.

일자리는 귀향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강릉의 지역내총생산(GRDP)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것은 숙박이나 음식점업 등 서비스업(71.9%)이다. 전국 평균(59.8%)을 크게 웃돈다. ‘강릉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카페 아니면 공무원’이라는 자조가 우연이 아니다. 기자와 연락이 닿은 비수도권 거주자 중 일부는 “서울로 갈 방법을 찾고 있다”는 말로 인터뷰를 거절했다.

취업 상황에서도 불균형은 드러난다. 비수도권 거주자들의 경우 공무원이거나 공공기관, 공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이 6명(전 직장까지 포함하면 7명)으로 약 40%를 차지했다. 수도권 거주자 16명 중 3명만이 공무원·공기업 직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압도적인 비율이다. 수도권 거주자 16명의 일은 영화 마케터, 배우,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 자산운용사 직원, IT 서비스 기획자, 미디어 콘텐츠 운영자, 간호사, 교사 등 다채롭다. 강릉에 내려가면 같은 일을 지속할 수 없거나 임금 수준을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의외로 귀향 의지가 강한 쪽은 결혼 후 육아를 하는 이들이었다. 차경은씨(가명)는 서울에 사는 6년차 주부로 네 살 아들을 키우고 있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서울 출신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그런 그가 요즘 고민하는 점은 멀리 사는 가족의 도움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안정적인 일자리만 있다면 강릉 이주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또한 임시방편이다. “아이가 어려서 향후 몇년 정도는 괜찮겠지만, 중학생 이상 되면 원하는 교육을 강릉에서 받기가 힘들지 않겠어요. 그때는 서울로 돌아와야죠.”



서울이라는 무지개



“Oh, I’m an alien. I’m a legal alien(오 나는 이방인, 합법적 이방인이죠).”(스팅, ‘잉글리시 맨 인 뉴욕’)

스팅의 노래 가사처럼 서울에 얼마나 머물렀건, 서울살이에 얼마나 익숙해졌건 강릉 소녀들은 스스로를 이방인이라 느낀다. 박소흔씨는 이방인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누구네 집 딸’이 아니라 온전히 나로 살 수 있는 홀가분함이 좋아요. 서울의 그런 면들이 나를 더 성장하도록 했고요.”

하지만 ‘뚝방에서 잠자리를 잡던’ 추억이나 지쳤을 때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은 서울살이를 견뎌내도록 하는 동력이자 ‘서울내기’들에겐 없는 뒷배다. 노년에는 강릉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강릉 소녀들은 서울이 뭐냐는 물음에 ‘잡을 수 없는 무지개’ ‘애증’ ‘기회의 땅’ ‘나를 성장시킨 곳’ ‘미래’라고 했다. 서울에 대한 양가감정이다. 놓쳐선 안 될 메시지가 한 가지 더 있다. 서울이 제공하는 성장, 미래, 기회와 기꺼이 맞바꿀 무언가가 지방에 없는 한 이들의 귀향은 없을 거라는 점이다.


최민지 기자 ming@khan.kr

특별취재팀
배문규·최민지(스포트라이트부)·박채영·문광호(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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